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웹진 '믿미' 6호_이주와 정착 : 인중 사이에 날파리가 부딪힐 때 그려진 말들

성북문화재단 예술순환로 프로젝트

웹진 '믿미' 6호 _이주와 정착 : 인중 사이에 날파리가 부딪힐 때 그려진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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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믿미 | 예술순환로

 

 

인중 사이에 날파리가 부딪힐 때 그려진 말들

 

최선영 / 유구리최실장

 

 

나는 돈 얘기를 하고 싶다. 파릇파릇한 자연 한복판에서 맑은 공기를 들이켜며 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강아지 네 마리와 초등학생 아들, 그리고 놀이터가 필요한 나와 남편이 함께 살 집을 찾는 과정에 돈은 언제나 강력한 원인이자 변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우리가 수도권에서 공주시 유구리로 이주를 하니 많은 사람들이 예술가적 결단, 대안적 활동 등의 맥락으로 질문을 하곤 했다. 하지만 우리가 유구리로 온 이유, 그 앞에는 도시를 떠나야 했던 이유가 있었다. 도시는 비쌌다. 집값은 특히 그랬다. 이해하기 어려운 구조와 이유 때문에 집값이 올라가는 사이 마당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는 우리의 꿈은 순진한 외침으로 변해 있었다. 그래서 상황에 맞는 선택을 하기로 했다.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등의 집값을 수 개월간 검색했고 연고도 없는 유구리로 이주를 했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 분수에 맞는 선택이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지렁이와 두꺼비가 함께 사는 건강한 흙 위에서 찬란한 노을을 온몸으로 맞으며 돈 얘기를 하고 싶다. 유구리로 이주한 지 1년 6개월이 지난 이 시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디에서 어떤 호흡과 기운으로, 그리고 어떤 목소리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중요하다. 오늘의 경우라면, 아무도 없는 산길을 오토바이로 달리며 인중에 부딪히는 날파리를 피하다 돈에 대한 시원한 노랫말을 짓고 싶다. 꽃피는 계절에 밀려오는 일을 하는 대신 푸른 그늘을 찾아 달리는 그 기분이 얼마나 돈을 시원하게 비껴가게 만드는지, 혹은 돈을 둘러싼 여러 가지 감정들도 끌어안게 만드는지. 집주인이 원하던 돈을 낼 수 없어서 시골로 변두리로 다른 터를 구하게 된 나는, 그렇게 나로서 내뱉고 느끼고 말하게 되었다.

 

 

 

동네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곳곳을 돌아다니는 모습

 

그런데 이것은 내가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었다. 나는 일의 기회가 줄어든 시골에서 더 큰 불안을 안고 새로운 일감을 물색하고 있을 거라고 예상했었다. 혹은 그동안 벌어둔 돈을 아껴 쓰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위로를 받고 있을 거라고. 그런 모습은 도시에서 시골로 이주한 사람들을 상상할 때 떠오르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러나 역시 삶은 나에게 낯선 길을 내보이고 있다.

코로나 상황의 장기화로 비대면 활동이 일상화되고 지역에서의 활동 기회도 생기면서 나의 막연했던 불안은 사라졌다. 오히려 수도권을 떠나면 낭떠러지일 것 같았던 생각이 얼마나 섣부른 걱정이었는지 확인하게 되었다. 또한 푸릇푸릇한 자연이 마냥 편안함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생각에서도 멀어졌다. 푸르뎅뎅한 잡초가 무섭게 자라나는 마당, 거실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지나가는 지네, 매일 마주하는 로드킬의 흔적 등도 분명한 자연의 일부였다. 불쑥불쑥 눈앞에 나타나는 생명력은 너무 거대하거나 징그럽기도 했다.

 

마당에서 주기적으로 뽑고 있는 잡초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나를 자극한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나는 날 것의 자극들로부터 훨씬 열린 상태에 놓여 있다. 왜냐하면 내가 애써 그것을 피하거나 차단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마당에서 삽질을 하다가 개구리가 땅속에서 튀어 오르면 나는 그것을 볼 수밖에 없고 그래서 움찔 놀랄 수밖에 없으며 개구리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귀 기울이게 된다. 옆집이 화목난로를 떼면 그 냄새를 맡아야 하고 창문을 닫아야 하며 그러다가도 그 냄새 때문에 이제 집에 거의 다 왔구나 알아차리게 된다. 두더지가 파놓은 구멍에서 부터 사장님 마음대로 결정되는 빵집 메뉴까지 내가 예측하거나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이 외부의 자극이 되어 하루하루의 사건을 만든다. 나는 처음에 계획대로 살 수 없는 그 상황들이 난감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을 시골의 특색이 아니라 삶의 자연스러운 순간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작년부터 남편과 함께 고치고 있는 60년 된 시골집도 그중 일부이다.

 

 

다양한 자극을 만나며 고치고 있는 시골집 '복많네'

 

