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보면 읽히겠지] 05. 나의 위치, 흔들리는 세계
<쓰다 보면 읽히겠지> 나는 혼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문화, 예술 관련 공공 프로젝트나 사업 기획을 하기도 한다. 창작, 기획, 문화예술교육 등을 주제로 강의나 컨설팅을 하기도 하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사람과 마주 앉아 회의도 많이 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이나 강아지들과의 산책 길에 여러 생각을 한다. 그것은 구체적인 경험과 상상과 심정을 가로지른다. 나는 그 흐름을 글로 옮겨 여러 사람과 나누고 싶다. 문화예술 분야의 질문이 특정 사업이나 제도, 이슈에 대한 한정된 논의로만 머물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을 경험하는 개인의 삶은 여러 차원으로 연결, 교차되기 때문이다. 웹진이나 자료집 원고, 사업 보고서에는 담기 애매하지만 분명하게 떠오르는 현재의 질문을 계속 펼치고 싶다. |
쓰다 보면 읽히겠지 05.
"나의 위치, 흔들리는 세계"
나는 미대 졸업 후 한 분야에서 20년 가까이 활동하고 있다. 이것은 일반적이라기보다는 우연, 운, 그리고 내 성향과 맞아 벌어진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한 가지를 오래 하면 그게 멋진 일처럼 인식되지만 그건 사람마다 다르게 일어나는 일일 뿐이다. 나도 갑자기 삶에서 어떤 사건이 생기면 다른 분야에서 낯선 활동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이런 생각들이 많아진 것은 여러 사람들과 '이 분야에서 자리 잡는 것' 혹은 '한 가지 활동을 지속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런데 이런 대화가 이어지던 어느 날, 누군가가 개인 SNS에 문화예술 분야의 정책적 흐름을 언급한 글에서 내가 참여한 사업이나 프로젝트의 구체적 명칭을 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오히려 생각이 건조하게 정리되었다. 그 글은 이런 식으로 작성되어 있었다.
"국내의 문화예술 흐름은 지역발전 전략으로 이어져 왔다. 2006년 아트앤시티 이후 2008년 문전성시, 2009년 마을미술프로젝트로 이어지며 도시재생이 범람한 2010년대를 타고 문화도시가 탄생했다"
나는 2007년 대학 졸업 후 '아트앤시티'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후 한 기획자와의 우연한 만남으로 '문전성시' 사업에 참여했다. 사실 엄청난 경쟁을 통해 그 기회를 얻은 것은 아니었다. 아르바이트처럼 시작한 비영리단체의 보조 활동을 하다가 그 단체의 프로젝트에 자연스럽게 참여하며 구체적 활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경력이 하나씩 생기다 보니 공공미술, 커뮤니티 아트, 도시재생 맥락에서 기획된 예술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2018년부터는 갑자기 거대하게 시작된 문화도시 사업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사이에 「문화예술교육 지원법」도 시행되었는데 그 시기는 내가 활발하게 활동을 지속하던 시기와 맞물린다. 그렇게 법적 흐름까지 살펴보면 「문화예술진흥법」, 「지역문화원진흥법」, 「예술인 복지법」, 「장애예술인 지원법」의 제정 및 시행이 내 활동의 범위나 기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개인의 의지나 역량만으로 활동의 양상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문화예술 분야에 정책적 영향력이 큰 국내 상황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나는 여러모로 운이 좋았다. 10년 정도 경력이 쌓였을 때 문화예술을 바탕으로 창업, 창직을 하는 공간 지원사업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되어 4년 동안 넉넉한 작업 공간을 가질 수 있었는데 그 사업의 시의성, 실험성을 고려하면 역시나 운이 좋았다.
