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큰 기둥 사이에서 깊게 깊게
서울문화재단
지역예술교육TA 사업 결과자료집 원고
큰 기둥 사이에서 깊게 깊게
최선영 / 문화예술기획자
나는 지난주 국내외 예술교육 활동가가 모인 워크숍에서 분무기로 허공에 물을 뿌리며 물이 뿜어져 나오는 순간을 천천히 들여다보자고 했다. 20여 명이 번갈아 분무기로 물을 뿜으며 그 익숙한 순간에 잠시 집중해 보았다. 나는 예술 이전에 누군가의 표현 행위가 작은 단위로 시도되거나 관찰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내가 예술교육 현장에서 만났던 5살 아이는 분무기에서 물이 나오는 순간마다 일정한 간격으로 ‘화-락!, 화-락!’ 리듬을 타듯 소리를 내뱉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작은 순간에도 집중하며 예술교육을 이어가고 있을까. 나는 현장에서 언제나 작은 것을 본다. 큰 것을 보게 될 경우, 그것은 작은 것들의 연결, 혹은 총합으로 읽힌다. 작은 것은 참여자 한 명, 한 명의 표현이나 눈빛, 말투, 흔적, 혹은 외면 등에서 미세하지만 일관되게 발견된다. 그 하나하나는 사소해 보이지만 분명한 자기 발화의 힘을 갖는다.
나는 ‘작은 단위의 표현 행위’라고 스스로 일컬으며 예술교육에서의 참여자의 개별성을 연구 해오고 있다. 그 토대에는 참여자를 궁금해하는 마음, 그리고 구체적인 관찰의 시간이 흐른다. 내가 본 것, 내가 들은 것, 내가 참여자에게 제시했으나 전해지지 못한 것들을 관찰하고 그것으로 다음 연구와 활동을 기획한다. 왜냐하면 초등학생, 어떤 지역의 아동, 어떤 장애 유형의 사람 등으로만 사람을 구분해 대상별 예술교육을 한다는 관점은 너무 ‘큰’ 단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작고 섬세하게 관찰하고 기획해도 또 다른 '사람'을 만나면 다시 작고 작은 관찰을 이어가며 새로운 활동을 상상해야 한다.
지난주를 포함한 여러 워크숍, 교육 현장에서 이러한 관점으로 활동을 이어가던 와중에 서울문화재단의 ‘지역예술교육TA(Teaching Artist)’ 사업에 컨설턴트로 협력을 하게 되었다. 작은 것에서 질문을 시작하는 게 익숙한 나에게 이 사업은 큰 구조와 이슈들의 덩어리처럼 인식되었다. 우리동네키움센터(이하 센터)와 재단과 TA의 역할 구조, 센터별 특성과 행정 처리 방식에 따른 TA의 활동 범위, 재단과 TA의 관계 설정, 그리고 ‘지역’이라고 뭉뚱그려 언급되는 사업의 주제 같은 무엇. 그래서 참여자의 개별 표현이 갖는 의미보다 사업의 구조와 이슈에 먼저 눈이 가게 되는데 그럼에도 그 주변적 상황을 살펴보았다.
서울은 돌봄제도와 예술교육정책을 연결하려는, 혹은 해야 하는 정책적 필요 안에 있었다. 서울에서의 사업들은 많은 시민들에게 효율적이고 공정하게 제도적 혜택을 제공해야 하고 그러한 시대적 ‘모델’을 솔선수범해서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양한 기관이 먼저 생기고 낯선 이름의 공간도 기획, 운영되며 동시에 금방 사라지기도 한다. 그 기관이나 공간 간의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것도 ‘모델’을 보여주는 방식 중 하나다. 그래서 타 지역에서는 예술교육의 내용이나 범위의 다양화, 혹은 지속 자체에 집중하지만 서울은 그 예술교육을 담는 구조를 새로운 ‘모델’로 보여줘야 하는 상황을 자주 만난다. 그런데 이 상황은 예술교육의 본질에 집중하는 대신 사업 구조에만 몰입하는 의도로만 해석할 수 없다. 서울이나 서울문화재단만의 ‘문제’라고 보는 것은 쉬운 해석이다. 그보다는 ‘큰’ 구조의 설계 자체로 예술교육의 의미와 성과까지 증명해야 하는 지역의 상황적 ‘어려움’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이해관계자와 바라보고 있는 눈이 많은데 그 눈들이 주로 ‘큰’ 것만 볼 수 있는 상황이라면 예술교육이든 어떤 내용이든 그것을 담는 그릇의 모양과 특징을 보여주는 데에 많은 에너지가 쓰이게 된다.
