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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글] 장애예술보다 오래된 질문, 다양성으로부터

by 문화예술기획 최선영 2024. 2. 25.

세종문화회관 매거진 [세종문화N]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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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예술보다 오래된 질문, 다양성으로부터

 
최선영 / 문화예술기획자
 
 
다양성에 대한 시대적 관심과 움직임
“요즘 장애예술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데, 제가 장애나 장애예술은 잘 몰라서요.”
공공기관의 장애예술 관련 사업이나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 나는 이렇게 말문을 여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몇 년 사이 등장한 정책적 용어이자 일시적 개념이기도 한 ‘장애예술’에 대해 막연함이나 낯섦을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나 역시 장애예술이 무엇인지 바로 답변하기는 어렵다. 시대적 상황이나 예술 현장의 움직임에 따라 그 의미는 재정의되거나 새로운 논의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질문을 다음과 같이 조금 다르게 해 보면 누구든 각자의 의견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혹은 미처 해 보지 못한 질문을 막 시작할 수도 있다.
“장애와 관련된 예술, 장애인의 예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는 이유나 배경은 무엇일까?”
이 질문과 함께 우리는 또 하나의 질문을 하게 된다. 과연 장애 관련 예술에 대한 관심만 유난히 커진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이제는 예술의 전문성이나 고유성을 바탕으로 소수의 작품이나 예술가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예전에 비해 줄어들었다.
오히려 다양한 콘텐츠 생산자의 등장, 전문 예술 영역의 해체, 시민 중심의 예술 활동 등이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얻고 있다. 즉, 특별히 장애나 장애인 관련 예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늘었다기보다는 시대적으로 예술의 다양성, 일상성이 큰 관심과 공감을 얻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한편으로 그동안의 예술이 다수의 참여와 표현을 전제하지 못했음에도 ‘일반적인’ 예술로 인식됐음을 보여준다. 누군가의 삶에서는 너무 특별하거나 접근하기 어려운 예술이 존재했던 것이고, 결국 예술의 ‘일반성’에 대한 질문으로 장애예술도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예술의 ‘일반성’을 향한 질문
지금의 관련 정책이나 예술 현장의 방향성을 되짚어보기 위해서도 장애예술의 논의 배경을 함께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 즉, 장애예술 관련 정책의 확대로 과연 기존 예술의 일반성이 해체되고 있는지, 다양한 표현 행위와 예술적 실험이 등장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예술 활동에 참여하는 장애인의 수가 늘어났다거나 장애에 관한 내용을 작품에 담아내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만으로 그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다.
새롭게 예술 활동을 시작한 장애예술인이 결국 기존 예술계의 문법을 반복하거나, 재능이나 역량 중심으로 소수의 장애인만이 예술 활동 기회를 얻게 되거나, 장애가 작품의 소재로 활용될 뿐 다양성이 부재한 창작 사례가 늘어난다면 그것은 여전히 예술의 일반성이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예술이라는 토대 위에서 익숙한 기준, 공고한 테두리, 적당한 주제에 대해 질문하는 움직임이 이어져야 사회적으로도 다양성의 가치가 포착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 예술 현장에 사실상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정책은 어떤 질문을 담아내고 있을까? 주로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과 지역 문화재단의 지원사업을 중심으로 현장에 전해지는 정책들은 다양한 실험을 위한 토대로 역할을 하고 있을까? 여러 기관의 지원사업을 살펴보면 결국 10년 이상 이어온 창작 지원사업과 유사한 방식으로 작품 제작 및 발표 중심의
1년 단위 지원사업을 설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구조에서 현장은 어떤 실험을 얼마나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지원사업 내에서 접근성 관련 장치를 마련하는 것에 예산을 지원하거나 장애예술인의 지원 비율을 높이는 등 변화는 있으나 그러한 지원을 바탕으로 해내야 하는 사업적 성과, 목표는 기존 예술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럴 경우 결국 장애인도 예술의 일반성을 획득하는 데에 각자의 속도와 특성을 맞춰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장애예술인이 작품을 준비하는 방식과 기간도 그것을 발표하는 형태와 규모도 기존의 문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게 되는데, 제도가 더욱 다양성에 초점을 둔다면 장애예술인이 스스로 표현의 방식을 설정하고 실험할 수 있는 새로운 정책·행정적 시도가 필요하다.
 
개별성과 다양성이 교차하는 예술 현장으로
그렇다면 예술 현장에서는 어떤 고민 또는 움직임이 있을까? 이때 다시 한번 짚어봐야 하는 것이 국내 예술 현장이 갖는 현실적 특성 또는 한계다. 그것은 바로 많은 예술 활동이 정책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인데, 장애예술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장애예술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전에는 사실상 많은 제도가 비장애인 중심으로 운영됐다. 그렇기에 장애예술 관련 정책이 확대된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동시에 장애인의 일상적이고 자생적인 창작 활동도 지원의 목적과 방식에 끌려가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또한 추후 예술 활동을 하고자 하는 장애인이 지원제도의 자격 요건을 갖추기 위해 또 다른 노력이나 시도를 무리해서 해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현장의 움직임이 제도를 뒤따르듯 발생하는 이유는 장애인이 일상적으로 예술 활동을 선택·참여·시도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예술교육의 기회가 필요한 장애인도 있고 일상적인 창작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공간, 동료, 매체 등이 필요한 장애인도 있다. 하지만 장애인이 권리 차원에서 예술 또는 예술교육을 접할 기회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알아서’ 예술인이 된 후 관련 지원제도에 문을 두드려야 하는 상황이다. 이렇다보니 사실상 장애인이 예술인으로 성장 및 활동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장애예술에 대한 지원만 확대되면서 다양한 창작 주체를 발견하고 지원하는 것에 대한 제도적 한계도 발생하고 있다.
예술가는 장애 유무나 제도적 상황과 상관없이 자신에게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개별화된 창작의 과정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장애예술 관련 정책이 안정되고 확대될수록 장애인도 스스로 낯선 시도를 멈추지 않아야 하고 제도의 흐름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
이 점이 제도의 확장 속에서 앞으로 장애예술인에게 가장 어렵고 매서운 과제가 될 것이다.
앞서 장애예술에 관한 ‘다양성’의 의미를 많이 언급했는데, 사실상 다양성은 개별성의 구현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다. 그렇기에 앞으로의 정책에서는 장애예술인의 개별화된 창작 방식, 속도, 특성 등을 고려한 구조 설계와 목표 설정이 요구된다. 장애인이 일상적으로 예술을 접하며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보편적인 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인간적 삶을 위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필요하다. 또한 예술 현장에는 창작 주체의 개별성을 주제나 창작 방식, 혹은 새로운 방법론 등으로 보여주려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여러 제도가 생겨나거나 확대되고 있으나 그것을 창작의 필요조건으로 전제하지 않는 장기적 활동 기준을 모색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처럼 삶의 기본 조건, 창작 환경, 개별성과 다양성 등이 교차하는 현장이 바로 예술의 영역이다. 오히려 이러한 복잡한 질문들이 급격하게 커진 정책과 지원제도 속에서 단순하거나 납작한 성과물로 봉합되지 않도록 현장의 다양한 주체들이 ‘일반적이지 않은’ 목소리와 몸짓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장애예술과 관련한 현장의 논의가 현실적 상황들로 인해 제도나 정책의 필요성으로 곧바로 연결되곤 하지만, 그럼에도 ‘예술’이기에 날 선 질문과 기이한 실험이 정책보다 먼저 혹은 다른 층위에서 계속 움직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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