물론 개인적으로 노력한 것도 많았고 내가 가진 역량도 있다. 어떤 기회가 왔을 때 그 노력이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것인데 그 기회의 흐름이나 조건을 알게 되면 내가 현재 활동하고 있는 위치가 너무 과장되지 않게 인식된다. 어떤 활동을 하게 된다는 것은 내가 만들어낸 특별한 일이 아니라 주변적 상황 안에서 벌어진 하나의 사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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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황은 반대로 '활동이 어려운 상황'과 연결해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내가 만들어낸 어려움, 부족함, 정체됨도 있지만 주변적 상황이나 시대적 흐름이 나의 어려움을 증폭시키는 경우도 많다. 그것은 단지 문화예술 분야에 한정되지 않는다. 복잡한 사회 문제나 지역적 이슈, 정치적 상황이 나의 어려움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많다. 주거 문제나 빈부 격차 이슈가 내 활동이나 작업 범위에 중요한 배경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당연한 것인데 어려움의 주변적 상황, 구조적 맥락을 읽어내거나 공감하려는 인식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단지 그 어려움 안에서도 무엇을 해내야 하는지, 그 방법의 개발 및 학습, 그리고 보급에 많은 에너지가 집중된다. 물론 그 노력은 중요하지만 현재 상황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요소를 충분히 살피지 않은 상태에서 이후 방법만 찾는 경우, 많은 사람들이 방법의 차별성에만 몰입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려움 자체를 말하는 순간도 적어진다. 어려움을 말하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도 생긴다. 그런데 좀 어렵고 안 되는 게 많지 않나. 기획도 창작도 교육도 협업도 경력의 지속도 쉬운 게 하나도 없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요즘은 누군가의 어려움을 듣다가 그 어려움의 이유와 주변적 상황을 건조하게 읽어내려고 애쓴다. 그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한 방법보다는 우리는 현재 어떤 위치에서 어려움을 만나고 있는지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것은 다른 차원의 방법도 존재함을 떠올리게 만든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다 현재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현실을 마주하는 우선적 방법이 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일단 어떤 고민은 개인이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 인식되면 반복되는 불평, 불만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다. 그 범위를 무작정 넓게 전제하면 각자에게 합리화의 이유만 커지기에 이 과정에도 현재 상황을 냉정하고 건조하게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근데 이건 말은 그럴싸한데 너무 어렵다. 나의 어려움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주변을 볼 수 있는 시선은 생각보다 매우 넓은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이 어려움을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더욱 커졌다. 그래서 분명 특정 사업의 멘토링, 컨설팅을 해야 하는 자리에서 심리적, 정서적 고민 상담 비슷한 걸 하곤 한다. 주로 내가 가졌던 '마음'의 상태를 누군가와의 대화 안에서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 사업을 이렇게 참여하면 더 효과적인, 차별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사실 거의 못 하겠고 현재 이 사업 혹은 작업을 하면서 마음에 여유가 생기는지, 그래서 주변적 상황이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지를 묻게 된다. 상대방이 그것을 두루 살피기 어렵다면 내가 현재 파악한 주변 상황을 언어로 정리해서 전달해보기도 한다. 여러 요소가 마침 운 좋게 맞물려 우리의 활동 가능성이 더 커질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것도 건조하게 설명하려고 한다. 누군가가 특별히 우수해서, 누군가가 특별히 부족해서 이 상황을 경험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함께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 해를 시작하는 시기에 이런 시도는 더욱 필요해 보인다. 현재 혼란한 국내 상황과 맞물려 문화예술 분야에서의 활동 지속에 대한 걱정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리기 때문이다. 올해는 어떻게 흘러갈까 전혀 그려지지 않는 새해다. 그런데 안정된 세계라는 건 없지 않을까. 여러 욕망이 다양성이라는 가치까지 등에 없고 사회의 방향키를 흔들고 있지 않은가.
이때에는 흔들리는 세계가 한동안이 아니라 계속 지속될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그 안에서 중심을 잡아야 하는 '사람'의 어려움이 더 많이 등장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 상황을 돌파하고 성장하며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시기는, 여러 법과 제도, 사업이 시행되었던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후반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특정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많은 것들이 변했고 변하고 있다. 그때의 방식, 속도, 방향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한 분야에서 활동을 지속할 필요가 있을지에 대해서도 각자의 고민과 선택이 필요하다. 나도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데 쉽지 않지만 일단 예전과는 다른 주변의 상황을 너무 슬프지 않게 두리번거리고 있다. 전통시장에서, 다리 밑에서, 초등학교 강당에서, 버려진 건물 주변에서 마음의 여유도 없이 무언가를 해보던 이전의 경험이 오직 귀한 밑거름이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