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문화재단
2021 경기예술교육실천가포럼: 강아지와 산책 중에 개똥봉투가 없을 때
발제문
내가 계획할 수 없는 사건을 향해 나아가는 선택도 필요하다
최선영 / 유구리최실장
1. 예술교육실천가의 삶이 교육활동으로도 이어질텐데 요즘 어떻게 살아가고 계신가요?
사람과 삶을 담아내는 예술교육에 대해 우리는 요즘의 말들로 부연설명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각자가 살아가는 모양을 바탕으로 삶을 이야기해보자고 하면 생각보다 다양한 가치나 질문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비슷한 상품과 콘텐츠, 광고가 우리의 삶을 빼곡하게 채우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에 기대어 하루하루를 살아가거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해져가는 상황에서, 예술교육가의 요즘의 삶에 대해 다시 질문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살아가고 계신가요?
2. 우리의 삶에서도 계획성과 안정성이 중요해지고 있나요?
사업이나 프로그램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보통의 예술교육 안에서 계획적이고 안정적인 접근이 일반화될 때쯤 문득 우리의 삶에도 이런 가치만 중심에 놓여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미래를 대비하며 계획적이고 단계적으로 하루를 살아야 오늘의 시간도 의미있게 채워지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그것은 예술적인가요? 저는 언제부턴가 예술교육은 촘촘하고 정확하게 예술을 설계하거나 다루는 활동처럼 느껴졌습니다. 저의 활동도 그러했고 다른 교육 현장을 접할 때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왜냐하면 주로 예술교육은 활동이나 실천이라기보다는 현실적으로 사업이나 프로그램, 혹은 일자리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을 갑자기 바꿀 수도 없고 꼭 그래야만 하는지 논의도 필요하지만 현실에서 추구되는 안정성이 예술의 다양한 가능성마저 삼켜버리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다음에는 어떤 사람을 만나 무엇을 해볼까 라는 질문이 내년에는 어떤 주제로 무슨 교육사업을 해볼까 정도로 좁혀지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3. 예술
그런데 예술은 기존의 틀을 벗어나거나 지배적인 관점을 흔들거나, 혹은 정답이 없는 길을 헤매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당연한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그렇다면 예술교육실천가가 삶에서도 무언가러부터 벗어나 본 적은 있을지, 어떤 요인에 의해 흔들리거나 헤매어 본 적은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예술교육실천가도 그 경험을 바탕으로 예술‘적인’ 교육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실험성이나 헤매임을 주제로 다루는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것 이전에 말입니다. 예술의 이런 저런 속성을 들여다보다가 우리의 삶이 과연 그런 가능성 안에 놓여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4. 선택
하지만 누군가가 예술교육실천가를 실험적이고 낯선 삶의 장소로 이동시켜주는 역할을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예술교육실천가 스스로 자신도 계획할 수 없는 사건을 향해 나아가는 선택을 해야만 조금이나마 그 가능성을 만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회도 제도도 예술교육씬도 잘 들여다보면 사실 익숙하고 적절한 선택들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흐름을 벗어나 보는 시도는 그것을 해보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으로부터 가능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것은 ‘선택’이 필요한 일입니다. 예술교육에 대한 사례와 담론은 많아졌지만 오히려 각자의 선택은 각자의 관점과 방식으로 시도되어야 할 시기이기도 합니다.
5. 저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저의 삶을 잠시 이야기하자면 저는 20대 초반에 결혼을 했고 3년 후에 출산을 했습니다. 출산도 육아도 매우 힘들었는데 그건 제가 예측할 수 없는 수면부족, 자존감 상실, 단순노동의 반복, 경력 단절 등등 때문이었습니다. 그때는 견딜 수 없이 힘들었는데 10년쯤 지나 그때를 생각해보니 그 불투명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 자체에 기대어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내가 상상할 수 없었던 어려움을 경험하며 오히려 사람에 대해 개인적이고도 사회적인 나의 언어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 삶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은 역시나 난해하고 거대했지만 다음 삶을 선택하는 이유가 되었고 예술교육을 포함한 여러 활동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주인을 알 수 없는 강아지들을 한 마리, 두 마리 입양하거나 구조했던 일, 오랜 시간 유지해온 예술단체를 해산하고 낯선 지역으로 가족과 이주한 일, 그곳에서 다른 풍경과 속도를 경험하며 나를 들여다봤던 순간 등. 그리고 요즘은 새로운 동네에서 빈집을 구경하고 다니다 덜컥 한 집을 구해서 남편과 수리를 하고 있습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황토미장부터 나무자르기까지 하며 이 낯설음에 온 몸을 맡기고 하루를 보내기도 합니다. 손도 다치고 얼굴에 상처도 나고 내 몸에서 요상한 냄새가 나도 남편과 땀을 식히며 이제 좀 작업할 마음이 생겼다고 이야기합니다.
6. 다시 예술교육으로 돌아와
한참 사는 얘기를 했는데 질문을 다시 예술교육을 향해 던져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예술교육을 할 수 있을까요?
이 사람이 다음 해에 어떤 프로그램을 설계해서 얼마나 능숙하게 예술교육을 해낼지에 대한 질문이 아닙니다. 이 사람은 프로그램이라는 틀을 답답해할 수도 있고 능숙함 대신 서투름의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할 수도 있으며 누군가가 인정하지 않더라도 자신에게 편안한 예술교육을 시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이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흘러가버린 삶을 마주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가끔은 익숙함을 빗겨가는 선택을 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럴 때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7. 불안
하지만 흘러가는 대로, 계획 없이 살아가거나 활동을 하는 것은 너무나 불안한 일입니다. 저 역시 그러했고 지금도 그 불안은 또렷하게 삶의 일부를 채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조율할 수 없는 어떤 사건들이 내 삶을 채울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불안감이 조금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불확정적인 영역에서 예술적인 뉘앙스, 혹은 삶을 닮은 예술을 묘하게 발견하고 있습니다.
8. 나로서
요즘은 이리저리 흔들리기도 하고 일을 벌리기도 하고 몸을 움직여보는 나를 발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자연스럽게 나로서 예술교육도 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나는 어떻게 계속 나로서 예술교육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도 이어갑니다. 예술교육에서 무엇을 말할까, 무엇을 예술교육 안에서 다룰까 라는 질문보다 말입니다.
9. 하면서 하는, 살아가면서 하는
최근에 남편과 빈집을 고치며 시골집 전문가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전합니다. 아파트나 빌라는 구조나 자재가 비슷하기 때문에 도면만 보고도 공사 계획을 세울 수 있지만 오래된 시골집은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워낙 모양과 구조가 다양하고 들쭉날쭉해서 사실상 뜯어가면서 고쳐가면서 다음 계획을 세우고 해보는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은 삶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차피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연속되고 삶의 모양은 사람마다 다 다른데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하면 다음을 상상하고 다시 살아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어쩌면 삶은 모두의 머릿속에 적당히 그려지는 아파트 같은 모습이 아니라 나도 모르는 재료와 시간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시골집 같은 모습일지 모릅니다. 그것은 예술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불확실한 상황들을 끌어안는 선택들은 우리를 삶의 한복판이자 예술의 어디쯤으로 이끌 것이란 생각도 듭니다. 요즘 우리에게 익숙한 예술교육의 현장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 조금 차갑게 돌아보며 저는 오늘도 사포질을 하고 바닥을 쓸고 강아지의 누런 등을 쓰다듬습니다. 역시나 제가 예상하지 못했던 소리와 질감과 냄새가 그곳에 있습니다. 그곳으로 깊에 몸을 향해볼지 저 역시도 매일매일 새로운 선택 앞에서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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