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그치, 모르는 게 재밌으니까
서원대학교 기획사업
메타표현예술교육 <그치, 모르는 거니까> 관련
성과공유회 발표 원고
그치, 모르는 게 재밌으니까
최선영 / 문화예술기획자
이번 프로그램의 제목은 <그치, 모르는 거니까>였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두 명의 예술가가 속을 알 수 없는 중학생들과의 만남 속에서 학생들의 언어나 의도를 섣부르게 판단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실 너희를 잘 모른다’고 전제하고, 그러니까 오히려 만나보자, 무언가를 같이 해보자고 제안했다. 특히 각자의 삶의 서사와 자신만의 감정선을 가지고 있는 10명 남짓의 중등 남학생들과의 만남에서는 확정적인 계획보다 작은 호기심과 열린 마음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익명성을 활용한 메타버스 활동을 통해 이 학생들을 만나려 했던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울감, 무기력감, 낮은 사회성 등을 이유로 일상적 학교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과 메타버스 세상에서 다른 표현의 방식을 실험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반적인’ 학생이란 없지만 그럼에도 일반 학교에서의 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학생들을 먼저 참여자로 모집하고자 했다.
하지만 학생 섭외에 어려움이 있었다. 어떤 상태에 있는 학생들을 (학교가 다르더라도) 개별적으로 섭외하여 메타버스 세계에 동시에 접속하게 하는 것은, 사업 운영상 조건이었다. 이에 따라 섭외 기간이 다소 길어졌고 이후 이러한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대안학교와의 연계를 통해 그 학교의 재학생들이 한 교실에 모여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래서 여러 학교의 서로 모르는 학생들이 참여하는 구조는 마련되지 못했다.) 이러한 진행 구조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지만 흥미로운 진행을 가능하게 만들기도 했다. 실제로는 같은 공간에 있는 익숙한 관계의 학생들이 다른 차원에서 잠시 만나 소통하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종 학생들이 ‘누구누구 지금 안 하고 있어요!’라고 말하기도 했고 옆 친구 사진을 찍어 메타버스 스크린에 공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단점도 있었는데 같은 공간에 있다보니 하울링 문제로 마이크를 학생들이 거의 사용할 수 없었다. 예술가들이 끊임없이 말하거나 채팅창으로 의견을 묻는 등의 진행을 해야만 했다.
어쨌든 이러한 변수를 포함하여 이번 프로그램을, ‘메타버스를 활용한 예술교육’으로 의미화하자면 먼저 논의의 범위를 명확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업은 전제조건 자체가 ‘이프랜드’라는 어플을 반드시 사용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막연하게 메타버스라는 넓은 범위를 전제하기보다 ‘이프랜드’ 어플 내 소통 환경을 바탕으로 논의를 이어갈 필요가 있다. 실제로 누군가에 의해 개발, 구현된 메타버스 세상은 그 안에서 가능한 표현 및 소통 방식에 따라 이용자들의 움직임과 활용 범위가 결정된다. 그래서 예술가들도 일단 ‘이프랜드’에서 활용 가능한 공간(이프스퀘어), 그 공간에 놀이적 요소를 추가하는 방식(구름, 보드, 실로폰 아이템 등의 배치), 아바타를 이용한 시각적 표현 요소(이모티콘, 제스처, 복장 등)를 면밀하게 살펴보았다. 그리고 예술가들도 그 요소와 환경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가졌는데 생각보다 그 시간이 쉽지 않았다. 메타버스 세상에서 나의 아바타를 자유롭게 움직이며 원하는 순간에 원하는 동작을 하는 것이 예술가들에게도 낯선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은 10주간 진행되었고 예술가들은 학생들의 반응, 참여하는 방식을 2-3주 간 살펴보며 이후의 활동들을 조금씩 상상해 갔다. 이때 발견한 것은 학생들이 매우 빠르고 다양하게 ‘이프랜드’ 환경에 적응하며 여러 도구를 활용한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평소에 하던 게임에서의 작동법과 유사한 점이 있어서인지 학생들은 자신의 아바타를 움직이거나 다양한 아이템을 활용하는 등의 활동에서 전혀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그래서 학생들의 활동을 관찰하며 예술가들이 이후의 구체적인 활동을 계획해 볼 수 있었다. 그것은 45분의 짧은 시간 동안 어떤 흐름으로 만남을 이끌면 좋을지에 대한 힌트였다.
예를 들면, 저녁 식사 후 메타버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 중 일부는 5분 먼저 ‘이프랜드’에 접속하여 공간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시간을 맞춰 들어오는 학생들도 그날의 주제나 활동보다는 새롭게 입장하게 된 공간(이프스퀘어)에 대한 궁금함과 호기심이 있었다. 그래서 일단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5분 정도 공간을 자유롭게 돌아보며 탐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공간에 어울리는 음악을 예술가가 사전에 준비하여 탐색 시간 동안 모두에게 들려주기도 했다.
그렇게 하면 학생들도 그 공간에서의 활동을 덜 낯설어하며 그날 무엇을 할지 더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그때 조금씩 구체적 활동을 주로 놀이의 방식으로 제안하였는데 이때에도 ‘이프랜드’가 가지고 있는 메타버스 환경을 적극 활용했다. 사실은 활용할 수 있는 요소가 예상보다 다채롭지 않아서 학생들이 직접 무언가를 선택하거나 만들어 표현하는 것의 범위가 좁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고 그래서 예술가들이 몇 가지 요소를 극대화하여 놀이를 개발하는 방식으로 활동을 이어갔다.
