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동료는 사업으로만 만나지 않는다
서울시자치구문화재단연합회 주관
'예술교육콘텐츠 접근성 베타 테스트' 현장 리뷰
동료는 사업으로만 만나지 않는다
최선영 / 유구리최실장
예술교육에 대한 수요는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서울시자치구문화재단연합회(이하 ‘서문연’)와 ‘예술교육콘텐츠 접근성 베타 테스트’(이하 ‘베타 테스트’)의 현장을 함께 하며 예술교육이 무엇인지, 요즘의 예술교육 콘텐츠는 어떤 내용을 담아내는지 등의 질문보다 더욱 현실적으로 ‘과연 예술교육에 대한 수요가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맴돌았다. 방과후 프로그램, 문화센터나 행정복지센터, 도서관에서의 프로그램, 그리고 최근 유행하고 있는 원데이 클래스까지 ‘예술을 다루는’ 콘텐츠는 이미 많기 때문이다. 그 콘텐츠들은 학생, 주민, 수강생 등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식으로 예술을 언급해주고 있다.
그렇기에 과연 예술교육에 대한 수요가 있는지를 논의하려면 그 수요가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어떤 상을 그리고 있는지, 그래서 궁극적으로 무엇을 향하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예술교육에 대한 수요 이전에 ‘근대적 예술을 주제로 다루는 프로그램’에 대한 수요만 넘쳐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것, 혹은 학습하거나 인지한 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욕구를 그리기 쉽다. 예를 들어 명화 따라 그리기를 주로 경험해온 사람이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않으며 자신의 내면을 표현해보는 활동을 예술교육이라고 상상하며 참여를 희망하기는 어렵다. 자신에게 익숙한 것, 동시에 참여가 수월하고 편리하기까지 한 것을 다수가 원할 때, 과연 예술교육의 수요가 예술의 다양한 가치와 의미를 담아내며 발생할 수 있을지 의문이 남는다.
그렇다면 현재 ‘있다’고 전제되는 예술교육에 대한 수요는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지역 주민 대부분이 높은 만족도, 익숙한 내용, 쉬운 방식 등을 원할 때 이러한 수요를 성과로까지 연결해야 하는 매개 기관이나 실무자에게는 어떤 고민이 앞설까. 좋은 프로그램 이전에, 그 ‘좋음’을 어떻게 상상하고 원하게 만들지, 서문연의 역할도 질문으로 남는다.
기존 수요에 응답하면서도 다른 수요를 어떻게 만들까
주민이 원하는 것이 다소 뻔하고 일반적이더라도 예술교육을 사업화해야 하는 기관에서는 그 욕구나 수요에 응답하는 기획을 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것만 하지 않는 방법이자 태도다. 일반적 수요에 응답하는 것을 90%, 다른 시도를 해보는 것을 10% 정도로 유지하는 것도 매우 어렵다. 낯선 시도는 처음부터 다수의 호응과 참여로 이어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시도조차 불안한, 어떤 예술교육을 해야 할 때, 매개 기관의 담당자는 동시대의 언어이자 일상 언어로 그 시도의 의미를 여러 사람에게 설득해내야 한다. 이번 ‘베타 테스트’는 그 설득의 언어를 매개자 각자가 찾아가는 자리였다. 그러기 위해서 일단 예술교육을 경험해보는 것, 참여해보는 것이 중요했다. 안 쓰던 근육을 써보고 생각해보지 않았던 이야기를 따라가 보며 자신에게도 축적될 예술교육에 대한 소개말을 찾아보았다. ‘해보니 좋았던’ 무언가, 그 이유를 주민을 향해서도 발신할 수 있도록 매개자의 역할을 함께 모색해본 것이다.
