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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글] 장애예술교육 : 오래오래 쉽지 않은 선택을

by 문화예술기획 최선영 2026. 1. 22.

2025 완주문화재단
장애예술교육 지원사업 <사이:예술학교>
자료집 원고
 
 
자료집 다운로드
https://www.ieum.or.kr/user/movie/view.do?idx=3945



 

오래오래 쉽지 않은 선택을

 

최선영 / <사이:예술학교> 멘토, 문화예술기획자

 
 
보편성, 그다음의 질문
제도권 안에서 장애인 예술교육이 진행되는 맥락은 장애인‘도’ 예술교육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보편성 측면이 크다. 비장애인 중심으로 이어져 온 예술교육 사업 안에 장애인의 참여도 고려하자는 취지다. 그런데 다양한 시민의 예술교육 참여를 고려할 때, 사업이나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입장에서는 보통 특정 대상에 맞춘 내용 마련에 집중한다. 장애인에게는 이런 프로그램을, 노인에게는 이런 활동을, 유아에게는 이런 경험을, 이러한 관점으로 대상별 맞춤형 사업을 설계한다. 물론 생애주기나 장애 유무 등에 따라 참여자의 집단적 특성을 예측할 수는 있으나 많은 예술교육 현장이 그 예측을 벗어난 반응들로 채워진다는 점에서 예술교육가의 질문과 고민은 계속 커져만 간다. 그럼에도 프로그램의 고도화나 계획의 완성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사업은 ‘준비 단계’에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아직 만나지도 않은 참여자를 머릿속에 그리며 다채로운 아이디어와 재료, 방법론을 준비한다. 장애인 예술교육도 마찬가지다. 특히 장애유형별로 그 준비를 세분화하기도 한다. 한 사람에 대한 질문은 ‘장애’라는 필터를 거치면서 바로 ‘장애유형’이라는 공식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현장에는 그 장애유형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개별적 욕구, 속도, 관심사를 가진 존재가 끊임없이 등장하지만 이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만남의 방식이 매우 자세하게 설계된다. 어떤 순간에는 누구를 만날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기획의 입장만 강해진 채로 이것저것을 ‘독특하게 준비하는 것’에 몰두하기도 한다.
 
쉬운 것을 선택하지 않는 선택
그러나 시민을 정책적 대상으로 구분한 후 필요할 것 같은 무언가를 준비해 제공한다고 해서 보편성이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개별자로서의 시민 입장을 고려한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다양한 사람들의 개별적 반응과 참여가 각기 다른 속도로 등장할 수 있도록 말이다.
<사이:예술학교>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완성형의 프로그램을 현장에 제공하지 않았다. 사업이 짧은 기간 동안 이루어져 더욱 체험 프로그램처럼 진행될 가능성이 컸지만 지역 내 매개자로서 예술교육가를 발굴해 이들이 참여자를 다각도로 궁금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이를 위해 강의, 멘토링, 기관 답사, 관계자와의 만남을 ‘연구’의 과정으로 설계했다.
 
 

*사업 오리엔테이션 자료 중 ‘연구 모임’에 대한 안내
 
○ 연구 모임
- 일시 : 8월~11월
- 장소 : 완주군 일대
- 횟수 : 8회 이내
(*8회 중 총 5회는 필수 참석, 나머지 횟수는 자율적으로 조율 가능)

구분일시횟수내용
멘토링
(필수)
월 1회
(9월, 10월, 11월)
3회- 장애와 예술을 잇는 교육적 시선 확장을 위해 장애예술교육 분야의 전문가와 이론 및 실천 중심의 심화 멘토링 진행
현장방문
(필수)
8월 중
(*기관별 참석 가능 일정 조율)
2회- 실제 교육 대상이 되는 기관 및 단체를 방문하여, 현장을 이해하고 필요와 상황을 반영한 프로그램 방향 도출
- 현장 기반의 교육 프로그램 개발 경험 축적
자율모임9월~11월 중3회 이내- 참여자 주도 소규모 모임 등


○ 파일럿 프로그램
- 일시 : 9월~11월
- 장소 : 완주군 일대, 참여 기관
- 횟수 : 1회~8회(예술교육가의 활동 기획에 따라 조율)

 
 
예술교육가들은 이 과정 안에서 앞으로 무엇을 할지 활동의 내용과 방법도 고민했으나 더 넓은 범위에서 참여자의 일상과 예술교육에 대해서도 질문할 수 있었다. 참여자가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주로 어떤 분위기의 공간에서 표현 활동을 하는지, 평소에 예술 관련 활동을 얼마나 하는지, 이들이 머무는 기관의 특성은 어떠한지, 이러한 요소들이 현재 장애인 예술교육에서는 얼마나 고려되는지 등. 그리고 이러한 연구, 질문의 과정은 예술교육가가 기관을 방문해 실제 활동(파일럿 프로그램)을 하는 기간에도 함께 이루어졌다. 즉, 예술교육가가 참여자와 현장 상황을 계속 살피며 유연한 운영을 이어간 것이다. 이것은 당연하고 쉬운 방식인 것 같지만 실제 예술교육 현장에서 가장 시도되기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보통 ‘계획’ 중심으로 예술교육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제도권에서는 안정적으로 준비된 프로그램을 선정하여 추진 비용(강사비와 재료비 중심)을 지원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리고 유연한 운영은 공공기관이 시도하기에 그야말로 품이 많이 들고 쉽지 않은 방식이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계속 열어두고 계획서를 수정하며 새로운 발견 요소를 지속적으로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 정해둔 것을 얼마나 잘 진행했는지만 확인하면 수월하지만 <사이:예술학교>는 그 쉬운 선택을 하지 않았다.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예술교육가들과 재단의 사업 담당자는 보통의 예술교육 사업보다 더 많은 서류를 더 자주 쓰고 계속 수정해야 했다.
 