이때 활동을 기획하는 기준은 학생들의 자발적 표현, 자유로운 움직임, 낯설지만 자신에게 자연스러운 선택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욱 놀이 방식으로 제안을 했는데 예를 들면, 다른 공간(이프스퀘어)을 자유롭게 둘러본 후 마음에 드는 곳에 가서 자신이 원하는 배경으로 사진 찍어오기, 10년 후 내 모습으로 아바타 바꿔서 재입장하기, 함께 나눴던 대화에서 나온 말을 노래 가사처럼 생각해보고 다음 가사를 지어보기, 멀리 도망가거나 숨어버린 친구 아바타를 찾아서 사진으로 찍어오기, 찍어온 사진 속에서 어떤 대화가 이루어질지 이야기 만들기 등이었다. 이것은 아바타를 자유롭게 꾸밀 수 있고 공간(이프스퀘어)을 자유롭게 선택해 볼 수 있고 화면 캡쳐도 쉽게 할 수 있다는 ‘이프랜드’ 어플의 요소를 적극 활용한 시도였다. 이런 시도들에 큰 힌트가 된 것은 학생들이 메타버스 안에서 지속적으로 했던 여러 행동이나 선택들, 예를 들면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다른 아바타 앞에서 춤추기, 다른 아바타가 가기 어려운 곳에 가서 숨어있기, 그리고 딴짓하기 등이었다. 예술교육의 환경이 메타버스로 바뀌었을 뿐, 참여자에 대한 관찰을 바탕으로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가는 것은 그동안의 예술교육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학생들은 예술가의 제안이나 질문과 무관하게 끊임없이 딴짓하기와 과한 표현하기를 이어갔는데 이것은 어떻게 보면 장난스럽게 활동에 참여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적극적인 자기표현으로 해석되었다. 다 같이 무엇을 해보기로 했지만 ‘나는 이렇게도 해보고 있다’고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더 재미있다’고 말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오히려 다양한 딴짓이 벌어질 수 있는 놀이를 기획하거나 활동의 앞뒤에 자유로운 시간을 적극적으로 마련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딴짓하기와 과한 표현하기는 특히 메타버스 세상에서 더욱 폭 넓게 할 수 있는 자기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실제 교실에서는 선생님이나 친구가 말을 하는 동안 가만히 앉아서 들어야 하는 경우가 많고 딴짓을 할 때도 공책에 낙서를 하거나 딴생각을 하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메타버스 안에서는 일단 우스꽝스런 복장으로 등장할 수 있고 그 모습에 자신도 신이 나서 춤을 출 수 있고 상황에 맞지 않는 동작도 해볼 수 있다. 친구가 발표를 하는 시간에 재미가 있으면 이모티콘을 마구마구 쏠 수 있고 다른 아바타가 웃긴 춤을 추면 그 옆에 가서 자신도 평소 하지 않던 동작을 하며 흥을 돋굴 수 있다. 또한 실제 교실에서는 학생이 자신의 활동 참여를 증명하거나 몸을 바른 자세로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를 쏟게 되지만 메타버스 안에서는 그 에너지를 오히려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며 자신의 표현 범위를 탐색할 수 있다. (예술가들도 어른스러운 복장과 자세에 집중하기보다 작업실 책상에 앉거나 침대에 엎드려 더욱 편안한 마음으로 농담과 함께 활동을 진행할 수 있다.) 이렇듯 학생들이 메타버스 안에서 스스로 딴짓과 과한 표현을 선택, 실행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 방식이 일관성은 없더라도 자유로운 분위기를 형성하게 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분위기는 학생들에게 ‘이러한 표현을 해도 괜찮다’는 신호로 작용하였고 자발적 참여도 조금씩 이끌어냈다.
물론 매우 자유로운 분위기로 인해 활동의 진행에서 다소 산만한 상황이 벌어지기는 했으나 이러한 순간도 학생들의 능동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기에 의미가 있음을 오히려 끊임없이 언급하였다. 동시에 학교에서 현장 진행을 함께하는 교사분께도 학생들을 특별히 제지하거나 참여 방식을 제한하기보다 현재 자기답게 참여하고 있음에 응원을 보태어달라고 부탁드렸다. 그 이유는 학생들이 특별한 조건 안에 있는 대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니라 활동 전반에서 ‘참여자의 자유로운 표현’을 중요하게 전제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그치, 모르는 거니까>는 학생들이 발견하게 되는 자신의 다양한 표현 행위나 참여 방식을 ‘서로 모를 수 있는 영역’으로 남겨두고 오히려 그것이 활성화되어 드러나도록 지지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메타버스 환경은 새로운 소통 구조와 분위기를 바탕으로 자기표현을 할 수 있는 장소 역할을 하였다. 그 표현 안에는 바르고 적절하고 일반적이고 학생다운 순간 대신 딴짓을 하고 새로운 표현도 하고 과한 제스처도 하고 그래서 자기다운 순간들이 포함되었다. 이때, 그 순간이 벌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예술가도 학생도 ‘모를 수 있다’고 전제하고 만남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아는 것을 하는 것, 혹은 무언가를 알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영역을 인정하며 오히려 그것을 향해 나아가 보는 것’이 예술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던 예술가들에게 메타버스 세상도 ‘모르는 영역’이었다는 것이 예술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프로그램은 예술교육을 주도하는 사람에게 익숙한 내용이나 방식을 참여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낯선 세계로 함께 가보는 기회였다. 모르는 것을 해보는 게 재미있고, 예술의 영역이 그 역할을 극대화할 것이라고 전제하는 사람들에게 메타버스 환경에서의 예술교육은 동시대 기술의 학습이 아니라 상호적 탐색의 기회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