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4

[글] 석달 동안의 ‘갈 곳’, 지속적인 표현의 장소로

by 문화예술기획 최선영 2024. 11. 28.

2024 천안문화재단
발달장애인 예술교육 프로그램 <미소 창작소>
연구 원고




프로그램 세부 내용
https://cfac.or.kr/bbs/board.php?bo_table=biz&wr_id=668

[2024 - 112호] 2024 충남 장애인 예술교육 지원사업 <미소창작소> 교육인원 모집 공고 > 지원사업 |

메뉴담당자 담당부서사업담당부서 연락처- 최종수정일2012-12-14

cfac.or.kr




석달 동안의 ‘갈 곳’, 지속적인 표현의 장소로

최선영 / <미소 창작소> 연구자, 문화예술기획자


지속성에 대한 오래된 요청
2024년 11월 26일, <미소 창작소>의 올해 성과공유회가 천안시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다. 프로그램 참여자와 가족, 지인, 그리고 재단 관계자와 강사가 모두 모여 과정과 결과를 축하하는 자리였다.



6개의 반이 동시에 10회 운영된 <미소 창작소>는 예산 축소로 인해 작년보다는 프로그램의 규모가 조금 줄어들었으나 천안에서의 장애인 예술교육의 의미와 필요성을 가시화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공공기관에서 발달장애인을 포함한 장애인 예술교육을 직접 사업으로 기획하여 2년 동안 운영한 것은 천안에서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장애인 대상의 프로그램은 주로 자기표현이나 창작보다는 신체 기능 및 역량 개발에 초점을 둔 활동 혹은 복지 차원의 체험 및 관람이 이루어진다. 이것은 주로 특수교육이나 복지 분야에서 장애인 관련 제도를 담당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 측면에서 장애인의 문화예술 관련 활동, 예술 경험에 대한 논의나 움직임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문화예술 제도의 변화와 시대적 흐름 안에서 <미소 창작소>가 운영된 상황도 의미 있게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미소 창작소>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장애예술 활성화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으며 2022년 충남문화관광재단 ‘발달장애 예술교육 프로그램 모델개발 연구’의 결과를 중심으로 설계되었다. 중앙 기관과 광역 재단의 지원이 적극 뒷받침되어 지역에서의 장애인 예술교육이 구체적 시도를 해볼 수 있었던 것이다. 지역마다 장애인 예술교육이 보편화되어야 한다는 관련 조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장애인에게 다양한 예술 활동 기회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공론화된 움직임도 적기 때문에 중앙 정부의 새로운 사업 설계를 바탕으로 지역에서도 조금씩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미소 창작소>와 같은 프로그램 혹은 제도권 움직임은 정말 새롭고 특별한 일일까. 사실 필자는 <미소 창작소> 성과공유회를 다녀오며 정확히 16년 전 다른 지역에서 참여했던 장애인 예술교육 프로그램 성과공유회 현장을 떠올렸다. 그 프로그램은 경기도의 한 지역에서 3년 넘게 진행되었고 필자는 예술단체 소속의 예술강사이자 사업 담당자 역할을 했다. 지역 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이루어진 그 프로그램은 해당 지역의 특수학급 서너 곳에서 동시에 진행되었다. 참여자들은 다채로운 표현 활동과 예술놀이에 큰 관심을 보였고 특수교사들은 이러한 활동이 공교육과 더욱 연결될 필요성에 공감했다. 참여자의 부모님들은 성과공유회나 사업 간담회 자리에서 이 프로그램이 단년 사업으로만 설계되는 것이 아쉽다고 입을 모았고 사업 관계자들 역시 사업의 지속성이 중요하다는 것에 크게 공감했다.
그러나 이후 사업의 지속성은 마련되지 못했고 16년이 지난 지금, 필자는 <미소 창작소>에서도 비슷한 의견과 반응을 재차 확인하고 있다. 그리고 <미소 창작소> 운영의 뒷받침이 되었던 지원사업이 올해로 충남 지역에서 마무리된다는 것도 떠올리게 된다.

문화예술 활동 의미에 대한 사회적 해석
하지만 이러한 현실적 상황을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맞지 않다. 정책 구조나 행정적 상황이 지역 혹은 국내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복잡하게 현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조금씩이라도 현장의 요청을 가시화하는 노력인데 그런 측면에서 당장 사업을 추진하는 것을 넘어 참여자의 반응, 관계자의 공감대를 의미화, 성과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장애인 예술 활동, 예술교육 등에 있어서는 특히 그것이 특수교육, 복지, 그리고 의학 분야의 관점이나 의미와 왜 어떻게 다른지를 언어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수교육을 문화예술로 더 쉽게 실현할 수 있다, 복지적 관점에서 문화예술을 보급할 수 있다, 장애 특성 중 일부 요소를 개선하거나 줄이기 위해 문화예술을 이용할 수 있다는 관점이 아닌, 장애인이라는 결국 ‘사람’에게 문화예술 활동이 어떤 의미인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장애인이 이미 복지 분야에서 많은 혜택을 받고 있는데 왜 예술 활동에까지 예산 확보를 해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을 계속 마주하게 될 것이다.
한편으로 그러한 상황 자체가 장애인 문화예술 활동 관련 제도와 현장의 가장 큰 숙제라는 생각도 든다. 기존 지배적인 관점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는 전문화된 해석, 공론화될 수 있는 맥락을 찾아야 제도든 활동이든 ‘지속성’의 의미를 사회적으로 공감받을 수 있다. <미소 창작소>는 그 해석을 위한 천안의 사례, 현장의 언어를 실험하고 축적하는 장으로 의미가 있었다. 예술강사들의 진심어린 참여, 재단의 노력, 주말마다 참여자의 활동을 함께 한 보호자들의 협력이 그것을 뒷받침했다. 수도권만큼 다양한 활동이나 사례가 실행되기 어려운 지역 내에서 이러한 개별적 움직임은 프로그램에 큰 자양분이 되었다.