그러나 도시에서는 그 자연스러움을, 관리하고 조정해야 하는 요소, 불편한 자극, 혹은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바라보곤 했었다. 이러한 요소들을 부정적이거나 낯선 자극들로 전제하고 그것을 줄이는 방법을 서비스화, 시스템화, 상품화하는 경우도 자주 경험했다. 예를 들어, 삐죽삐죽 자라는 나무가 보기에 안 좋고 사람의 이동을 방해하는 요소로 판단되면 나무를 빤듯하게 정리, 관리하는 사람과 시스템이 배치된다. 마찬가지로 음식을 배달하는 과정은 매끄럽고 친절하고 신속해야 하므로 주문과 결제, 배송 관련 원활한 시스템이 마련되고 그것에 능숙한 사람이 배치된다. 뜨거운 햇볕에 손등도 두 볼도 팔 다리도 검게 타면 안 되기 때문에 여러 제품이 출시되고 경쟁하고 광고를 하고 더 큰 소리로 멀리까지 또 광고를 한다. 그러다보면 비슷한 자극만 남게 된다. 너무 위험하거나 치명적이거나 날 것 그대로의 자극은 줄어든다. 나 역시 그 정도의 자극 범위 안에서 세상을, 사회를, 생명을, 혹은 어떤 사안을 인식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었다.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는 예술가로 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제한된 자극을 안전한 정보나 지식, 혹은 상품 중심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래서 요즘은 도시의 자극들이 너무 정제되어 있다는 생각을 한다. 또는 어떤 대상이나 현상, 사회를 너무 많은 레이어를 통해 인식하는 것 같다. 내가 지금 마당에 나가 풀 한 포기를 나로서 인식하는 과정에는 그 풀의 색, 냄새, 밀도, 시간, 촉감, 혹은 끈질김에 대한 많은 정보나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 내가 나로서 거기에 있으면 된다. “오늘은 바빠서 문 안 열어유”하는 음식점 사장님의 당연한 말도 서비스직 종사자의 태도나 손님이 왕이라는 관점으로 재해석할 필요가 없다. 그냥 배고픈 내가 그 말을 듣고 ‘아이쿠, 오늘도 바쁘시구나. 다음 기회를 노려보자’ 하고 아쉬워하거나 ‘왜 맨날 맘대로 장사하나’하고 감정적 사건을 남기면 된다. 그런 일은 어쩌면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것들이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그런 일들이 점점 줄어든다. 좀 격하게 표현하자면 제멋대로 자라는 풀이나 나무는 물론 자기 속도와 호흡으로 사는 사람도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인간이 무언가를 인식, 감각, 경험하는 과정은 잘 관리된 것들 안에서의 선택 정도가 되기도 한다. 인간이 생애주기별로 참여하거나 경험해야 하는 프로그램도 잘 정리되어 배포된다. 인간의 들쭉날쭉한 감정은 완성형 콘텐츠 및 서비스와 착착 매칭된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에게 동등한 기회가 쉽게 연결되기도 하지만 유사한 경험과 기억, 그리고 질문이 남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유사함에 쉽게 접근하기 위해 도시에서는 지속적으로 돈을 벌고 지불해야 한다. 상황과 욕구에 따라 매우 많은 돈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 가족도 도시의 끄트머리에라도 자리를 잡고 일감을 찾으려고 했으며 동시에 삶의 비용에 힘겨워했다. 그렇기에 이주 혹은 정착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는 돈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동시에 돈 얘기에만 몰두하게 되는 나를 여러 자극들 가까이에 꺼내어두는 것, 그것의 낯섦과 소중함도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다. 유사한 기회와 자극을 동시에 만나게 되는 환경, 그 환경에서 살아가는 비용 마련에 집중하면서도 내가 나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질문하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이다. 돈에 맞춰 이사를 하고 계획과 포기를 동시에 하고 마음도 조절하고 창작 활동도 설계했던. 그것이 합리적이고 지혜로운 삶의 방식이라 여겼던 시간이 있었지만 얼마 전 지붕 틈새로 갑자기 날아든 참새 가족들처럼 툭툭 나타나는 자극과 사건도 따라가 보고 싶다. 정보가 아니라 감각으로. 지식이 아니라 흘러감으로. 많은 것을 효율성과 안정성으로 연결하려 하는 내가 여전히 있음에도.

 

 

금강에서 시간을 보내는 모습

 

날씨가 좋아 일단 집을 나서 금강을 따라 걷는 내가 되어본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그것을 해볼 줄 알게 되었다. 날씨가 나의 하루하루를 좌우하지 않도록 스케줄을 체크하던 나에게 개구리 같은 점핑을 기대해보기도 한다. 세세한 계획 대신 알 수 없는 내일, 잡초가 덮힌 길, 운동기구 없는 공터를 향해보기도 한다. 그렇게 해가 떠야 알게 되는 내일에 대해 받아들이면 심지어 돈에 대한 불만이나 불안 대신 다른 힘이 생기기도 한다. 그리고 할 말이 생긴다. 말을 해서 나의 존재와 의지를 증명해내야 한다는 강박 대신 그냥 말이 생겨난다. 말이 떠올라 지면도 채우고 나도 채운다. 그러면 무언가 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려진다’는 말이 낯선 표현임에도 그려질 수 있다는 것을 믿으며 나를 내버려둔다.

내가 예술 영역에서 활동해서가 아니라 나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순간은 매우 귀하다. 앞으로 승승장구할 마음도 자신도 없지만 지금의 시간을 품는 힘으로 건강하게 살아갈 자신은 있다. 마당에서 멀리까지 보이는 하늘과 땅이, 나의 것이 아님에도 누군가의 빌딩으로 가려져 있지 않아 마음껏 바라본다. 저 멀리에 낭떠러지라는 텍스트가 아니라 나도 궁금한 내가 보인다. 그곳에는 다음 정착지가 아니라 이름 없는 행선지도 보인다. 열린 사건처럼 그곳을 지나칠 때, 여전히 나에게도 살아있는 것들이 그려지기를 바라본다.

 

 

 

 

 

 

최선영

유구리최실장. 세상을 구하려다 오지라퍼가 된 문화+예술+플레이어다. 창작, 기획, 교육, 연구 등 여러 일을 해오고 있으며 수도권에서만 살다가 2020년 가을에 충남 공주시 유구리로 이주했다. 완벽한 해결사가 아니라 이상한 실체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