하지만 매개자 개개인의 참여나 노력만으로 예술교육에 대한 폭넓은 수요를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다. 이에 대해 ‘베타 테스트’에서 진행된 간담회에서는 ‘알음알음 알아보고 예술가를 섭외하며 예술교육을 진행하고 있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했다. 문화예술교육이 15년 이상 정책 단위의 대규모 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 ‘알음알음’이 갖는 갈증의 깊이를 예측할 수 있다. 실제로 ‘베타 테스트’ 현장에는 예술교육 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 문화재단 실무자와 현장의 예술가, 기획자 등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이러한 갈증의 해소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 프로그램이 더 필요한 걸까
그런데 간담회에서 확인한 것은, 새롭거나 특별한 프로그램이 지역마다 부족해서 그것의 양적 공급만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번 ‘베타 테스트’가 예술교육에 대한 접근의 기회로도 기획되었으나 단지 프로그램이나 콘텐츠에 대한 참여 기회가 부족하여 지역 문화재단 등 매개 기관의 고민이 깊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지역마다 이미 기획하거나 경험한 예술교육 콘텐츠가 다양한 경우도 있었고 실험적 태도를 가지고 예술교육을 이어가고 있는 기관도 있었다. 또한 보편성을 담보하는 양질의 프로그램이 어딘가에 숨어 있는데 그것을 현장과 연결하는 것이 매개 기관의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어느 지역에나 딱 맞는 보편적 모델로서의 프로그램이라는 것은 너무 이상적이기도 하고 지역의 상황에 따라 필요한 콘텐츠나 프로그램도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반적 상황을 살펴볼 때 매개 기관은 현재 새로운 프로그램을 추가하거나 개발하는 것과는 별개로 다른 욕구나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프로그램은 과잉이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개발의 비용이나 노력’만 반복적으로 소모되고 있음에 다수가 공감하기도 했다.
대신 응답해줄 강사 외에 함께 질문을 만들 동료를 찾아
그렇다면 매개 기관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간담회에서는 (지역마다의 예술교육을 전제할 경우) ‘우리 지역에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관계 맺을 수 있는 주체’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주로 한 두 차례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보따리 장수처럼 다른 지역, 다른 사업으로 옮겨가야 하는 예술가나 기획자가 많은 상황이지만 이제는 다른 관계 형성이 필요한 때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존 방식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역시나 콘텐츠나 프로그램이다. 독특하거나 반응이 좋은 프로그램만 진행될 수 있다면 관련 주체나 매개자가 불안정하거나 일시적인 관계 기반으로 활동하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주민들의 일반적 기대나 수요에 빠르고 적절하게 응답해주는 사람 혹은 프로그램에만 집중하는 경향을 낳는다. 가족 대상 프로그램으로 적절한 것, 청소년이 좋아할 만한 프로그램, 인문학과 예술을 결합한 대중적 콘텐츠 등을 미션처럼 던지고 그것에 능숙하게 응답하여 프로그램 계획안을 꺼내놓을 수 있는 (예술가 이전에) 강사만 필요해지는 것이다.
물론 앞서 말했듯 이러한 상황에 응답하는 활동이나 사업도 현실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단지 그 외의 시도가 좁은 범위에서라도 유지될 수 있어야 하는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응답자 대신 질문자로서 함께 할 동료이다. 매개 기관이 기획한 판에 응답자이자 진행자가 되어줄 강사를 섭외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기존 수요나 가치관에까지 질문을 다시 던질 수 있는 동료가 기획 단계부터 필요한 것이다.
동료는 사업으로만 만나지 않는다.
하지만 개별 사업들로 운영되는 예술교육 현장을 고려할 때 ‘동료’라는 말은 너무 낭만적이기도 하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누군가에게 고민을 같이 나누자고 제안해야 하는 매개 기관 입장에서는 ‘동료’ 대신 ‘너그럽거나 태도가 좋은 협력자’가 필요하다고 해야 더 자연스러울지 모른다.
그럼에도 ‘동료’라는 표현을 써보는 이유는, 개별 사업이나 프로그램 단위로만 결합하고 협업하는 방식을 넘어서는 관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많은 시도와 실패가 축적된 예술교육 현장에서는 이제, ‘일상적으로’ 예술교육에 대한 고민이나 질문을 나눌 사람, 지나간 사업을 같이 연구해볼 사람, (코앞의 사업과 무관하더라도) 다른 기관이나 지역의 사례를 교차시키며 함께 읽어낼 사람이 동료로 필요하다. 다음 달 프로그램을 색다르게 기획할 누군가, 내년 사업을 자문해줄 전문가 외에 더욱 폭넓은 시선과 지속적 관계성을 전제하는 동료가 필요한 것이다. 예술교육이 일상화되면서도 동시대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 또한 지역에서의 의미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이제 메타적 접근을 함께 이어갈 동료와의 관계맺기가 중요한 것이다.
