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책 토론회: ‘기초예술 진흥과 예술인 복지’
토론문
예술의 위치를 질문하며 지원하기
최선영_문화예술기획자
1. 정책적으로 예술(인)을 고립시킨 상태에서의 질문
예술(인) 지원 정책을 설계하는 과정, 설계된 결과물로서의 제도를 개념적으로 살펴보면 특별히 비논리적, 비합리적인 부분은 없다. 예술인 실태조사, 예술인 대상 설문조사 등을 근거로 예술활동에 집중한 정책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술인이 창작활동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연구 결과가 새롭지도 않으며 그에 따른 정책 설계도 어느 정도 예측이 된다. 그런데 왜, 현장의 어려움은 반복되는 것일까.
예술은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독립된 개념이나 분야로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영역이 그러하듯 주변적 상황과 지배적 가치 구조 안에서 예술의 위치, 역할, 형태, 존재 가치, 개념 등은 변한다. 예술인의 삶과 창작 방식도 일상적 환경, 사회적 변화에 큰 영향을 받는다. 그렇다면 예술(인) 관련 정책 설계 과정에서는 반드시 사회와 예술(인)의 관계구조, 상호적 영향력을 동시에 살피는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현재 정책은 더욱 예술(인)을 개념적으로 고립시킨 상태에서 비슷한 질문과 답을 반복 생산하고 있다. 애초에 여러 영역과의 관계 안에서 질문을 시작하지 않으니, 대응책도 답변도 협소한 범위에서 맴돈다. 여러 공공기관의 예술인 간담회에서는 “더 많이 지원해 달라”, “연속 지원해 달라”, “지원 기준을 완화해 달라” 등의 의견만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공기관은 인공지능 시대에 어떤 목적과 방향을 바탕으로 예술을 어떻게 지원해야 할지, 예술의 위치와 개념에 대한 충분한 논의 없이 기존 지원의 범위와 양 조절에만 몰두한다. 이것은 이번 토론회의 기조발표문에서 언급된 ‘정책을 부처별 개별 언어로 다루는 상황’, ‘제도·시장·담론의 삼각 구조 필요’ 등과 관련이 깊다.
2. 예술인의 창작과 연결될 수 있는 자원
위에서 언급한 내용을 본인의 경험과 연결해 이야기하자면 더욱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다. 본인은 30년 넘게 수도권에서 활동하다가 6년 전 충남 소도시로 이주한 예술인이다. 두 지역의 가장 큰 차이, 아니 격차는 예술인이 창작과 연결할 수 있는 지역적, 문화적, 공식적, 시대적 자원이다. 수도권에서는 예술인이 전시, 워크숍, 프로젝트, 교육프로그램 등을 시도하면 그 내용에 관심이 있는 유사 분야 및 다른 분야 관계자와의 연결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지역의 단체나 커뮤니티, 학교, 기관, 기업 등에서 일회성이더라도 예술인의 기존 활동과 연계 협력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또한 예술인의 창착활동, 혹은 예술 자체에 관심을 두는 사람도 더 많다. 본인은 그러한 주변의 자원이나 관심이 당연했던 환경에서 활동하다가 그렇지 않은 지역으로 이주하게 되었는데, 예술인의 활동을 둘러싼 자원(관계자 포함)에 대한 연결 가능성을 함께 논의해야 복지 제도 포함 현실적인 지원 정책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조발표문에서 언급된 내용 역시 사실상 수도권 중심의 논의라고 볼 수 있다. 예술의 가치나 맥락을 기술, 산업, 대중문화의 작동 구조와 연결해서 사례 연구를 할 수 있는 지역도 수도권이나 일부 대도시가 전부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다양한 지역 상황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지역도 저마다의 문화적 자원과 가능성이 있다. 그 내용이나 범위가 넓지 않다는 것을 살펴봄과 동시에 그러한 상황에서 예술인의 활동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서울 한복판에서 이루어지는 창작과 인구 10만 정도 미만의 소도시에서 이루어지는 창작은 연결될 수 있는 자원(공간, 사업, 사람, 담론 등)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예술(인) 주변의 구체적 활용 자원, 연결 가능성에 관한 연구나 논의는 부재한 채 예술만 딱 떼어낸 지원정책이 실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지역이 비슷한 목적과 방식을 전제한 지원정책을 규모만 달리하여 실행하고 있다는 것에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 당연히 예술인들의 의견도 확장된 관점으로부터 출발하지 않는다. 독립된 예술의 의미를 인정, 이해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으나 이것은 한편으로 예술이 관계 맺거나 영향받고 있는 사회 전반을 외면한 주장이기도 하다.
3. 제도 개선에 활용할 근거를 연결하고 드러내기
자원과의 연결 가능성에 관한 연구뿐만 아니라 시대적으로 예술과 연계해 되짚어봐야 하는 사항은 다양하다. 그러나 현재의 지원제도는 어떤 장르에, 몇 명에게, 얼마를 지원할 것인가에 대한 10여 년 전 질문 안에 머물러 있다. 현재 예술의 상태를 사회적 맥락에서 연구, 조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제도 개선에 활용할 근거가 마련되지 않으니 당연히 작년 방식을 그대로, 혹은 조금 바꿔서 제도를 이어가는 것이다.
