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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글] 이음 예술창작 아카데미(창작자 과정) 비평

by 문화예술기획 최선영 2026. 2. 1.

2025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한양대학교
이음 예술창작 아카데미(창작자 과정)
비평

 


 



1. 김상현



거위는 하얗고 호수는 파랗다
 
 
출퇴근이 즐거운 사람을 만났다. 회사에서 컴퓨터 작업을 하는 김상현은 회사 이야기를 하는 듯하면서 계속 출퇴근의 재미를 말했다. 석촌호수 덕분이었다. 그는 오전 8-9시 언저리에 2호선 잠실역을 나와 석촌호수를 지나쳐 회사로 들어간다. 그때 꽃잎이 흩날리는 석촌호수 위를 거위들이 평온한 표정으로 헤엄친다. 그는 회사에서 3시간 정도 일을 하고 점심쯤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역시 석촌호수를 지난다. 가끔 수족관이나 도서관도 들른다. 이러한 일상에 대한 기쁨과 행복이, 그의 밝은 표정과 그림 속에 가득하다. 그가 어떤 업무를 할까, 매일 일을 해야 하는 일상은 힘들지 않을까. 그런 궁금함은 너무 일반적인 질문 혹은 시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이미 충분히 행복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의 현재 삶에는 회사의 일만 덩그러니 놓여있지 않다. 오히려 일은 다채로운 일상 여행 사이에 일부분으로 존재한다. 여행 전반이 평화롭고 즐거우면 어떤 일을 어떻게 하든 여행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실제로 여러 장소나 나라를 여행하는 것도 좋아한다. 그래서 하루하루의 경험도 여행하는 것처럼 즐기는 듯하다. 아쿠아리움에서 열대어를 봤던 것처럼, 베트남에서 절을 구경했던 것처럼, 호텔에서 수영을 했던 것처럼, 출퇴근 길에 여행하듯 무언가를 보고 느끼고 즐긴다. 그래서 작품 속 이미지는 그의 복잡한 해석을 거치지 않는다. 거위는 하얗고 호수는 파랗다. 바다사자는 검고 불가사리는 빨갛다. 이미지와 이미지가 미묘한 화면 구성, 긴장감을 만들어내기보다 있는 그대로 작품에 담겨 있다. 그것만으로도 그에겐 의미가 충분한 것이 아닐까. 더 사실적으로, 더 자세하게, 더 다이내믹하게 무언가를 표현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그의 일상에 그것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거위는 하얗고 호수는 파란 것이 아닐까. 그는 여행하는 기분을 그림에 담아내기 위해, 혹은 그 기분으로 그림도 그리기 위해 미세한 표현 기법을 습득해야 하는 ‘어려움’도 애써 선택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림 속에는 분명함과 동시에 둥굴둥굴한 마음이 보인다. 그가 석촌호수를 지날 때 품었던 마음이 호수처럼 넓게 펼쳐져 있다.
그는 앞으로 비디오테이프를 그려보고 싶다고 한다. 동물과 풍경을 그리다가 갑자기 비디오테이프라니. 시각예술가로 활동하려면 좀 더 일관된 표현 주제를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까, 결국 미술계에서의 활동 전략 같은 것을 괜히 ‘어렵게’ 떠올리다가 ‘아, 즐거운 마음으로 그리고 싶은 것을 선택하면 되는 것을’ 그런 생각을 한다. 다시, 거위는 하얗고 호수는 파랗다는 것. 그것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는 것을 되새기며.
 
 
 
 
 
