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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글] 수달에 기댄 뒤늦은 고백

by 문화예술기획 최선영 2022. 12. 7.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사회를 마주하는 N개의 문화예술교육
결과자료집 원고


수달에 기댄 뒤늦은 고백



최선영 / 유구리최실장


수달을 닮은 <N개의 문화예술교육>
수달은 귀엽다. 귀여우면 우리집 강아지들! 강아지들을 떠오르게 만드는 수달이라면, 그래, 좋다!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해봤지만 역시나 갑자기 수달을 향해 나의 마음과 에너지를 쏟자니 쉽지 않았다. 그래서 얼마 전 ‘OO지역 OO천에 사는 수달’에 대한 이야기를 ‘환경 문제’와 연결하는 문화예술교육 프로젝트에 최종적으로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요즘 문화예술교육을 향해 얼마나 많은 이름의 수달 혹은 ‘OO문제’가 제안되고 있는가. <사회를 마주하는 N개의 문화예술교육>(이하 <N개의 문화예술교육>)의 2021년 사업 공고문과 연결하자면 여기에서의 수달 혹은 ‘OO문제’은 환경·기후, 평등, 다양성일 것이다. (사업 공고문에는 공모주제로 ‘환경·기후, 평등, 다양성 등 사회의제에 대한 시민(개인·공동체)의 변화(인식·생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문화예술교육’을 명시하고 있다.) 예술가나 기획자가 평소에 이러한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든 아니든 지원사업이 몇 가지 주제를 큰 덩어리의 단어들로 현장에 제시하는 것이다. 그것이 사회적 의제니까, 그것과 ‘관련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사회를 마주하는 것일 수 있으니까 등의 이유로 말이다.

거창할 필요 없는 이야기
다시 수달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해보자. 나는 문화예술교육‘도’ 하는 예술가이다. 평소에 동물원에 갇혀있는 동물을 보는 것에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종종 길에서 강아지나 고양이를 구조하기도 한다. 고라니가 뛰어다니는 풀숲을 발견하면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기도 하고 철새들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전시를 기획하기도 한다. 이런 내가 (수달에 대한 프로젝트 제안을 듣지 않은 상태에서) 동네 천변을 걷다가 ‘OO천에서 수달을 발견하면 제보해주세요’라고 적힌 환경단체의 현수막을 발견한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아마도 산책을 하는 내내 눈을 부릅 뜨고 수달을 찾아다니거나 작은 개천에 보통 어떤 수달이 사는지 검색을 할 것이다. 내가 수달을 발견했다고 환경 단체에 연락을 하면 다음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할 것이고 그 절차와 관련된 제도나 환경 단체의 역할 등도 알아보게 될 것이다. 또한 수달뿐만 아니라 어떤 동물들이 최근 도시 근처 물가에서 발견되는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찾아볼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면 ‘어쩌면’ 내가 만나고 싶은 수달에 대해, 혹은 수달이 사는 동네 개천에 대해 문화예술교육도 해보고 싶어질지 모른다. 그때는 교육 참여자와 나눌 이야기나 활동이 나에게 이미 가득 차 있을 것이다.

