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문화예술교육 <용사의 연금술> 리뷰 : 겉돌다가 삐죽, 약하니까 함께
2024 서울문화재단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_자율기획형
<용사의 연금술>
기획 : 구은정, 이려진
*관련 작업 기록
https://9usaram.tistory.com/14
(프로젝트)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만날 사람은 만난다 <용사의 무기>
장애인 비대면 예술 콘텐츠 개발의 일환으로 진행한 프로젝트입다. 시각 장애인이 내 안의 두려움에 맞서 상시적으로 몸을 스트레칭하고 감각할 수 있는 용사의 무기 4종과 개인의 수련과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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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만날 사람은 만난다 <두려움이 무기가 될 때>
2021 제작한 용사의 무기는 '무술'을 테마로 시각장애인 및 비장애인이 심신단련을 할 수 있도록 제작된 예술 오브제입니다. 촉각적인 감각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무게, 형태, 재질로 제작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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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만날 사람은 만난다<용사의 심장>
'용사의 심장'은 판타지 스토리가 가미된 촉각 대화 툴입니다. ‘옛날 옛적 스무 명의 용사가 죽고 난 뒤 심장을 남겼다. 그 심장은 그들의 삶의 모습을 닮아 있다.’ 라는 컨셉으로 제작되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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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연구보고서 수록 리뷰 원고)
겉돌다가 삐죽, 약하니까 함께
최선영 / 문화예술기획자
보이지 않는 원리를 찾아서
고요한 새벽에 요동치는 감정을 등지고 누워 그것의 뿌리를 깊게 내려다보는 날이 있다. 자신에게만 그런 순간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불안, 우울이라는 상태를 만나기도 한다. 혼자 알아차리고 마주하고 받아들이고 이겨내야 할 것만 같은, 그 보이지 않는 마음 속 움직임은 그렇게 각자의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는다. 심지어 나이를 훌쩍 먹으면 어른답게, 숙제를 더 지혜롭고 원활하게 해결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시간과 함께 더욱 커진 숙제의 무게는 어른답게는 커녕 사람답게 풀어내기도 벅찬 현재의 마음과 계속 충돌한다.
<용사의 연금술>을 기획한 사람, 그것에 참여한 사람들이 특히 그러한 것은 아니다. 마음의 근거가 되는 보편적 진리나 실재 원리를 딱 떨어지게 파악하기 어려운 ‘인간’은 대부분 그 어려움을 여러 요소로 감추거나 덮으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예쁜 찻잔으로, 어제 읽은 책의 한 문장으로, 말없이 곁을 지키는 반려동물과의 시간으로, 밀린 업무의 마지막 파일 정리로, 얼마 후에 떠날 여행에 대한 기다림으로.
<용사의 연금술>을 기획한 두 명의 예술가는 그럼에도 먼저 마음 속 움직임의 기초가 되는 근거를 찾아보았다. 발생학, 해부학 기반의 현대무용 워크숍, 호흡을 이용한 심신 정화 워크숍도 참여해 보고 주짓수와 VR복싱을 체험하며 어떤 상황을 마주할 때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 반응이 심리적, 신체적으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탐구했다. 그 외에 소매틱 심리학 전문가를 만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부적 요인이나 스트레스, 혹은 성장 과정에서의 초기 트라우마 등으로 인해 몸과 마음의 연결이 끊긴 채 살아가는데 그것은 자율신경계의 혼란이 왔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듣게 된다. 이러한 내용은 구체적이기도 하고 개념적으로 정리가 되어 있어 설득력 있는 정보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마음속 움직임의 원리, 그 근거가 되는 실재적 요소를 조금이라도 알게 된 것 같다.