그렇기에 ‘지역예술교육TA’ 사업 주변에서 작동하는 상황을 토대로 센터, 재단, TA의 고민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특히 사업 구조가 모두 확정된 상태에서 투입되다시피 참여하게 되는 TA들의 입장을 들어보면 이 상황의 어려움이 여러 어려움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것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돌봄 역할을 하는 센터와 재단의 협력 관계가 중요한 사업 구조 안에서 심지어 ‘지역’이라는 요소가 TA의 질문 시작점으로 제시되었다. 이때 TA들은 본인이 만났던 어린이, 해봤던 표현 행위의 어떤 순간, 예술에 대한 자기 질문을 시작으로 활동을 상상하기 어렵다. 지원사업에도 선정되어야 하기에 사업적 주제나 특성을 결국 큰 단위의 질문으로 자신에게 우선적으로 던지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상황도 작용하는데 모두 본 사업의 구조상 발생하는 요소들이다.
첫 번째는 낯선 공간에의 활용이다. 센터는 돌봄제도 안에서 공공적 역할과 의미를 바탕으로 기획된 공간이다. TA는 자신의 작업 공간이나 활동 공간이 아닌 새로운 공간에 재료나 장비를 ‘가지고 가서’ 예술교육을 해야 한다. 센터의 공간적 인프라는 훌륭하지만 TA에게 그곳은 자유롭고 익숙한 공간이 아닌 경우도 많다. 센터의 공간 사용 관련 원칙이나 행정적 절차도 고려하며 활동을 실행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경험이 TA와 센터에게 상호 이해를 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하기도 한다.) 어쨌든 TA는 낯선 공간을 활용하며 참여자와의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나의 공간에서 ‘있던 것을 펼쳐’ 기존의 공간적 분위기를 극대화하며 예술을 하는 것과 누군가의 공간에 가서 ‘가지고 간 것을 꺼내어’ 그곳의 분위기를 고려하며 예술을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두 번째는 센터마다의 운영 시스템이나 홍보 방식에의 고려이다. 예술교육 참여자를 모집, 접수하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과정은 센터의 운영 체계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에 따라 센터가 지역 관계자와 소통해 왔던 방식 안에 예술교육의 내용을 넣어 홍보와 운영을 해야 한다. 예술이 갖고 있는 비언어적이고 다층적인 의미를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쉬운 언어로 소개해야 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또한 참여자에 따라 세부 활동을 계획하기보다 홍보 일정에 맞춰 확정된 내용을 공지하고 그에 따라 활동을 이어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예술교육이 벌어지는 현실에 대한 상호 학습의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센터의 운영 구조에 예술교육의 의미나 내용을 끼워 맞춰야 하는 어려움을 만들기도 한다.
