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인천문화재단
문화예술교육 매개자 역량강화 과정




문화예술교육 기록 워크숍
우리에겐 아직 남은 숙제가 있다
지원사업의 마무리 단계에는 정산과 결과보고라는 행정적 숙제가 있다. 예술교육가는 그 숙제에 매달리며 겨울을 시작하고 각자의 휴식기로 들어가곤 한다.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남은 숙제가 있다. 행정적 숙제가 우리를 위한 숙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각자의 시선, 질문, 고민, 경험에 대한 언어적, 시각적 기록을 해야 한다. 이것은 지원사업과 별개로 일상적으로 하고 있어야 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러한 기록은 활동 현장을 되돌아보는 계기도 되고 다음 활동을 위한 자료도 된다. 그렇기에 매우 중요하지만 예술교육가 대부분은 문화예술교육을 ‘하는’ 에너지만큼 ‘기록하는’ 에너지를 들이지 않는다. 바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모여서 숙제를 같이 해보자. 마감 없는 숙제지만 그래서 더 미룰 수 없다. 그런 의도로 12월 어느 날, 인천에서 예술교육가들과 만났다.

문화예술교육은 20년 전 정책을 통해 시작되었고 지금도 공공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예술교육가들의 활동은 행정적 절차나 속도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또한 문화예술교육 현장이 다면적 의미, 가치, 순간을 포함함에도 지원사업 안에서는 계획 대신 추진 성과나 참여인원만 확인하게 되어 예술교육가마저 자신에게 의미 있는 요소를 살피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한 요소를 되짚어보려면 스스로 또 다른 성과의 기준과 관련 질문을 만들어내야 한다.

즉, 지원사업에 선정되었다고 해서 혹은 무리없이 활동을 진행했다고 해서 예술교육가의 자기질문 시간이 충분히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본 워크숍에서는 이러한 지원사업의 특성 또는 한계를 언급했는데 대부분의 예술교육가가 그것에 공감하면서도 실제 자기질문과 현장 기록의 실천은 거의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본 워크숍은 '못하는 이유'에 너무 집중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럼에도 해야 한다고 느낀다면 일단 뭐라도 하기로' 했다. 나는 잔소리를 잘하는 모임장처럼 잠시 역할을 하겠다고도 선언했다. 그렇게 나는 '변명은 그만하고 어서 컴퓨터부터 켜보라'고 말했고 그것이 숙제임을 인정하고 모인 참여자들은 하나씩 글과 사진 파일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록의 방향과 방식은 참여자 각자가 찾아야 했다. 나와 몇몇 예술교육가의 기록 사례를 공유했으나 참여자들은 결국 자신에게 왜 기록이 어떤 방식으로 필요한지 고민해야 했다. 그것은 지난 경험을 찬찬히 돌아보며 자신에게도 낯선 문장을 꺼내놓을 때 조금씩 드러날 수 있었는데 워크숍 초반에는 각자 자신에게 집중하기까지 다소 어수선한 시간도 있었다. 옆 사람은 어떤 기록을 하나 기웃거리기도 하고 '역시나 너무 어렵다'고 서로 공감도 하며.
그래서 이 워크숍은 총 2회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첫 만남에는 한 공간에 모여 강의도 듣고 다른 기록도 참고하며 앞으로의 기록 의지를 다지는 시간을 가졌다.두 번째 만남은 일주일 후 온라인에서 이루어졌는데 일주일 동안 어디까지 얼마나 기록을 해봤고 무엇을 생각하게 되었는지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두 번째 만남에서 나는 기록이 수단이 되어 사실상 자신의 정체성, 활동 방향성을 고민하게 된 참여자 대부분의 소회를 듣게 되었다. 참여자들은 무언가를 쓰다 보니 자신이 조금 객관적으로 보이고 이런 활동을 하는 이유도 보인다고 했다. 단지 활동 실적을 나열하듯 정리하던 시간도 있었지만 무엇을 중심으로 그 실적을 선택, 분류, 기록할지 고민하다 보니 언어적으로 활동 궤적을 그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참여자들은 서로의 발견에 신기함을 표현하기도 했고 응원과 공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나 역시 워크숍을 통해 예술교육가에게 어떤 시간이 더욱 필요할지 구체적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기록은 글쓰기의 지속 또는 고도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신을 비출 거울을 만드는 작업이 아닐까. 어떤 날에는 10년 전 나를 볼 수 있는 거울도 필요하고 너무 감정적, 즉흥적이었던 나를 비추는 거울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볼 거울은 나와 비슷한 크기, 상태여야 하고 나와 적절한 거리에 위치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다 보면 내가 너무 비대한지 거울이 너무 화려한지 등을 살피게 된다. 어떤 순간에는 거울이 아니라 내가 완전히 다른 화면을 만들고 그 뒤에 숨기도 한다. 그리고 그 화면을 다른 사람들에게 내보이며 자신과 닮지 않은 존재를 그야말로 '홍보'한다. 언제든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수록 거울을 만드는 작업, 기록은 어렵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어려운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감지하게 되는데, 그때 기록은 오히려 가장 일상적인 실천 행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낙서든 파일 정리든 일기든 뭐든 시작해 보자. 나중에 이불킥을 하게 되더라도 삶에서 거울은 꼭 필요하니까.
*이 기록은 본 워크숍의 마지막 숙제였다. 각자에게 필요한 기록을 2026년 1월 17일까지 하기로 했는데 나는 워크숍에 대한 기록을 이 홈페이지에 쓰기로 했다. 그리고 각자 그 숙제를 안 하면 내가 종종 후원을 하는 한 유기견 보호소에 10만원씩 입금하기로 했다. 아니, 그러라고 잔소리를 하고 워크숍을 마쳤다.
(참여자분들, 저는 숙제를 했습니다. 까먹지 않도록 계좌번호를 다시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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