그러면 조금 안심이 된다. ‘내 마음이 어떤 흐름 속 어디쯤에 위치된 것인지’ 그려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위치를 지도나 땅 위에 표시할 수 없지만 추상적이었던 심리적 상태는 ‘덜 길을 잃은 것 같은’ 또 다른 심리, 기분에 다다른다. 그리고 <용사의 연금술>을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이러한 원리나 학문적 근거는 반가운 길잡이가 된다. 맥락과 의도가 언어적, 개념적, 논리적으로 조금이라도 파악되기 때문이다.
원리 주변에서 비논리적으로 상상하기
그러나 <용사의 연금술>은 애써 찾은 원리를 향해, 혹은 그것만을 근간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예술가는 1회차에 참여자들에게 워크숍 참여 경험, 심리 전문가와의 대화 등을 소개하였으나 이제 각자의 원리를 찾아 여정을 떠나보자는 제안을 했다. 마치 어려운 문제의 풀이집을 찾아놓고 그것을 찾아봤던 경험, 그것이 내 옆에 있다는 사실 자체에 힘을 얻어 다시 어려운 문제를 마주하는 것처럼. 그래서 발견된 원리는 <용사의 연금술>의 작동 원리나 참여자의 활동 동기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단지 모호한 연금술을 구체적으로 시작할 수 있게 하는 첫 문장 정도가 되었다. 혹은 참여자들이 가끔 떠올려볼 수 있는 참고 자료나 장치가 되었다. 왜냐하면 예술이기 때문이다. 원리의 다음, 단계적 적용 사례, 효과적인 활용 방법이 중요한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술가도 참여자도 예술이 가진 비논리적이고 비효율적인 해석의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그래서 예술가는 미주신경, 교감신경계, 다미주 신경이론 등의 용어와 주짓수 기술의 의미 등을 들었음에도 그것을 예술적 맥락으로 재해석하여 참여자들에게 전달했다. ‘너무 긴장하지도 이완하지도 않으며 잘 싸우고 도망가자‘고. 신경이론에서 정리된 내용을 창작물에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싸움과 도망에 대한 각자의 방식을 이제 상상해 보자고 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도망가는 것도 자신을 지키는 하나의 방법임을 공식화하며. 그래서 <용사의 연금술>에서의 용사는 ‘잘 싸우고 잘 도망가는 사람’이라는 안내도 덧붙였다. 그래서 참여자들의 해석 범위가 더욱 넓어졌다. 멋지고 용감하게 싸워서 이기는 것만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는 지지의 언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술가는 ‘연금술’을 이렇게 해석하여 참여자들에게 안내했다.
‘몸과 마음을 연결하고, 지금 여기에 두는 연습. 심리적 필요에 의한, 물성 있는 창작 도구를 만드는 시간’
시집 속 글귀인가 싶은 이 표현은 오히려 참여자들에게 구체적인 풀이로 작동했다. 단어와 단어를 연결하는 표현들만 살펴봐도 자신의 참여 방식을 다양하게 그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연결하고, 여기에 두고, 연습하고, 만드는 것. 보이지 않는 것들을 연결하여 결국 보이는 것, 손에 잡히는 것을 만드는 것. 이 작업의 뉘앙스가 분명한 안개처럼 머릿속에 그려진다.
비논리가 자기 함정으로 빠져든다면
덜 명확하고 다소 추상적인 예술의 영역이, 그보다 더한 인간의 내면과 만나니 더욱 오묘하고 깊은 세계를 만날 것만 같다. 논리적이거나 과학적일 필요가 크지 않으니 그동안 외면해 왔던 자신의 감정, 마음, 심리에 더욱 집중도 하게 된다. 누군가 공감해주지 않았던 마음, 일반적인 기준에 동의할 수 없었던 감정, 사회화된 언어로 설명하고 싶지 않았던 기분이, ‘내 것으로서’ 중요하고 중요해진다. 하지만 누군가 자신에게만 과하게 몰입하면 상호적 대화가 어려워질 수 있다. 그래서 예술가는 1회차에 그러한 접근이 누군가에게는 너무 무겁거나 버거운 경험이 될 수 있음을 언급했다.