거창할 때도 있는 이야기
한편 내가 위와 같은 경험이나 질문을 갖지 않은 상태일 때 누군가 ‘OO천에 사는 수달’에 대한 이야기를 환경 문제와 연결해 문화예술교육으로 기획하라고 하면 어떨까? 나는 낯선 의도를 내재화하기 위해 빠른 리서치를 해내려고 할지 모른다. 나에게 축적되지 못한 언어들을 잘 나열하고 정돈하여 계획안을 작성하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혹은 수달과 나를 연결시켜줄 ‘우리집 강아지들의 귀여움’과 같은 강력한 동기를 찾아내려 할 것이다. 그런데 어떤 존재를 ‘귀엽다’는 관점으로 바라보는 배경에는 무엇이 작동하고 있을까. 누구나 강아지든 수달이든 귀엽다고 여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나의 경험, 인식, 호기심, 관심, 정서 등이 나의 관점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 관점의 형성 과정을 이야기하려면 스무살이 넘도록 강아지에 큰 관심이 없던 내가 현재 5마리의 강아지들과 함께 살게 되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현재는 왜 강아지의 마당 문화 활성화를 위해 집도 고치고 이사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다른 동물에 대해서도 왜 관심이 커졌는지 등 여러 맥락이 필요할 것이다. 그 이야기가 ‘귀엽다’ 정도로 표현되긴 하지만 사실 ‘귀엽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길고 긴 이유와 경험들로 말하고 싶어질 것이다. 자신만만하고 논리정연한 일상을 해내야 하는 인간이 강아지든 수달이든 왜 그 가녀린 등줄기에 기대어 사는지까지 말하고 싶어질 테니까.

‘마주한다’의 드넓음 혹은 지난함
한없이 길어질 동물 이야기를 애써 참으며 다시 문화예술교육과 연결된 질문을 해보자. 내가 수달과 관련된 구체적 경험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어쨌든’ 수달과 환경 문제에 대한 문화예술교육을 ‘한다면’(혹은 해야 한다면) 그것은 사회를 마주하는 것일까. 문화예술교육이 결국 프로젝트나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것으로 구체화되는 상황을 고려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한다’는 것에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N개의 문화예술교육> 사업이 전제했던 ‘사회를 마주한다는 것’은 어떤 주제와 관련된 내용의 활동을 ‘하는’ 것으로만 의미화되지 않는다. 사회는 거대한 개념이기도 하지만 개인이 각자의 관점과 경험을 통해 인식하는 개별화된 세계, 혹은 그 세계의 복잡함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사회는 다수에게 유사하게 인식되는 하나의 주제나 범위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사람마다 다르게 인식할 수밖에 없는 ‘사회’라는 세계를 마주하는 이유나 방식은 매우 다를 수 있다. <N개의 문화화예술교육> 사업에서 N개란 그런 무한한 다름을 표현한 것이 아니었을까. 사람이 각기 다른 만큼 한 세계를 인식하고 반응하는 이유, 방식, 범위, 뉘앙스, 양상, 의미도 매우 다양하다. 사회를 마주한다는 것은 결국 그 다양성이 갖는 촘촘하고 개별화된 순간들을 포함하는데 각자의 뾰족한 촉을 세운 예술가라면 그 마주함의 경험을 매우 다채롭게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수달은 소중한 생명이며 환경 문제는 중요하니까’ 정도의 이유로 수달의 눈, 콧구멍, 발톱 끝, 등의 곡선, 미세한 움직임 그리고 살아가는 방식 등을 살피는 것은 아니듯이 말이다.
그래서 수달이든 무엇이든 더욱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싶게 되면 오히려 일반적인 사회적 인식 범위에서 벗어나는 요소들까지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과정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고 다른 문제나 이슈들도 포착되어 다 외면하고 싶은 마음도 생길지 모른다. 그럼에도 다시 자신의 시선을 바로 세워보거나 그럴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과정, 그것이 사회를 마주하는 순간이 아닐까. 오히려 개별적이고 지난한 그 순간들은 문화예술교육 범위에서 교육 참여자와 무언가를 함께 ‘하는 것’으로만 수렴되기에 부족할 것이다. 2시간 정도의 프로그램 형태로 ‘하는 것’을 기획하고 운영해야 한다면 더더욱. 그렇기에 사회를 마주한다는 것은 문화예술교육 형태로 무언가를 ‘하는 것’ 안에 담기지 못하는 넓은 경험과 질문을 포함한다. 그것이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것이 ‘마주한다’의 중요한 속성이기도 하다.