한편, 현황 파악은 여러 지역을 돌며 지원제도 관련 자문, 심의, 연구에 참여하는 소수의 전문가 안에서만 확인되고 휘발된다. 본인 역시 여러 기관의 지원사업 심의에 참여하고 있는데 ‘과연 이러한 지원을 계속하는 게 맞을까?’라는 질문마저 생긴다. 생계가 어려운 상황에서 지원금을 해결책으로 인식하는 사람, 지원사업에 선정되기 좋은 언어와 방식을 먼저 선택하려는 사람, AI가 대신 써준 지원신청서를 거의 그대로 제출하는 사람, 공공성 추구와 수익성 추구의 차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사람, 나에게 중요한 예술을 지역에서 발표하면 당연히 주민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막연하게 기대하는 사람, 내가 취미로 예술을 해왔는데 몇 번 발표도 했으니 예술인으로 인정해 달라는 사람 등이 매해 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이 당연시되고 확대되는 이유, 그사이에 작용하고 있는 지배적 관점과 제도의 신호 등을 분석하고 성찰하는 작업이 시급하지만 공공기관은 그러한 시도를 할 예산도 업무적 여유도 없다. 그래서 현재의 상태를 확인하게 되는 사람들은 한계와 문제점을 파악하고도 개별적 문제의식으로만 그것을 쌓아두게 된다.
본 토론회의 기조발표문에서는 그 축적된 질문과 답답함을 건드리는 요소들이 많다. 특히 ‘현실은 이미 결합되어 있는데 국가는 여전히 분리된 언어로 대응하고 있다’, ‘이 분절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한국의 강점은 각 부문에서 개별 성과를 내더라도 장기 구조로 축적되지 못하고 외부 질서 안으로 다시 흩어질 가능성이 크다’, ‘제도, 시장, 담론의 세 축을 하나의 전략 아래 묶는 주체가 없다면 개별 작가의 성취는 반복되기 어렵다’, 그래서 ‘통합을 설계하고, 구조적 플레이어의 역할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 매우 공감한다. 이미 여러 분야나 요소를 연결, 통합할 필요성을 감지하고 있는 시선들이 있으니, 그것을 공식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4. 예술의 상태를 질문할 수 있는 환경 마련
그런 측면에서 중앙정부는 개별 공공기관에 급한 일정으로 내년 지원제도의 운영 계획안을 제출하라는 주문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계획의 근거를 마련할 장기적 연구에 예산을 투여해야 한다. 예술인의 소득 수준, 작품 발표 횟수 등을 확인하는 실태조사보다 더 넓은 맥락, 범위에서의 현실적 연구가 필요하다. 예술인에게만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예술 주변에서 잠재된 자원으로서 존재하는 요소, 예술(인)과의 연결 가능성들을 살피는 작업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은 개별 연구자, 전문가, 학자 등의 가설과 논평 등으로 언급되고 휘발되지 않아야 하며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공식적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국내의 문화정책은 하향식으로 실행되는 경향이 큰데 위에서 파악하지 못하는 현실적 변화나 어려움, 혹은 가능성이 현장에 분명히 존재한다. 이것을 축적해 다음 정책 설계를 위한 현장 중심의 근거를 언어로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이러한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대부분 시민을 위한 행사성 사업, 예술활동(주로 발표활동) 관련 단기 지원사업에만 예산이 편성되고 있다. 이것은 기조발표문에 언급된 ‘한국이 속도는 있으나 깊이가 부족하다’라는 내용과 관련이 깊다. 정확한 진단을 위한 지속적인 연구, 설계, 질문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현장도 스스로 고립시키지 않는 계획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정책의 역할은 그러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지, 정권에 따라 제도를 론칭하듯 새로운 이름으로 지원사업을 기획, 홍보하는 것이 아니다.
5. 성과 확산 전략까지가 연구의 범위
효율성과 자본 중심의 사회에서 예술의 가치를 설명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래서 예술의 본질적 의미까지 언급하며 예술(인)을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전쟁 이후 대부분의 분야가 재건 사업 방식으로 자리를 잡은 국내 상황을 냉정하게 살펴보면, 이러한 주장이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는 어렵다. 오랫동안 일상 가까이에서 예술을 접하며 내 삶에서 그 가치를 느껴온 사람들이 많아야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위에서 언급한 연구는, 현재 예술의 위치와 상태, 주변적 조건과 자원 등을 파악하고 연결하는 전략에의 연구뿐만 아니라 그것이 정책화되었을 때 생기는 성과 전략 수립까지 포함해야 한다. 그 성과를 어떻게 사회적으로 확산할 것인지, 활용 언어와 방식에 대한 전략까지 모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실험적 정책은 곧바로 비판의 대상이 될 것이다. 특히 빠르게 성과를 입증하는 것이 익숙한 국내 상황에서는 ‘익숙한 방식을 두고 괜히 새롭게 한 게 문제다’라는 반응만 커질 수 있다.
즉, 기존과 다른 지원의 방향이나 방식을 설계하는 맥락이, 다수의 사람에게도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전략이 함께 모색되어야 한다. 예술(인)이 다시 고립된 상태로 ‘우리끼리만 좋은’ 무언가를 주장하게 되지 않도록 말이다. (예술인 복지 제도 역시 이 맥락 안에서 사회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지원금과 지원대상을 늘리거나 지속하는 것으로는 이러한 고립 상태를 벗어나기 힘들다. 과연 예술은 현재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으며 공공 지원은 그 예술과 어떤 관계 설정을 해야 할지, ‘질문하기’에 대한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실행이 계속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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