“용사의 연금술에서는
들여다 볼 수 있는 만큼만 들여다 보기
이야기할 수 있는 만큼만 이야기하기
꺼내 볼 수 있는 것 만큼만 꺼내어 놓기
다룰만한 것으로 만들어 내보기”
그리고 대화를 시작했다. 2회차에서는 참여자가 1:1로 마주 앉아 서로를 인터뷰했다. 안전한 소통 거리를 유지하며 현재 집중하고 있거나 어려운 것에 대해 타인에게 말을 했다. 그리고 서로 들었다. 어디까지 이야기하고 들을 수 있을지 가늠도 해보며. 자신에게 과하게 집중하는 것이 사람과의 관계에서 뾰족한 바늘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 자기 함정을 파지 않도록 말을 고르고 표정을 넘기며. 그리고 역시 서로 들었다. 사실은 말하고 싶다는 욕구보다 누군가 이 말을 들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컸던 건 아닐지 질문도 생겼다.
심리적 필요 주변에서 겉돌기
그리고 참여자들은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한 후 그 이야기가 담지 못하는 마음도 들여다보며 각자에게 심리적으로 필요한 것을 찾아봤다. 그것을 바탕으로 드디어 무기를 고안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용사의 연금술>에서 참여자들의 개별 작업으로 진행되었다. 참여자들은 일주일 동안 스케치와 메모를 하며 무기의 형태, 질감, 크기, 용도, 의미 등을 상상했다. 그리고 다시 예술가를 만나 나무, 금속, 유리, 흙 등 다양한 재료를 탐색하며 제작 계획을 세운 후 무기를 만들었다. 예술가는 여러 재료를 제안하거나 안내하며 제작 과정을 함께 했다. 심리적 필요에 따라 더 단단하게, 더 무르게, 더 큼직하게, 더 가볍게, 더 기이하게.
대체 왜 이런 걸 쓸데없이 만들려고 하는지 묻는 이는 없었다. ‘당신이 그것을 만들고 싶군요’라는 강한 공감을 전제로 제작 과정의 미세한 요소에 예술가가 전문적, 정서적 에너지를 집중했다. 그 모습은 마치 어린 시절 자신만의 만들기를 충분히 하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 현재의 만들기에 서로 맞장구를 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역시나 서로의 마음이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으로도 보였다. 무기의 기능이나 효과를 판단하거나 되묻는 대신 ‘정말 딴딴하다!’, ‘손가락으로 눌러보고 싶다’, ‘이 부분 묘하다’라고 반응하는 순간만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참여자들은 궁금한 것을 서로 물어보기도 했다. 무기에 대해 혹은 그것을 만들게 된 이유, 미처 듣지 못했던 이야기에 대해.
그런데 이것은 ‘겉돈다’는 인상을 주었다. 사람 간 소통이나 대화가 그렇다기보다는, 한 사람이 자신의 심리, 마음 주변을 겉도는 것 같은. 다르게 표현하자면, 그 사람이 자신의 마음 주변을 절대 떠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심리적 필요, 마음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거나 두렵지만, 그래서 겉돌 수밖에 없지만 그 곁을 떠나지 않는 것. 현재 발견되는 마음을 외면하면서 자신과의 관계 맺기를 시작하고 싶지는 않다는 의지. 그 의지로 참여자들은 돌을 깎고 나무를 자르고 점토를 빚고 실을 칭칭 감았다. 예술가는 그것이 의미 있다고 말하는 대신 적절한 도구를 알려주고 작업 공간을 제공했다. 그리고 만드는 시간을 함께 했다.
