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웹진 이음 32호
사람이 만드는 낯선 화음, 혹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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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영 / 유구리최실장
머릿속에 10명쯤의 사람을 떠올려보자. 그들은 어떤 모습일까. 조금 더 구체적으로 질문해보자면 그들은 어떤 신체, 표정, 정서, 입장, 정체성을 가지고 있을까. 그들의 얼굴 뒤로 완벽하지 못하고 애매하고 솔직하기 어렵고 서로에게도 낯선 ‘사람’이 보인다. 그렇다면 특히 사회제도나 정책 안에서 사업적 대상을 떠올릴 때 그 사람은 얼마나 다양하게 그려질까. 노인, 장애인, 유아, 청소년, 청년, 여성, 이주민 등으로 구분되는 사업적 대상이 사람의 개별성을 담아내기 어려움에도, 우리는 천차만별로 다른 사람에 대해 개별성보다 일반성을 바탕으로 접근하게 된다. 몇 가지 기준을 두는 것이 긴 질문을 이어가는 것보다 수월하기도 하고 현실적으로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술은 그 현실적 기준에 매끄럽게 답변하는 역할을 해야 할까. 삶의 여러 순간에 사람의 울퉁불퉁한 개별성이 포착될 때 예술 혹은 예술가는 그 표면의 까끌까끌함과 만나 어떤 사건이 벌어지는지 벼려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생각은 장애와 관련된 공식적인 활동이나 작업을 해야 하는 순간, 나에게 가장 큰 질문이 된다. 끊임없이 발견되는 개별성을 들여다보기가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쉬운 선택을 줄이며 긴 질문을 남겨볼 것인가.
2021년 여름,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길은 너무나 길고 종이는 조그맣기 때문에》(링크)의 연계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되었다. 이 전시는 제도권 교육이나 사회적 개입 없이 오직 자신의 내부에 몰입하여, 자신만의 독창적인 창작을 지속해온 발달장애 창작자 16인, 정신장애 창작자 6인의 예술세계를 소개한 자리였다. 그래서 연계 프로그램도 장애인이 중심인 기획으로 흐르기 쉬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비장애인인 프로그램 운영자의 입장에서 장애인 참여자를 대상으로 어떤 예술적 활동을 기획할 것인가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다른 방향성을 모색하고 싶었다. 특히 이 전시가 장애를 주제화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 공감하기도 했다.
그래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기보다는 사건을 만들고 다양한 사람들의 개별성이 드러나는 시간을 마련하고자 ‘그린다’에 대한 자유로운 스터디 모임을 기획하였다. 내가 이 전시에서 본 것들도 ‘작품’이나 ‘미술’, 혹은 ‘예술’이라기보다는 ‘그린다’에 대한 개별적인 해석이었기 때문이다. 이 모임의 이름은 ‘그린다그린다그린다그린다그린다’(링크)였다. 5명이 모여서 각자의 ‘그린다’를 해석하고 스터디하는 방식이다. 모임의 모호함 자체로 외부에 소개되고 홍보되더라도 그것도 사건의 일부가 되기를 기대했다. 그리고 참여자 모집을 위해 홍보물에 몇 가지 스터디의 예시를 안내하였다.
- ‘그린다’라는 말을 어딘가에 반복해서 쓰기
-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섞어서 그리기
- ‘그린다’는 것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거나 쓰기
- 다른 참여자가 ‘그린다’에 대해 스터디하는 것을 관찰하거나 따라 해보기
- 남에게 칭찬받기 위해 ‘그린다’를 열심히 하고 있는 자신을 들여다보기
- 무언가를 그리면서 끊임없이 딴짓하기
사실 이것은 내가 만나왔던 발달장애인과 정신장애인이 ‘그린다’를 해석하는 방식 중 일부였다. 내심 이들과 비슷한 욕구나 성향을 가진 장애인도 스터디 모임에 신청하기를 기대했으나 특별히 모집 대상에 장애인 등의 표현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비장애인만 30명 가까이 신청했고, 그중에는 전문 예술교육을 받은 사람도 많았다. 스터디 모임 첫 번째 시간에 나는 참여자들에게 사실은 장애인의 참여를 예상했었다고 말했다. 나를 포함한 모두는, 각자의 ‘장애성’을 통해 이 스터디 모임으로 흘러들어왔을지 모른다는 것에 공감했다. 사회적으로 범주화한 장애의 테두리 안에 있지는 않지만 말이다.
총 일곱 번의 스터디 모임 동안 참여자들은 전시를 함께 봤고, 전시 참여 작가와 기획자를 초대해 대화를 나누기도 했으며, 작가의 작품집을 찬찬히 살펴보며 소감을 나누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는 서로의 ‘그린다’이자 개별성을 궁금해하며 경험과 시간을 나누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시 참여 작가를 포함하여 각자가 먼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어야 했는데, 그것이 쉽지 않음을 조금씩 발견할 때쯤 스터디 모임은 마무리되었다.
요즘 나는 장애나 장애인과 관련된 연구나 기획 활동을 종종 하고 있다. 그것은 보통 공공기관이 제시한 사업적 주제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장애 판정을 받은 사람들에 ‘관한’ 내용을 전제로 한다. 물론 이러한 활동도 필요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러한 전제가 사람에 대한 좁은 질문을 설정한다는 생각을 놓을 수가 없다. 장애 유무나 유형 중심으로 구분된 카테고리 안에서는 다양한 서로를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그 다양성을 구성하는 개별성이 충분히 등장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개별성은 특별한 재능이나 역량과 같은 우수한 것들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사람은 부족하고 불분명하고 침울하고 이상하고 불편한 요소들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이 더 많지 않을까. 그중 어딘가에 타인의 장애가 아닌 각자의 장애성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등장할 수 있는 장소로 예술이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곳에서 누군가 자신의 속도로 무언가를 꺼낼 수 있다면 그때 예술적 사건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적절하게 조심하며 나와 너의 경계 위로 악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함을 찾기 어렵다는 길고 긴 노래를 불러대다 낯선 화음도 만들어내는 사건. 그 순간을 여기, 예술 주변에서라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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