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예술인파견지원사업 <예술로> 사업
기획사업 과천고등학교 자료집 수록 원고
학교라는 세계를 예술로 통과한 자리에서
최선영 / 문화예술기획자, <예술로> 사업 과천고등학교 책임 멘토
2003년에 과천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2024-2025년에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파견지원사업 <예술로>의 멘토로 오랜만에 학교를 다시 찾았다. 내가 과천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학교 전체가 수능을 포함한 대학 입시에만 집중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예체능 과목은 부수적이거나 덜 중요한 영역으로 여겨졌기에 나처럼 미대 진학을 꿈꾸던 소수의 학생들은 매점 옆 작은 컨테이너에서 별도로 미술반 활동을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표현의 경험이었다기보다는 미대 입시를 위한 훈련과 준비의 과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최근의 과천고등학교가 궁금해서 멘토를 자청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학교에 간 날 여러 예술인들이 학생들과 다채로운 표현 활동을 하는 것을 보고 반가움이 컸다. 미술실은 별관에 큼직하게 자리 잡고 있었고 내가 드나들던 1학년 교실은 프로젝트 활동이 가능한 다목적 공간으로 바뀌어있었다. <예술로> 사업의 담당자였던 미술 교사의 적극적인 태도와 예술에 대한 높은 관심도 눈에 띄었는데 여러모로 <예술로> 사업의 영향력과 더불어 학교라는 공간의 시대적 변화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학교는 국민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가 실현되는 장소다. 인간은 성장하면서 어떤 시기에 필요한 최소한의 교육을 학교에서 받는다. 그렇기에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학교는 인간에게 무엇을 왜 교육할 것인지에 대한 시대적 논의를 끊임없이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일반 사회에 진입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효율적으로 학습하는 공간으로 학교가 해석, 활용되기도 한다. 특히 고등학교는 취업이나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장소, 관련 기술을 배우는 장소가 되어 청소년기의 인간에게 필요한 다양한 표현, 실험, 사유의 경험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지 못하기도 한다. 또한 청소년기 인간은 개별적 정서가 복잡해지지만 그 자체를 들여다보는 활동은 학교의 주요 수업으로 배치되기 어렵다. 간혹 이러한 관점을 반영해 학교가 무언가를 추진하곤 하는데 그것은 자기표현 활동 기반의 수업을 늘리거나 심리, 정서 관련 지원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 등이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가 지켜야 하는 절차와 규칙이 있어 기존 운영 구조 안에 무언가를 배치, 추가하는 방식으로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다.
<예술로> 역시 그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에게 예술적 경험, 예술가를 만나는 경험을 더욱 일상적으로 실현하고자 했던 미술 교사의 의지로 <예술로>라는 사업이 하나의 ‘조각’처럼 학교에 추가되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조각’이 확정적인 모양, 형식으로 전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예술로> 사업의 가능성이자 어려움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사업은 예술인들이 기관에 매칭되어 무엇을 어떻게 할지 미리 내용과 방식을 정해두지 않는다. 그래서 과천고등학교에서의 <예술로> 첫해 활동은 낙서벽을 만들거나 예술도서관을 조성하는 등의 활동으로 시작되었다. 예술인들은 당연하게 수업 중 일부를 담당할 수 있었지만 다른 선택을 하며 학생도 만나고 학교라는 세계도 만났다. 이러한 경험은 학교에 대한 리서치 과정이 되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예술인들은 다음 해부터 수업의 형태를 포함해 여러 방식으로 학생들을 만났다. 그 역시 학교라는 세계를 예술인의 시선, 예술가적 관점으로 탐색하는 과정이었다.