겉도는 시간에 대한 끄덕임 ‘그치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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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의 연금술> 안에서 누군가의 의지가 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전체 활동이 이루어진 ‘그치그치’라는 공간 때문이었다. 사람의 마음, 심리 상태에 집중하고 있는 예술가가 자신에게 편안하고 안전한 조건을 고려해 ‘그치그치’를 만들었고 참여자들을 초대했다. 그 공간에는 예술가가 평소에 만지거나 다듬거나 모은 오브제들이 가득했다. 예술가와 오브제에게 자연스러운 온도, 습도, 분위기, 빛, 소리, 향기 등이 ‘그치그치’를 채웠다. 그것은 참여자들에게 강력한 참여 동기가 되었다. 누군가의 일상적 고민이나 표현의 ‘흔적’이 공간에 존재하면 그 자체로 다른 사람에게 메시지가 되기 때문이다. 당신도 여기서 비슷한 상태로 함께 존재해도 괜찮다는. 그래서 1,2회차 전체 만남 이후에 ‘그치그치’가 개별 작업 공간 역할을 했을 때 참여자들은 각자의 호흡에 따라 ‘그치그치’에서 무기 제작을 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에너지, 정서, 경험, 분위기에 기대어 자신을 들여다보고 꺼내보는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만약 어떤 문화시설이나 모임 공간을 대관해서 <용사의 연금술>을 진행했다면 아예 다른 참여가 일어났을 것이다. 그만큼 예술(교육) 활동에 있어서 내용이나 방법보다 그것이 이루어지는 환경, 상황이 중요하다. 활동의 의도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상황이 마련되면 사실상 세세한 진행이나 동기 마련에 힘을 주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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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언가를 하고 싶다, 할 수 있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느끼면 그것의 방법을 스스로 찾기도 한다. <용사의 연금술>을 진행한 예술가는 이러한 요소를 고려하여 무엇보다 ‘그치그치’의 공간적 특성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했다. 일단 예술가에게 편안한 장소를 ‘그치그치’로 정하고 꾸미는 데에 수개월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용사의 연금술>을 시작하면서 참여자들의 반응을 고려해 바닥에 무엇을 깔아 둘지, 조명은 어떻게 배치할지, 어떤 소리가 얼마나 들리게 할지, 재료들은 어디에 놓아둘지 등을 하나하나 고민했다. 그것은 계획해 둔 활동을 매끄럽게 운영하기 위한 선택이 아니었다. 활동에 참여할 사람들에게 편안한 장소가 중요했을 뿐이다. 그것은 사람의 여러 마음이나 입장, 상황에 대한 끄덕임이기도 했다. ‘그치, 이런 분위기여야 함께 무언가를 해보고 싶지’ 같은 끄덕임. 누군가 ‘그 마음 알 것 같다’고 공간과 귀를 열어 사람을 대하면 예술(교육)에서 말하는 ‘참여’가 어렵지 않게 일어날 수 있다. 그것은 태도가 중요하다는 흔한 말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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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돌다 삐죽 튀어나온 중간 마음
무기는 여러 형태로 조금씩 완성되었다. 참여자들은 그야말로 완성을 향해 시간과 에너지를 들였다. 그래서 결과물로서의 무기에는 그동안의 고민, 대화, 잠시 들춰본마음이 응축되어 담긴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잘 다듬어진, 혹은 최종적으로 선택된 어떤 형태의 무기에는 마음이나 생각의 전부가 담기기 어렵다. 역시나 결과물은 각자의 마음 주변을 겉돌 뿐이다. 정확하게 완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기분이라고 해야 할지 감정이라고 해야 할지 심리 상태라고 해야 할지 모를 그 무언가는 정확하게 표현될 수 없다. 그것을 들여다보려고 하면 자신과 연결된 다른 것들이 줄줄이 보이기도 한다.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어두운 감정이 더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 곁을 떠나지 않는 선택을 해본다. (어쩌면 떠나지 못하는 것일지도.) 겉도는 시간을 계속 보낸다. 그렇게 현재를 인정하며 제자리 걸음하듯 어떤 궤적을 따라가본다. 그 흔적이 각자의 궤도를 만든다. 나의 행성을 떠날 수 없다면 빙글빙글 돌며 무언가라도 해보자는 다짐도 생긴다.
