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학교예술강사 지원사업
충북지역 성과공유회 및 포럼
<공교육 현장에서 장애예술교육의 역할과 방향>
발제문
공교육 현장에서 장애예술교육의 역할과 방향 : 프로그램 확대를 넘어 교육 주체의 협력으로
*본 글에서는 공교육 중심의 논의를 위해 예술교육을 문화예술교육 지원법에 근거한 ‘문화예술교육’의 맥락으로 서술하고자 한다.
최선영 / 문화예술기획자
문화예술교육 정책의 불안정성
문화예술교육은 제도적 배경 안에서 생겨난 개념이자 공공성을 중심에 두고 있음에도 정책적 변화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설계된 사업도 정치적 상황에 따라 급격한 변화를 겪기도 하고 권리 중심으로 논의되던 제도도 안정적 운영 구조를 마련하지 못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한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는 학교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부가 발표한 2025년 예산안에 따르면, 학교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의 예산이 전년 대비 72% 삭감되었다. 2024년 287억 원 규모였던 예산은 2025년 80억 원으로 줄어들 예정이며, 특히 예술강사들의 인건비는 포함되지 않았다. 2023년 574억 원이었던 예산이 불과 2년 만에 80억 원으로 축소된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이번 예산 삭감에 대해 “학교 관련 예산은 교육재정으로 이관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지방교육청의 재정 상황이 열악해 예술강사 지원사업을 이어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중앙정부의 지원이 없다면 지방정부는 예산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고, 이는 곧 학교 문화예술교육의 질적 저하로 이어질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교육 현장에서의 장애예술교육의 역할과 방향을 이야기하는 것은 다소 무리한 일이기도 하다. 위에서 언급한 학교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이 사실상 비장애 학생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장애인의 예술교육 참여 기회에 대한 논의는 더욱 어려움 속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장애인이 권리 차원에서 예술을 경험하고 교육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기에 현실적 제도 마련을 넘어서는 현장의 관심과 움직임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일단 현재 장애인 문화예술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일반적인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화예술교육은 대부분 문화체육관광부의 여러 정책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현장에서는 공공기관(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지역문화재단 등) 중심의 지원사업을 바탕으로 진행된다. 장애인이 참여하는 문화예술교육 운영에 의지를 가지고 있는 예술교육가가 지원사업에 신청을 하여 선정될 경우 보통 1년 단위의 사업으로 현장 활동을 한다. 그리고 예술교육가가 많은 수도권이나 대도시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예술교육가들 역시 개인 및 단체 활동의 불안정성 때문에 장애인 문화예술교육을 지속적으로 연구하며 이어나가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
특수교육과 문화예술교육
문화예술교육이 ‘교육’의 맥락도 가지고 있어 특수교육과 연계될 가능성도 있어 보이지만 사실상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의 협력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문화예술교육은 예술 분야로 분리되어 이어지고 있다. 또한 문화예술교육은 참여자의 자기표현이나 예술적 경험을 권리 차원으로 접근하여 특수교육의 목적과 다소 충돌하기도 한다. 쉽게 표현하자면 장애인이 문화예술교육 안에서는 매우 천천히 자신의 표현 행위를 충분히 해보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경우가 많지만 특수교육 맥락에서는 활동의 효과, 참여자의 변화 등이 두드러지게 언급되기도 한다. 그래서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참여자가 자신의 표현 방식을 탐색하거나 예술 놀이를 즐기는 활동이 지속될 경우 특수교육 관점에서는 그 의미가 있는 그대로 이해받지 못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특수학급 내에서의 자유로운 문화예술교육 활동이 그 가치와 의미를 증명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럼에도 공교육 내의 장애인 문화예술교육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특수교육과의 연계성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어떤 방식과 범위의 연계여야 할지, 누구의 역할이 얼마나 필요할지에 대한 구체적 논의도 필요하다. 현재는 이러한 제도적 연계 모델도 거의 없으며 특수교육 안에 예술교육가가 별도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프로그램이 배치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 정도다.
이에 따라 장기적으로는 장애인의 다양한 예술 경험을 위해 문화예술교육이 더욱 공교육 안에서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중요하며 그 과정에서 예술 활동이 갖는 의미나 목적성이 고유한 영역으로 인정될 수 있어야 한다.
장애인 문화예술교육의 목적과 방식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관련 전문적 연구는 국내에서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단지 여러 현장에 장애인의 참여가 이루어지거나 그럴 필요가 생기면서 예술교육가들이 자체적인 역량으로 교육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도 장애인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별도의 연구가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으며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도 문화예술교육보다는 장애예술인의 창작 활동에 더 집중하고 있다. 이와 같이 공공 영역에서 장애인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움직임이 활발하지 않아 예술교육가들이 자체적 연구 모임을 하거나 관련 자료를 찾아가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교육 현장에서 장애인의 개별화된 표현 행위가 다채롭게 포착되어 최근 5년 사이 장애인 문화예술교육을 고민하는 주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그 활동의 목적도 여러 방향성으로 논의, 주장되고 있다. 장애인이 자기표현을 할 수 있는 권리 확보 차원부터 예술적 재능을 키울 수 있는 전문적 교육 기회 마련까지 여러 목적의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문화예술교육 지원법의 기본원칙(①문화예술교육은 모든 국민의 문화예술 향유와 창조력 함양을 위한 교육을 지향한다. ②모든 국민은 나이, 성별, 장애, 사회적 신분, 경제적 여건, 신체적 조건, 거주지역 등과 관계없이 자신의 관심과 적성에 따라 평생에 걸쳐 문화예술을 체계적으로 학습하고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받는다. <개정 2023. 8. 8.>)과 장애인의 보편적 교육 기회를 고려한다면 장애인이 각자의 욕구와 속도, 관심사에 따라 예술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 자기표현을 각자의 방식으로 할 수 있는 권리 중심으로 문화예술교육의 목적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거나 표현기법을 익히는 것을 목적으로 두는 것과 큰 차이가 있다.