세 번째는 서울문화재단의 TA 사업에서 적극적으로 선택, 활용되어 온 예술교육 방법론의 영향이다. 특히 10년 이상 실행되었던 학교 중심의 TA 사업에서는 2시간 정도의 일정한 시간 안에 몇 가지 장르를 통합한 계획 중심의 예술교육이 주로 이루어졌다. 예술교육이 시도되는 구조나 방식이 오랜 시간 고정되어 있었기에 TA들은 그 안에 담을 수 있는 내용과 형식에 집중해 왔다. 이에 따라 일부 TA들은 폭넓은 의미의 예술교육 자체에 대한 실험이나 질문보다 서울문화재단 사업에 적절한 예술교육 방법론 모색 및 역량 개발에 집중하기도 했다. 결국 예술교육이 제도권 사업으로 지속되는 상황 속에서 지원사업에의 선정과 적응에 집중하게 되는 TA들의 입장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어쨌든 이러한 상황에서 TA들은 그동안 지배적으로 작동해 온 ‘안정적인’ 예술교육 방법론의 기준을 스스로 해체하고 반응적이고 유연하게 활동을 이어가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요소들은 예술교육의 무엇을 해내는 데에 어려움으로 작동할까. 어려움의 종류와 양상을 진단하는 것보다 사실 이러한 질문이 더욱 중요하다. 서울문화재단이든 TA든 각자가 지켜내고자 했던 예술교육의 중심이나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사업이 큰 의미와 구조를 중심으로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상황과는 별개로, 예술교육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주체로서 개개인은 어떤 가치를 주장하고자 했을까. 그 근거는 역시나 큰 단위의 정책적 기조나 사업적 기획 구조에 있을까. 혹은 바로 오늘 만난 참여자, 결국 ‘사람’의 작고 작은 무엇 안에 있을까. 그것은 정말 작기만 할까. 개별성이라고도 볼 수 있는 사람마다의 무엇이 예술교육을 필요로 하는 어떤 순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서울문화재단의 여러 사업들이 국내의 시대적 메세지를 던지거나 사례를 보여줘야 하는 상황, 혹은 어려움 안에 있다고 해서 예술교육을 고민하거나 실천하는 사람들도 현장에서 매 순간 만나게 되는 ‘사람’, ‘개별성’을 큰 구조를 통해서만 바라봐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표현 행위를 관찰하고 기억하려는 사람과, 사업의 현실적 성과 마련에 애쓰는 사람의 역할이 혼재되지 않도록, 누군가는 작은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미련한 관계 맺기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그것이 누군가의 귀중한 역할임을 지지하는 분위기와 인식 마련도 중요하다. TA들의 유연하고 열린 태도가 일반적 프로그램의 운영 흐름을 벗어난 미흡함으로 평가되지 않도록 공식화된 언어와 공감대 형성도 중요하다.
이러한 말들이 너무 ‘의미적’이기도 한데 그럼에도 ‘지역예술교육TA’ 사업에는 그 의미에 집중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돌봄’과 관련된 기관과 예술교육이 만나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사람마다의 문제보다 개별화된 특징에 집중하고 그 주변을 둘러싼 환경적 어려움을 살피며 그럼에도 관계 맺기를 지속하는 것이 돌봄에서도 중요한 ‘의미’이기 때문이다. 돌봄은 성과라는 말과도 잘 연결되지 않는다. 지금 사업 구조에서는 돌봄 관련 사업과의 연계성이 성과는 될 수 있지만 그 성과가 돌봄의 중심에 있는 ‘사람’보다 앞선 주제가 될 수는 없다.
다시, 사업의 의미와 개선 방향을 고민하다가 그 답을 찾기 위해 물뿌리개를 바라본다. ‘화-락! 화-락!’ 그 리듬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나의 질문이 작은 구멍을 깊게 파는 동안 세상의 질문은 큰 기둥을 사회 곳곳에 세운다. 여기저기에 기둥이 세워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져갈 때에도 내 발밑 구멍이 깊게 물길을 내고 숨 통을 튀우는 소리에 귀 기울인다. 그 구멍은 기둥을 무너뜨리는 목적이 아니라 나의 길을 내는 목적으로 나아간다. 그걸 잊지 않으면 나의 구멍이 작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을 공식적으로도 응원하는 움직임이 커진다면 우뚝 솟은 기둥과도 팽팽하게 연결된 땅속 기둥들이 조금씩 생겨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