갈 곳, 가고 싶은 곳으로서의 장소
필자는 <미소 창작소> 성과공유회에서 몇몇 참여자의 가족들로부터 이 프로그램의 의미를 들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16년 전 사업 간담회에서 들었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중 공통된 의견은 지역 내에서 장애인이 마음 편히 갈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는 것, 그리고 <미소 창작소>는 그런 장소가 되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상황에서 인간은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존재할 수 있으며 스스로 존중받는다고 느낄 수 있다. 문화예술 영역은 사람마다의 개별적 특성, 욕구, 속도를 다양성의 맥락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미소 창작소>는 참여자가 보다 자연스럽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던 것이다. 예술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프로그램이 운영되었으나 예술강사가 참여자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표현 자체에 집중하였기에 그것이 가능했다. 새로운 자극과 표현 재료, 놀이 방법 등이 프로그램 전반에 등장했는데 그것은 여러 선택 중 하나로 전제되었고 그 선택의 기준으로 참여자의 욕구나 관심사나 가장 크게 고려되었다. 그래서 누군가 조금 쉬고 싶어하면 공간의 한 편에 가서 앉아 있거나 자신에게 익숙한 행위를 해볼 수 있었다. 지난 시간에 했던 활동에 더 관심이 있는 경우 잠시 그 재료를 만져볼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미소 창작소>가 참여자의 개별성에 따라 반응적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운영의 방향성은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위한 기획 요소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참여자가 자기 자신으로 무언가를 경험하고 표현할 수 있는 권리가 공공 영역의 예술교육 안에서 확보될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프로그램의 계획이 너무 촘촘하거나 확정적이지 않아야 했다. 오히려 세부 내용은 참여자에 따라서 끊임없이 수정, 변경될 수 있다는 원칙이 중요했고 예술강사들 역시 이러한 방향성에 따라 현장 운영을 했다. 그래서 <미소 창작소>는 주말에 잠시 이루어지는 프로그램이었으나 참여자에게 자기표현을 하기 위해 ‘가고 싶은 곳’으로 작동했다.
그런데 특히 장애인의 삶에서 ‘갈 곳’, ‘가고 싶은 곳’은 매우 중요하다. 다양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예전보다는 넓어졌으나 여전히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지역 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장애인이 누군가의 시선을 특별히 신경쓰지 않으며 ‘갈 수 있는 곳’,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곳’은 예술교육 프로그램처럼 기획된 시간 속에서 마련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혹은 그렇게라도 마련될 필요가 있기도 하다. 그런 시간과 장소가 지역 사회에서 다수에게 인식될 수 있는 구체적 사례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을 넘어서는 지속적인 장소로
이와 같은 의미를 앞서 언급한 지속성과 연결해 보자면, 장기적으로는 지역 내에서 단기 프로그램의 운영을 넘어 장애인의 표현 장소로서의 ‘갈 곳’이 확보될 필요가 있다. 그 장소가 정책적 지원에 좌지우지되는 한계를 자주 마주하지 않도록 무엇보다 지속성을 중심에 둔 제도적 개입이 중요하다. <미소 창작소>가 석달 동안 참여자에게 ‘갈 곳’이 되었다면 3년, 5년, 10년 동안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열린 문화공간, 표현의 장소가 모색되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미소 창작소>와 같은 프로그램의 확대를 넘어 어떻게 ‘갈 곳’을 만들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복지나 특수교육 영역과의 연계 외에 독립된 활동으로 시도될 필요도 있다.
<미소 창작소>의 정책적 지원 배경이 되었던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과 충남문화재단의 사업 역시 프로그램이나 단기 사업의 운영비 지원을 넘어 지역 조건에 부합하는 현실적 제도 설계를 모색해야 한다. 몇 년 후에 다른 이름의 성과공유회에서 <미소 창작소>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다시 나누며 아쉬워하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몇몇 프로그램의 긍정적 요소를 떠올리며 기약 없는 만남만 기다리는 경험은 이미 충분히 했다. 현장의 요청이 분명하고 공통된 목소리가 존재한다면 그것에 귀 기울이는 문화예술 분야의 제도적 움직임이 필요하다. 지역 사회의 소외계층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의 개별성과 관계가 등장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대되는데에 이번 <미소 창작소> 프로그램이 조금이나마 역할을 했기를 바란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