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글] 작은 것에 크게 붙여본 이름 <메타적 실험실>
충남문화관광재단
간접지원과정 <메타적 실험실>
과정기록집
● 메타적 실험실 : 다원예술지원, 사회적가치특화지원, 예술교류지원 등 3개의 사업에 참여하는 예술인 대상의 간접지원 과정 ● 운영 기간 : 2023년 6-12월 ● 구성 - 오리엔테이션 (분야별 1회, 총 3회) - 활동강화 과정(공통/분야별) (6회) - 체험 및 탐방 (2회) - 교류 협력 중간공유회 (5회) - 다원예술 분야 1:1 인터뷰 (6회) - 성과확장 예술인 집담회 (분야별 1회, 총 3회) - 성과환류 의견 청취(공유회) (1회) - 과정기록집 제작 |
기록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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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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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에 크게 붙여본 이름, <메타적 실험실>
최선영 / 간접지원과정 PM, 문화예술기획자
#비수기 없는 창작과 질문
예술과 비수기.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은 두 단어가 쉽게 연결되는 경우가 있다. 지원사업이라는 틀 위주로 예술인의 활동을 바라본다면 말이다. 지원기관도 예술인도 예술정책, 지원제도에 대한 논의를 바로 지원사업으로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10년 사이 많은 기관이 생겨나고 지원제도도 늘어났기 때문인 듯하다. 더 정확히는 비슷한 목적과 방식을 취하는 지원사업이 확대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예술활동을 지속하는 것에 대한 질문이 지원사업에 어떻게 참여할 것인가, 지원사업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등으로 이어지곤 한다.
작년부터 충남문화관광재단 간접지원과정에 프로젝트 매니저(이하 PM)로 참여한 나도 바로 그 지원사업에 10년 이상 기대어 살았다. 정산을 하루 이틀만에 후루룩 마무리할 정도로 지원사업에 길들여졌을 무렵에는 예술이나 창작활동 자체에 대한 질문보다 지원사업의 개선 방안에 더 관심이 커지기도 했다. 그래서 조금 다르게 지원사업을 운영하려는 기관의 시범사업들에 협력하는 활동을 확대해 나가기도 했다. 사실 이번 간접지원과정 역시 그러한 흐름에서 참여한 나름의 작업이었다. 지원사업에 집중하게 되는 구조와 상황 안에서 더 넓은 관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대한. 왜냐하면 다수가 하나의 지원사업 자체의 차별성과 효과에 집중하는 것과 별개로, 예술인들은 창작의 일부로서 지원사업을 참여, 활용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여러 지원사업을 경험하며 들었던 생각이기도 하다. 나는 여러 경험과 맥락 안에서 이 사업도 참여하는 것인데, 왜 관계자나 주변인들은 지원사업 하나의 결과물이나 효과를 위주로 나의 활동을 해석하는 것일까.
#지원의 의미와 역할로부터
지원사업의 대상일 때의 나는 11월이나 12월쯤 비슷한 방식과 표현으로 ‘이 사업의 성과를 공유해달라’는 요청을 받곤 했다. 그러면 여전히 이어지는 고민은 남겨두고 행정적 절차에 따라 적당한 답변을 제출한 후 비수기라 불리는 시기로 스스로 숨어버리곤 했다. 그리곤 제출할 수 없거나 할 필요 없는 창작의 영역을 과연 누가 들여다볼까, 그러한 관심과 궁금함도 느껴지지 않는 상황 안에서 내가 받은 ‘지원’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했다. 어느 순간, 나조차도 지원사업에서 원하는 성과 외에 나의 성과를 스스로 외면하게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기에 충남문화관광재단에서 간접지원과정을 기획하면서 그 무엇보다 ‘예술인은 하나의 지원사업만 참여하는 사람이 아니라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창작을 하며 살아가다가 본 지원사업에도 참여하는 존재’라는 관점을 중요하게 전제하였다. 재단의 예술지원팀도 지원금 교부를 넘어 예술인을 대하는 태도를 고민하며 기관의 역할을 함께 모색하였다. 그렇게 지원에 대한 의미를 고민해 보고자 했던 여러 주체의 협력으로 간접지원과정 <메타적 실험실>은 시작되었다.
#작은 것을 경험하거나 선택하며
그런데 이름이 거창하다. 뭔가 획기적이고 독특한 것을 교차시키며 없던 것을 만들어내야 할 것 같은. 하지만 실제 <메타적 실험실>에서 여러 예술인들과 함께 한 것은 매우 작고 소소하고 일상적인 것이었다. 소리 들어보기, 식물 만져보기, 색을 표현하기, 점토 만지기, 대화 나누기, 강아지 만져보기, 주사위 던지기 등등. 그러다 더욱 자신에게 집중하며 작업에 대해 이야기하기, 요즘의 고민 나누기, 미완성의 질문 공유하기, 창작의 과정 나누기 등을 시도하였다. 이 모든 것은 창작을 하는 사람들에게 소중한 순간들이다. 많은 지원사업과 예술정책들이 거시적인 주제나 융복합적인 방법론을 언급하더라도 예술인 개인에게는 더욱 미세하게 포착되거나 시도되는 삶의 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특정 장르로만 구분되지 않는 그 작은 요소들을 교차시키며 경험하는 것 자체가 가장 메타적인 순간이었으리라. 그리고 덜 외롭고 더 재미있도록 그것을 다른 사람과 함께 해보는 과정도 필요하다. 특히 충남 예술인들끼리 자주 만나기는 어렵기 때문에 종종 가깝게 만나는 경험은 매우 중요했다. 협업이나 연결 자체를 목적으로 두지 않더라도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가끔 인사도 나누며. 그래서 <메타적 실험실>은 예술인이 누군가를 만나고 싶거나 만날 수 있을 때 주로 본인이 ‘선택’하여 참여하는 과정으로 운영하였다.