수다-질문-실천을 연결하는 자리
하지만 매개 기관들은 지역마다의 사업을 해나가기에도 벅찬 구조 안에 있으며 몇 개의 기관이 갑자기 여러 주체를 연결하는 자리를 만들기란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문연의 역할을 그려볼 수 있는데 매개 기관에서 갖고 있는 문제의식을 교환, 공유할 수 있는 공식적 기회를 마련하는 것을 고려해볼 수 있다.
특정 지역에 필요한 프로그램을 연결해주거나 경력이 많은 예술가나 기획자를 소개해주는 것을 넘어 일상적 동료 찾기의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예술교육이 주로 개별적 사업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현실이기는 하지만 그 점이 다양한 주체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데에 가장 큰 함정이자 방해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최근 예술교육 관련 매개자의 범위가 다양해지면서 예술가, 기획자, 실무자, 활동가, 연구자, 정책가 등이 각자의 고민을 사업 밖에서 나누는 활동이 시도되고 있는데 이러한 기획들이 앞으로의 서문연 활동에 구체적 힌트가 될 수 있다.
제목 | 내용 | 주관 | 관련 링크 |
(2021-현재) <자니스밴드> |
2020년에 개최된 제5회 국제예술교육실천가대회(ITAC5)의 프로그램위원들이 예술교육실천가와 함께 서로에게 허브가 되어줄 이유와 마음을 찾아보기로 하여 기획한 활동 | 자니스밴드 | https://www.instagram.com/heyzanice/ https://heyzanice.modoo.at/ |
2022 장애예술교육 매개자 과정 <빈칸투어> |
최근 진행된 현장 중심의 장애예술교육 연구 사례를 바탕으로 참여자가 각자의 질문(빈칸)을 여행하듯 탐색하고 공유하는 프로그램 |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 https://www.ieum.or.kr/user/show/view.do?idx=592 https://www.youtube.com/watch?v=izN3n2KOiTs&t=129s |
2021 생활문화 기획자 아카데미 <알지만 모르는 생활문화> |
생활문화(정책)에 대한 자기 언어화를 위한 대화형 학습 모임(4회차) | 서울문화재단 | https://www.sfac.or.kr/upload/archive/2022/7/202/document/2022-07-21-6edef4bf-216a-49ed-b9d2-0ca2905b69a7.pdf |
위의 사례들은 하나의 사업이나 프로그램을 어떻게 기획, 운영할 것인지를 회의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어떤 질문을 가지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실천을 해나갈 것인지’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일상적 모임 형태를 띄고 있다. 한 두 명이 교육 대상 혹은 프로그램을 위해 아이디어를 내거나 계획안을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욕구와 필요를 바탕으로 만나며 동료를 찾아가는 것이다.
낯선 전문성이 필요한 순간
서문연이 앞으로 예술교육 관련 매개 기관 간의 고민을 연결하며 서로에게 자연스러울 수 있는 동료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면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기존과는 조금 다른 전문성이다. 사업 중심으로 자문하던 전문위원이 아니라 현장의 목소리에 공감할 수 있는 대화의 동행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서문연의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오히려 가장 자연스럽고 전문적일 수 있는 (문화재단 간) 매개자가 될 수 있다.
어떤 순간에는 대화가 수다가 되도록 편하게 들어주는 전문성. 그 수다 속에서 반복되는 갈증을 끄집어내어 공동의 질문으로 던져볼 수 있는 전문성, 그 질문이 너무 담론화, 고도화되고 있을 때 예술적 표현의 미세한 순간으로 다시 돌아와 보자고 제안할 수 있는 전문성. 서문연은 이러한 전문성을 토대로 그 위에 페어든 박람회든 어떤 방향성의 기획을 시도할지 고민해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기획이 간담회에서 발견된 현장의 목소리에 대한 ‘공감’에만 머물지 않기를 바란다. 고민과 실천이 성취감을 얻기 어려운 시대가 이어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애쓰고 있음을 서로 공감만 해주는 따뜻함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애써도 되지 않는 것을 멈춰보자는 목소리, 각자의 이상하고 낯선 실천들을 뽐낼 수 있는 환경, 요즘 중요한 것 말고 각자에게 중요한 것에 대한 예술적 주장 등이 덜 착하고 덜 뻔하게 등장할 수 있기를. 다소 광범위한 관계망 위에서 서문연이 동료를 만들어가며 활동의 좌표를 찍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