‘모델화’라는 함정
그렇다면 ‘마주한다’가 사유한다, 실천한다, 방황한다, 질문한다, 실패한다, 시도한다, 싸운다, 기록한다, 함께 한다, 관찰한다, 살아간다 등을 포함한다면 <N개의 문화예술교육> 사업은 과연 넓은 의미의 마주함을 전제하고 있었을까. 사업 자체가 그럴 수 있는 구조를 띄고 있었는지, 사업 참여자가 ‘마주한다’를 폭넓게 해석하는 데에 적극적 의지를 가졌는지 질문이 남는다. 2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사업 기간 동안 각자는 무엇을 어떻게 마주해보았을까.
그런데 여기서 모두에게 함정으로 작용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모델화’였다. 사업 1년 차에 현장과 수요자 연구, 시범적 워크숍 등을 통해 혁신 모델을 도출하는 것이 공식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2년 차에는 그 모델을 운영하는 것이 필요했는데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마주한다’는 그 다음 단계를 계획하기 위한 사전 작업 정도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사업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2년 차에도 교육 대상(이라 표현된 타자)을 만나며 각자의 관점을 되돌아보아야 했다. 결국 2년 내내 ‘마주한다’가 다른 형태와 속도와 지속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N개의 문화예술교육>과 같은 사업들에서 정해진 기간 내에 모델을 도출하는 것이 공식적 미션이 될 필요가 있는지 질문이 생긴다. 사회를 마주하는 것의 넓은 의미를 공감한다면 그 의미를 개개인이 충분히 발견할 수 있는 열린 흐름이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사회를 마주하는 경험이 몇 개월 이내에 결국 프로그램이라는 형태로 모델화되기는 어렵다는 것을 인정함과 동시에 그 과정에서의 고민을 응원한다면 말이다.

함정 곁에서 흔들리는 사람과 함께
사업 참여자 역시 그 모델화에 집중할 경우 결국 각자가 무엇을 왜 마주하고자 하는지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다. 누구든 지원사업의 미션들을 안정적으로 해내려고 활동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수달과 환경 문제를 연결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환경에 대해 각자가 어떤 관점을 가지고 무엇을 해보려고 하는지를 탐색, 인정하는 시간일 수 있듯이. 그것이 각자에게도 자연스러워질 때 타인을 만나고 싶은 이유나 마음도 생기지 않을까.
그런데 무언가를 자신의 시선으로 자연스럽게 보게 되는 과정은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일까. 내가 바라보는 무언가에 집중하다가 사실 자신이 흔들리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까지 인정해야 하니까. 결국 명확할 수 없는 나를 통해 무언가를 바라보는 것인데 그렇게 발견한 것을 가지고 누군가와 함께 경험을 나눠야 한다면 우리는 문화예술교육과 관련해서 어떤 고민을 하게 될까.
마지막으로 내가 여러 함정들 곁에서 하고 있는 시도를 나누고자 한다. 교육 참여자보다 많은 정보나 자료를 조사하는 것 외에 사실 나도 작은 것에 흔들리거나 흥분하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 그럴 때 지금의 나에게도 자연스러운 순간이 발생하면 그때 누군가도 초대해보는 것. 수달의 종류를 설명하기 전에 우리집 강아지의 앞발과 수달의 앞발이 어떤 종류의 존재감으로 나에게 포착되는지 집중해보는 것. 그 앞발을 향해 나의 눈이 반짝일 때 비슷하게 반짝이는 눈빛을 만나면 그 다음에 같이 무엇을 해볼지 이리저리 찾아보는 것. 그것을 끊임없이 해보는 것. 그리고 함정에 대한 비판이 내 활동에 대한 반복되는 변명이 되지 않도록 살피는 것.
여전히 무언가를 해보고 있기에 흔들리고 있는 내가, 휘청거리는 사람을 그리워했다고, 심지어 <N개의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사업 안에서도 그런 사람을 찾아 헤매었다고 뒤늦은 고백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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