흔들리는 과정도 지지하며
하지만 이러한 선택이 예술교육가들의 현장 활동까지 어렵게 만든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해둔 것을 바꾸지 못하는 것이 예술교육가와 현장 참여자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아닐까. 그날따라 몸을 더 들썩거리고 싶은 참여자가 있다면 그 사람의 욕구와 상태를 반영한 즉흥적 활동이 필요할 수도 있고 애써 준비한 활동이 다수에게 어떤 흥미도 주지 않는다면 다른 활동을 시도해 볼 필요도 있다. 예술교육가가 아무리 참여자에 대해 ‘알아두었다’고 하더라도 현장에서는 계속 다른 반응과 사건이 일어나기에 이러한 유연한 운영은 매우 중요하다. <사이:예술학교>는 그 유연성을 중심에 두고 이루어졌는데 계획안 중심으로 활동을 해오던 예술교육가의 어려움이 다소 있기는 했으나 사업 중반부터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장 진행이 가능해졌다. ‘개별성을 고려하며 계획을 수정해도 된다’, ‘상황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공식화되면서 예술교육가가 참여자에게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 멘토의 역할은 예술교육가를 만나는 자리에서 끊임없이 그 시선과 태도를 지지하는 것이었다. 이런 프로그램 방식이 좋다, 지난 활동에서는 이것을 고쳐야 한다고 조언하는 것을 지양하고 고민하는 상황을 공감하며 응원했다. 한 달에 한 번씩 만나서 최근 활동에서 생긴 질문을 나누고 다른 현장과의 공통된 어려움은 없는지 살폈다. 역시나 다음 프로그램을 철저하게 준비하는 것을 목적으로 두기보다 다음 만남에서 우리의 태도나 관점이 어떻게 더 열릴 수 있는지에 집중했다. 멘토링을 포함한 이러한 운영 구조는 완주문화재단이 지난 2년간의 사업에서 얻은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사업도 현장 상황을 고려해 계속 수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결과공유회 현장




길게, 천천히, 어렵게
그럼에도 이 사업은 너무 짧은 기간 동안 운영되어 큰 아쉬움을 남겼다. 그 이유는 역시나 행정적, 제도적 상황 때문이었는데 이후에는 무엇보다 사업 기간을 늘리고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사이:예술학교>의 특징이기도 했던 유연한 운영은, 사업이 긴 호흡으로 진행되어야 더욱 그 의미와 성과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올해는 기관별 프로그램이 보통 4회차 정도로 운영되었고 현실적 상황 때문에 어떤 경우는 1회차만 운영되었다. 예술교육가와 참여자의 만남이 이렇게 짧은 호흡으로 전제되면 체험 중심의 활동만 시도될 수 있다. 혹은 ‘이 시간에라도 다양한 경험 기회를 만들자’는 예술교육가의 의도가 커지면서 자극적 상황과 가시적 반응만 부각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결과공유회에서 한 예술교육가는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활동 중 풍선을 불어 무언가를 해보려고 했는데, 한 참여자가 불기 전 쪼그라들어있는 풍선의 촉감에 집중하고 있었다고, 그 순간 본인은 그러한 반응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 것이 계속 생각난다고 말했다. 이러한 현장의 미묘한 개별 탐색이나 표현을 살펴본다면 다양한 재료, 효과, 자극이 마련되는 것 이전에 섬세한 시선이나 개입이 필요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무엇보다 느리고 긴 시간 속에서 가능하다. 어떤 날은 다 같이 무언가를 만져보고 어떤 날은 특정 소리에 귀 기울여볼 수도 있다. 그러다 경험적 전환이 필요하면 감각을 자극하는 색다른 행위를 시도해 볼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이 생기고 포착되려면 ‘사람이 사람을 긴 시간 천천히 만나야 한다’.
역시나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로 마무리되는데, 이를 위한 연계 기관들의 ‘어려운 선택’을 마지막으로 바란다. 짧은 기간이지만 매개자로서 역할을 고민하게 된 예술교육가들과 참여자가 더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도록, 특히 지역에서 천천히 오래 만날 수 있도록 완주문화재단의 특정 사업에만 의존하지 않고 개별 기관이 활용할 수 있는 여러 자원을 연결하는 시도를 해주기를 기대해 본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과 의지를 엮어낼 때 여러 현장이 함께 만들어내는 풍경처럼 보편성이 제도의 울타리도 벗어나며 펼쳐질 수 있을 것이다.
 
 
*사업 세부 내용
https://www.wfac.or.kr/2024/inner.php?sMenu=A1000&subject=사이%3A예술학교&sfv=subject&mode=view&no=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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