#재단에게는 사업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는 기회
하지만 이러한 과정은 예술인만을 염두에 둔 기획이 아니었다. 재단의 예술지원팀도 <메타적 실험실>을 함께 기획, 운영하며 재단에 필요한 기회를 만들고 질문을 이어나갔다. 지원금을 공정하고 정확하게 교부하고 결과 발표를 확인하는 것 외에 지원기관의 역할을 모색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그렇기에 예술지원팀이 기존에 없던 이러한 간접지원과정도 작년부터 시도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메타적 실험실> 과정 안에서 예술지원팀의 구성원들도 참여자의 일부가 되어 기획에 대해 질문하고, 작은 오브제를 만지고, 자신만의 음악을 상상하고, 기록과 디자인에 대한 고민을 넓혔다. 또한 중간공유회와 집담회, 예술인 1:1 인터뷰 등을 통해 사무실이 아닌 현장에서 예술인들의 현재 고민과 일상을 만났다. 이번 사업이 어떻게 얼마나 추진되었는지를 보고받는 것이 아니라 A라는 예술인이 왜 그 악기를 계속 다루는지, B라는 예술인이 왜 그 주제로 몇 년째 창작을 이어가는지 자세히 듣고 질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보다 예술지원팀 구성원들이 현장을 향해 궁금함을 품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간접지원관정이 누군가에게 받은 숙제처럼 운영되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누군가 ‘당신의 창작 활동이 궁금하다’고 보내는 신호는 예술인들에게 무엇보다 큰 힘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예술인에게는 다양한 자극과 경험의 기회
충남에는 수도권에 비해 매우 적은 수의 예술인이 있다. 또한 넓은 충남 지역 안에 예술인들이 각자 멀리 떨어져 있어 일상적으로 교류하며 서로 영감을 주고 받거나 협업 기회를 모색하기에 어렵다. 그렇다고 창작이나 예술 자체가 중심이 되는 거점형 공간이나 다채로운 이벤트가 다양한 것도 아니다. 여러모로 예술인들이 개별화된 활동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술인들은 ‘알아서’ 활동 동력과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어려움’ 안에 있다. 이러한 요소들이 특히 작년 간접지원과정을 통해 포착되었기에 올해는 예술인들이 다채로운 자극과 경험을 나눌 수 있는 기회로 <메타적 실험실>을 운영하고자 했다.
자신과 다르게 작업하는 사람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다른 예술인과 고민을 나누는 편안한 자리에도 참여하고, 예술 이외 영역으로의 역할 확장을 모색하는 예술인도 만나보았다. 모두에게 만족스럽고 특별한 경험이 되기는 어려웠지만 이러한 순간들이 더욱 다양하고 정기적으로 충남 지역에서 벌어지면 예술인들에게 자연스러운 활동 동력을 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창작은 각자의 몫
그렇다. 이 <메타적 실험실>은 지원사업 속 올해 16개의 사업이자 작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거나 내용적 고도화, 예술가적 역량 강화를 목적으로 두지 않았다. 창작은 예술인이라면 당연히 각자의 언어와 속도로 이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창작은 몇 개월 간의 사업 추진 후 초겨울쯤 마무리되는 그런 게 아니다. 하지만 개별 사업 안에서 예술인들이 갖게 되는 질문은 <메타적 실험실>이란 이름으로 종종 열렸던 대화, 공유의 자리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는 사업의 추진 현황 대신 더 근본적이고 일상적인 창작 관련 대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혹은 비언어적인 경험 중심의 워크숍이 열리기도 했다. 그렇게 여러 자극의 요소들이 표면을 넓힐 때 예술인들이 각자에게 필요하거나 흥미로운 지점들을 창작의 범위로 끌고 갈 것이라 전제했다. 올해 혹은 몇 년 후에라도.
그렇기에 이번 간접지원과정이 정말 메타적이었을지 실험이 되었을지는 당장 알 수 없다. 예술인들마다의 올해 사업 결과물로는 더욱 알 수 없다. 단지 예술인에게 그보다 중요한 것을 이제부터 각자 해나가면 된다. 그 과정에 비수기는 없다. 그렇기에 창작은 지원사업 하나를 시작하고 끝내는 것보다 더 어렵고 지난하다. 어느새 창작의 옆 트랙에서 같이 달리고 있던 지원사업이라는 존재가 익숙해지고 있지만 잊지 말자. 이 트랙의 현재와 다음을 설계하고 선택하는 것은 언제나 예술가의 몫이다. 그 과정에서 <메타적 실험실>이 그 선택의 폭을 조금이라도 넓혔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