이에 따라 현장에서는 여러 방식의 문화예술교육이 이루어지는데 중증장애인의 참여까지 고려하게 되면 직관적이고 비언어적인 요소, 즉흥적인 반응, 놀이적 요소가 중심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즉, 논리적이거나 단계적인 활동 설계, 결과물 도출을 목적으로 두지 않고 참여자가 예술이 갖는 미세한 표현 방식을 경험하고 즐기는 방식으로 활동이 이루어진다. 음악에 따라 몸을 움직여보거나, 종이를 오랜 시간 찢어보거나, 다양한 오브제의 소리를 탐색하거나, 물감의 번짐을 실험해 보는 등 행위 자체에 집중하며 자신에게 흥미로운 요소를 찾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참여자 간 상호성이 발견되면 함께 할 수 있는 놀이를 적극적으로 해보기도 한다. 직관적이고 즉흥적으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 예술교육가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문화예술교육을 접근할 경우 그 방식은 더욱 실험적이고도 다채로운 방향으로 흐른다.
예술가적 관점에 대한 교사의 참조와 응용
그렇다면 결국 예술교육가가 장애인 문화예술교육을 진행하는 사업의 확대만이 필요한 것일까. 앞서 언급했듯이 제도마저 불안정한 상황에서 이러한 사업 기획 및 운영, 예술교육가의 역할 확대만을 기대하는 것은 오히려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 오히려 다양한 탐색, 놀이, 경험의 과정을 상상하는 예술가적 관점을 교사가 참조하고 응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것은 교사가 수채화 그리는 기법을 익히거나 연극 만들기의 방법론을 배워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예술은 장르적 방법론, 전문화된 표현기법만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자신의 욕구와 관심에 따라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 자체가 예술의 일부이자 전부가 될 수 있다. 그 가능성의 영역을 예술이라고 더 폭넓게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교사는 예술가적으로 상상하거나 움직여보는 것, 무언가를 탐색해 보는 것, 낯선 것을 실험해 보는 것 자체를 참조하며 장애인 문화예술교육을 여러 현장에서 조금씩 시도해 볼 수 있다.
나는 이러한 가능성을 특수학교 활동 중 한 교사의 참여 안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하루는 학생들이 그린 그림을 교실 뒤편에 빨래집게로 실에 매달아 설치했다. 여러 학생 중 한 학생이 휠체어에 앉아 말없이 주변을 보거나 손끝으로 무언가를 만지고 있었다. 그 학생은 무언가를 그려서 그림을 줄에 매다는 활동을 스스로 하기 어려웠는데 매달린 그림을 가만히 보다가 그림이 펄럭일 때 미세하게 웃거나 소리를 내곤 했다. 이러한 반응을 옆에서 보고 있던 교사는 면봉을 빨래집게 위쪽으로 꽂아 설치했다. 그리고 그 학생을 데려가 손끝으로 면봉 끝을 만져 움직여볼 수 있게 하였다. 교사가 면봉을 다른 방향으로 꽂은 덕분에 면봉은 학생의 미세한 터치에도 더 쉽게 좌우로 움직이거나 흔들렸다. 조금 전까지 면봉을 집었다 놓았다 정도의 활동을 했던 그 학생은 면봉이 움직이는 현상을 보며 더 활짝 웃었다.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 더 큰 관심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러한 순간 교사에게 필요했던 것은 예술적 역량이나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정보가 아니었다. 그 학생이 어떤 부분에서 미세하게 감각하는지, 그러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지, 그 욕구나 감각을 어떻게 극대화해서 함께 해볼 것인지를 모색하는 것이 중요했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시도로 보일 수 있는 활동도 학생 입장에서 중요해 보인다면 적극적으로 제안해 보는 것, 그것은 작은 감각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
위의 사례를 통해 예술가적 관점은 특별한 능력이라기보다는 사람에 대한 깊은 관심과 태도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교육 주체 간 협력 구조
그렇다면 교사도 예술가적 관점을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지에 대한 현실적 논의가 필요하다. 그 방안 중에는 예술교육가가 직접 문화예술교육을 공교육 현장에서 하는 기회를 일단 늘리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이를 통해 교사와 예술교육가의 만남이 더욱 일상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자주 만나고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관점과 활동 방식을 공유해야 협력의 필요성이나 차이에 대해 협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예술교육 분야에서 특수교육 맥락의 어떤 요소를 더욱 참조할 필요도 있고 반대인 경우도 있다. 정책적으로 문화예술 분야와 교육 분야의 협력이 이루어지기 어렵다면 현장에서라도 교육 주체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사례나 움직임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가 무엇인지 논의도 필요하다. 당장 특수학교에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운영 횟수를 얼마나 늘릴지 방법을 찾기보다 특히 지역 내에서 다양한 교육 주체가 어떻게 상호적 관계를 마련할 수 있을지, 어떻게 협력의 방식을 기획할지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사업이나 프로그램이 갑자기 중단되어도 개별 교육 주체가 자신의 자리에서 조금씩이라도 문화예술교육을 시도할 수 있다. 장애인의 표현 행위를 어떻게 바라볼지, 어떤 개입이나 제안을 바탕으로 함께 예술적 경험을 할지를 고민하는 기회가 지역 내에서 공식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그동안 주로 제도적으로 프로그램 추진에 집중해 왔다면 이제는 일상적 예술 경험 지속을 위한 권리 중심의 환경 마련이 필요하다. 결국 그것을 고민하고 실천할 교육 주체의 노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들의 교류와 다양한 협력 기회 확보를 위한 방안을 논의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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