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보면 읽히겠지

[쓰다 보면 읽히겠지] 04. 속는 셈 치고 복토크, 그 후

문화예술기획 최선영 2025. 1. 22. 08:18
<쓰다 보면 읽히겠지> 
 
나는 혼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문화, 예술 관련 공공 프로젝트나 사업 기획을 하기도 한다. 창작, 기획, 문화예술교육 등을 주제로 강의나 컨설팅을 하기도 하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사람과 마주 앉아 회의도 많이 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이나 강아지들과의 산책 길에 여러 생각을 한다. 그것은 구체적인 경험과 상상과 심정을 가로지른다. 나는 그 흐름을 글로 옮겨 여러 사람과 나누고 싶다. 문화예술 분야의 질문이 특정 사업이나 제도, 이슈에 대한 한정된 논의로만 머물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을 경험하는 개인의 삶은 여러 차원으로 연결, 교차되기 때문이다. 웹진이나 자료집 원고, 사업 보고서에는 담기 애매하지만 분명하게 떠오르는 현재의 질문을 계속 펼치고 싶다.

 
 
 
 
 

쓰다 보면 읽히겠지 04.

"속는 셈 치고 복토크, 그 후"

 

 
작년 이맘때, "속는 셈 치고 복토크"라는 걸 기획했었다.
충남 홍성에 사는 나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SNS를 통해 안내를 하고 누군가의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다.

 
 
"문화예술 관련 고민 덩어리를 들고
충남 홍성까지 오시면
그 속에 담긴 복을 찾아드립니다.
저를 믿어보세요. 저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신청대상 : 문화예술 영역과 관계된 개인 또는 모임이나 단체
🍈토크일정 : 1-3월 중 신청자와 협의 후 결정
🍈토크장소 : 복많관 (충남 홍성군 홍성읍)
🍈신청방법 : 문자로 신청해 주시면 오시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신청마감 : 2024.2.10
🍈참여비 : 1인 5천원(다과와 복 제공)
🍈토크진행 : 부부사기단 공동대표 최선영 
🍈진행방법 : 1:1로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눕니다. 울어도 비밀로 해드립니다.


그러니까 누군가 고민과 함께 5천원을 들고 와서 나와 대화를 나누는 작업이었다. 이런 걸 해본 이유는 문화예술 분야의 사람들(예술가, 기획자, 행정가, 활동가, 교육가 등)이 바쁜 시즌이 지나면 혼자 고민과 걱정을 안고 추운 겨울을 보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난방비 걱정, 지원사업 걱정, 장기적인 미래 걱정 등을 기본으로 깔고 지금의 활동이 나에게 맞는지, 어디로 이사를 해야 할지, 현재의 불안감은 어찌해야 할지 등을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주로 그런 이야기를 한창 바쁜 시기에 듣곤 했다. 문화예술교육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단체 운영에 대한 어려움을 듣기도 했고 창작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가 사실은 깊은 불안이 밀려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 말들은 모두 나에게도 해당되는 것들이었다. 지나온 이야기도 있고 외면한 이야기도 있었다. 내가 그러했듯 그것을 나눌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어려움을 털어놓을 때면 '속는 셈 치고 말해보자'는 생각이 있었다. 사실 해결책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예상치 못한 공감이나 실마리를 얻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래서 '부부사기단의 공동대표'가 되어 복토크를 열었다. 이런 자리라도 간절한 사람이 있다면 이 먼 곳까지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여기저기 혼자 메일을 보내봤던 것처럼. 다른 나라까지 찾아가 무언가를 알아보려고 했던 것처럼.
그리고 복토크 신청자는 예상 외로 많았다. 처음 만나는 사람도 있었다. 주로 한 명 혹은 두 명씩 찾아왔는데 총 20명 정도가 온 듯하다. 2월 중순쯤 여러 복토크 일정이 마무리되었을 때 나는 신청을 마감했다. 나에게도 복토크 참여자에게도 충분한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했다. 참여자들은 각기 다른 이유와 필요로 홍성까지 찾아왔다. 창작을 하는 과정에서 협업 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 무엇을 하든 자신감을 갖기 어려운 사람, 문화예술교육의 다양한 실험이 궁금한 사람, 문화예술 분야 공공기관의 역할이나 한계를 고민하는 사람, 지역으로의 이주를 꿈꾸는 사람 등. 많은 사람들이 비밀로 해달라고 했는데 사실 많은 사람들이 울고 갔다. 대체 이 어려움의 원인, 그것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어려움의 원인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른 경험을 쏟아냈지만 복토크를 두 달 동안 진행한 후에 내가 느낀 건 비슷한 어려움 혹은 마음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것의 이유를 정확한 말들로 분석하는 것이 과연 필요한가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보다 두드러지게 발견된 것이 있었는데, 그건 어려움 속에서 깜빡거리고 있는 분명한 '복'이었기 때문이다. 힘든 이유와 상황을 자세하게 이야기하는 그 사람의 삶 속에는 어려움을 마주하고 돌파해 보려는 노력이 있었다. 그래서 추운 날, 기차를 타거나 차를 몰고 먼 홍성까지 온 것이다.(대부분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것은 안정된 상태에서는 갖기 어려운 태도였다. 흔들리지 않으려는 누군가의 구체적인 실천은 그 자체로 삶의 동력이 될 것 같았다. 무언가를 벗어나려는 움직임 속에 오히려 복이 있었달까. 복토크를 시작할 때는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무언가가 감지되니 나는 어떤 상태일까 생각도 들었다. 내 삶에는 복이 있을까. 힘들게 유지되는 복은 애초에 관심도 안 두는 게 아닐까.
나는 복토크에 온 사람과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대화를 나누며 그렇게 지난 겨울을 보냈다. 일주일에 한 두 명쯤을 만나며 긴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에게도 춥고 고요했던 겨울이 꽉 차게 지나갔다. 이불속에서 평온하고 안전한 하루하루를 바라던 나는 누군가의 들썩거리는 어려움을 들으며 보이지 않는 복을 그리게 되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저 복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누군가의 무겁고도 뜨거운 고민이 부러운 순간도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타인의 삶에 귀 기울이던 지난 겨울은, 그렇게 감사한 시간이었다.
이 이야기를 꼬박 1년이 지난 지금 꺼내게 된 이유는 다시금 그 복이 그리워졌기 때문이다. 그런 계절인듯 하다. 더 차갑고 흔들리는 것 같기도. 그 안에 각자의 복이 있다. 일반적인 말들로 증명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봤다. 그래서 나도 가끔은 그런 복을 따라 살고 싶다. 구멍이 숭숭 뚫린 날에 그것을 메꾸려는 마음이 기묘한 기운으로 복을 빚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