그때 삐죽, 튀어나온 중간 상태의 마음이 참여자들을 작업으로 이끌었을지 모른다. 손에 잡히는 무기까지 만들게 했을지도. 겉도는 시간에 보조 장치, 장신구, 부연 설명 같은 것이 되도록. 겉도는 행위를 멈추거나 줄이도록,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시간을 쓸 수 있도록, 그래서 덜 배회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재밌거나 덜 불안하도록. 사실상 계속 겉돌 수 있도록. 더 예술적으로.
그리고 참여자들이 각자 만든 무기를 들고 몸을 움직여보거나 춤을 추거나 기념 촬영을 했던 마지막 회차에 겉도는 시간은 더욱 극에 달했다. 이 낯선 무기를 만들고 흔들어보겠다고 내가 몇 주 동안 마음을 쏟았다니, 누군가는 문득 어색하고 민망한 느낌이 들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니 같이 마음을 쓴 사람들이 보인다. 더 흔들어보라고, 무기를 번쩍 들어보라고 말하는 사람들. 각자의 이야기를 무기를 통해 하고 있지만 서로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이는 사람들.
진단하지 않고 함께 겉도는 시간
문득 <용사의 연금술>의 기획 과정을 떠올려본다. 예술가는 의료나 재활 분야에서 처방, 치료를 목적으로 고안된 재활 도구에 관심이 있었다. 그것으로부터 받은 영감을 ‘무기’ 제작 과정에 녹이고자 했다. 하지만 실제 <용사의 연금술>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가장 크게 작용한 것은 예술가의 관점, 사람에 대한 태도였다. 그 관점은 의사나 치료사와 크게 달랐다. 인간의 현재 상태, 특히 보이지 않는 상태에 대해 문제, 이상 요소를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처방해야 할 이유, 치료가 필요한 부분을 찾으려고 하지 않고 각자의 마음 상태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함께 가졌다. 그 시간을 적극적으로 마련한 예술가 역시 자신을 혼자 들여다보는 것이 너무 힘들거나 외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듯하다. 예술가의 이전 작업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때 예술가의 그동안 작업 주제나 방식을 하나하나 해석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더욱 들여다봐야 하는 것은, 그런 작업을 혼자 하던 예술가가 예술교육이라는 형태로라도 누군가와 경험을 나누려고 했다는 것이다.
시각예술가로서 특히 오브제 중심의 제작, 설치 작업을 하는 예술가에게 어쩌면 더욱 중요한 것은 무형의 요소, 심리적 상태, 그 주변을 함께 겉돌 사람들 일지 모른다. ‘용사의 무기’ 같은 이름, 명분, 실체가 눈에 띄지만 그런 장치를 만들면서라도 경험하고 싶은 무언가, 혹은 관계가 더 중요할지 모른다. <용사의 연금술> 참여자들에게도 무기와는 다른 성질의 경험이 남겨진 것처럼 말이다.
한편으로 무기, 혹은 무기를 만드는 과정에라도 기대서 자신을 마주하려는 약하고 약한 인간을 보게 된다. 덩어리 진 마음을 정리된 문장으로 말하기 어려워 몇 시간 동안 사포질을 하고 돌을 깎는 인간. 내 말을 들어달라는 요청을 뒤로 한채 흐느적거리는 무기를 만들고 춤을 추는 인간. 그 춤사위에 서로 박수를 보내며 살아가는 인간. 날카로운 칼과 더 날카로운 말들에 대항할 수도 없는 무기를 만들어 가슴에 품고 살아보겠다 하는 인간. 각자의 무기를 품은 용사들이 오늘도 그렇게 자신의 주변을 겉돌고 겉돈다. 그 사이에 예술가도 있다. 그것이 슬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신비롭게도 보인다. 용사의 ‘연금술’은 약한 마음으로 무적의 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 대신, 함께 겉도는 시간이 신비로운 힘도 발휘할 수 있다는 가설, 그것의 실험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