2. 정연우


 
그리기로 지우기
 
 
평면 작업 안에 여러 이미지가 넘쳐나면 그것의 의미와 서사가 중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래서 정연우에게 묻고 또 물어봤다. 이것은 무엇을 그린 것인지, 왜 그린 것인지. 그런데 대화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발견한 것은 이미지 하나하나가 상징, 의미하는 무언가가 아니라 그것을 그리는 과정이었다. 그는 사진 찍는 것을 매우 즐기는 것은 아니지만 여행을 가거나 일상에서 어떤 풍경을 마주했을 때 사진을 찍곤 했다. 그에게 누군가 사진을 찍으라고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휴대폰에 사진 파일이 많아졌다. 정연우의 기준에서 ‘너무’ 많아지기도 했다. 그래서 사진을 지울 필요성을 느꼈는데 그 과정에서 회화 작업이 하나의 공정처럼 등장했다. 지울 사진을 선택해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사진을 그림으로 옮기고 나면 휴대폰에 넘쳐나는 사진을 하나씩 지우기 시작했다. 이러한 방식은 올해 이음 예술창작 아카데미 과정에서 멘토의 제안으로 더욱 구체화되었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 자체가 그의 일상 행위와 연결되어 있고 그것이 정연우만의 작업적 스토리이기도 해서 멘토가 이러한 작업 방식을 적극 권유한 것이다. 정연우도 가득 찬 사진첩을 마주하며 그렇게 그리면서 지우는 작업을 하기로 했다.
이러한 창작 과정을 바탕으로 그의 작업 결과물을 다시 살펴보면 질문이 생긴다. 그는 휴대폰에 있는 사진 한 장을 하나의 화면에 그대로 옮겨 그렸을까. 그렇지 않다. 일단 어떤 이미지나 인물, 혹은 사물을 선택해서 화면 어딘가에 그린다. 그다음에 무엇을 그릴지 사진첩을 다시 본다. 단지 사진첩의 다음 사진을 그리지는 않는다. 테이블 위에 음식들이 놓인 장면을 그리고 있었다면 테이블이나 음식 사진을 선택한다. 적당히 소재나 상황에 맞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 날의 기억과 경험이 조각들이 되어 하나의 장면을 채운다. 실제로 그는 ‘여기가 비어서 채우려고’ 무언가를 선택해 그렸다고도 했다. 그의 작품을 보는 사람은 디테일한 묘사, 복잡한 화면의 구성, 구체적인 이미지들로 인해 시각적 표현에 집중하고 그것의 의미를 궁금해하게 되지만 적어도 이번 아카데미 과정에서의 작업들은 표현의 과정과 순서가 중요했다.
그리고 질문이 남는다. 그가 스스로 사진 찍기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사진을 지우는 과정도 적극적으로 선택한 것은 아닌지. 지우는 행위 속에서 그의 주체적 표현과 창작자로서의 재미가 발현된 것은 아닌지. 어딘가에서 지워져 그의 선택으로 남겨진 복잡한 이미지들이 정연우의 작품 속에서 말을 건다. 이 중에 무엇이 가장 먼저 선택되었을까. 지워짐의 의미와 채워짐의 의도 사이 어디쯤에 그의 시선과 행위가 위치되어 있을까. 완성된 작품 뒤편에서 부지런히 사진을 지우며 자신을 드러내는 그의 시간이 보인다.
 
 



3. 최석원


 
“그렸습니다”라는 마음의 풍경

 
 

최석원의 몸보다 큰 종이에 그물무늬 비단뱀이 가로로 길게 그려져 있다. 그 아래에는 빨간색 뱀이 있다. 그 아래에는 핑크색 뱀이 있다. 최석원에서 무엇을 그렸는지 물으면 보이는 그대로 답한다. 무엇을 그릴지 정하고 그것대로 그린 것일까, 혹은 그려진 것을 순서대로 말하는 것일까. 궁금한 것을 하나씩 물으면 하나의 질문에 하나의 댓글이 달리듯 분명하고 빠른 답변이 돌아온다. 그래서 전체를 파악하려면 더욱 하나씩 물어야 한다. 그러기엔 대화 시간이 충분하지 못했는데 그래서 거대한 그림도 그의 표현 세계 중 일부 조각처럼 보였다. 기다란 그물무늬 비단뱀을 그리기 전에는 무엇을 많이 그렸었는지, 이번에는 왜 뱀을 그렸는지, 뱀 위에 올라선 검정 오리는 뱀을 다 그리고 난 다음에 추가로 그려 넣은 것인지, 그것이 아니라면 검정 오리가 뱀 위에 있는 장면을 어떻게 떠올렸는지, 뱀도 있고 오리도 있는 이 풍경의 주변에는 무엇이 있을 것 같은지, 그것은 이 그림을 그릴 때 염두에 둔 더 넓은 장면인지 등등.
작년에 제작한 수많은 돌고래 작업도, 올해 그린 여러 새와 곤충 그림도 그가 어떤 구도나 스토리를 만들어냈다기보다는 좋아하는 것, 눈여겨본 것들을 마음속에 떠올리다가 일부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인 그림은 주인공 같은 중심 소재가 있고 그것을 둘러싼 이미지들이 배치되는데 최석원은 아주 작은 곤충도 그것보다 수 십배 큰 동물과 똑같이 애정을 담아 그리기 때문이다. 비슷한 완성도와 세밀함이 곤충의 다리 끝, 더듬이 끝에까지 보인다. 독수리 아래 사마귀도, 파랑새 위 잠자리도 또렷하고 야무지게 존재한다. 그는 다양한 생명들을 직접 보았든 아니든 마음속에 골고루 펼쳐두고 빠짐없이 눈길을 주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실제로는 한 곳에 모여 살기 어려운 동물들이 그의 작품 속에서는 충돌도 다툼도 없이 ‘함께 있다’. 이에 대해 그에게 앞뒤 맥락을 묻다 보면 ‘그저 있음’, 그래서 ‘그렸음’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없어 보인다. 그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짧고 명료한 문장으로 “OO을 그렸습니다”라고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듣다 보면 더더욱.
그렇기에 그가 작품에 표현하고 있는 것은 그렸다는 사실로서 보여주는 마음의 풍경 같다. 그의 작품이 언뜻 풍경화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 풍경을 그렸다기보다는, 그저 마음이 풍경처럼 화면 안에 펼쳐진 것 같기도 하다. 그 풍경, 아니 마음속에서 독수리는 작은 동물을 헤치지 않고 작은 뱀은 큰 뱀을 피하지 않는다. 힘의 논리도 시간의 흐름도 작은 생명들의 존재함 그 자체보다 중요하게 표현되어 있지 않다. 그의 그림은 그것을 잠시라도 가능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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