구성물을 알 수 없는 ‘조각’을 일정한 틀 안에 넣는 것은 쉽지 않다. 누군가는 틀의 견고함을 지켜내야 하고 누군가는 그 ‘조각’의 확장 가능성을 상상하려 하고 누군가는 그 상상의 모호성을 조금씩 이해해 가야 하고 누군가는 그 ‘조각’이 기존 조각과 어떻게 어울릴 수 있을지 살펴야 한다. 심지어 <예술로> 사업은 많은 예산이 예술인에게 지급되기 때문에 예술인은 분명한 역할과 계획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조각’을 빠르게 만들어 본인의 활동을 증명해야 할 때도 있다. 기관도 ‘조각’의 존재, 가치, 결과를 계속 질문하게 된다. 하지만 그 ‘조각’이 놓이는 곳에는 언제나 다양한 사람들의 반응과 개입이 있어 그것을 지속적으로 살피다 보면 처음부터 완성형의 ‘조각’을 설계하기가 더욱 어렵다.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일단 들여다보거나 대화를 시도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때 기댈 수 있는 요소는 계획성, 구체성, 명확성 이전에 개별성, 추상성, 즉흥성, 모호성, 사건성인 경우가 많다. 그것은 결국 예술의 특징이나 속성이기도 한데 <예술로> 사업은 그것을 ‘조각’의 재료로 활용하는 사업이다. 이러한 맥락으로 과천고등학교에서의 활동을 표현하자면, 예술인들이 확정적 개념이나 형태를 가지지 않은 예술을 들고 학교라는 세계이자 시스템으로 들어가 본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조각’을 다 만들어서 들어간 것이 아니라 어디가 비어 있나, 어떤 모양과 상태의 ‘조각’을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볼까 탐색하는 과정이 활동의 시작이자 대부분이기도 했다. 지켜야 하는 것, 바꿀 수 없는 것들이 단단한 기둥처럼 자리 잡고 있는 세계에서 예술인들은 기둥을 피하거나 빙빙 돌며 무언가를 해봤다. 그리고 그 시간이 4년 동안 이어져 학생, 교사, 예술인 등 여러 사람들의 경험과 흔적이 현재의 학교를 구성하는 여러 ‘조각’ 중 일부가 되었다.
<예술로> 사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미술 교사는 그 ‘조각’의 성과와 의미를 미술 교과서에 넣었고 예술인들은 ‘조각’을 만들던 과정을 외부에 공유하고자 기록집을 만들었다. 그리고 학생들은 앞으로의 ‘조각’을 상상할 수 있는 작은 끄적임, 목소리, 움직임을 각자의 세계에 남겼다. 삶 속에 예측 가능한 것,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 일반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발견했다. 모호한 나의 생각과 정서 역시 소중하다는 것도. 그것을 익숙한 시스템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 해보려 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도. 모두 미묘하게 감지했다.
다시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 본다. 사실 입시 이야기 외에 더 넓은 질문을 내 마음을 향해 던지던 선생님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들과의 수다로 하루하루를 달래곤 했는데 그래도 기억에 남는 건 세상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시적으로 풀어서 해석해 주시던 한문 선생님, 그리고 1년에 한 번씩 창작 글을 모아 책을 내던 문학 동아리 활동이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고, 너도 글로 마음을 꺼내보라고 했던 존재가 조금이나마 주변에 있었다. 같이 한문과 시를 소리 내어 읽던 사람들에 기대어, 비슷한 사람들을 계속 만날 수 있는 길을 찾았고 지금 그 길에서 다시 과천고등학교를 만났다. 그래서 과천고등학교의 4년 동안의 <예술로> 사업을 내가 현재의 말 ‘조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아주 오래전 경험과 관계 덕분일지도 모른다. 그 역시도 불분명하지만, 분명한 것들이 할 수 없는 역할을 무언가는 그리고 누군가는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존재하고 있음을, 학교에서 조금이나마 배울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유난히도 감사한 일이다. 학교에 예술이 일상적으로 등장하고 흘러가던 순간을 떠올리며 ‘예술로’ 사람을 향하던 자리를 다시 바라본다. 그곳에 여전히 남아 있는 건 학교의 역할과 의미에 대한 오래된 질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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