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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보면 읽히겠지

[쓰다 보면 읽히겠지] 07. 문화기획자를 석달만에 양성할 순 없으니

by 문화예술기획 최선영 2025. 2. 7.
<쓰다 보면 읽히겠지> 
 
나는 혼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문화, 예술 관련 공공 프로젝트나 사업 기획을 하기도 한다. 창작, 기획, 문화예술교육 등을 주제로 강의나 컨설팅을 하기도 하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사람과 마주 앉아 회의도 많이 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이나 강아지들과의 산책 길에 여러 생각을 한다. 그것은 구체적인 경험과 상상과 심정을 가로지른다. 나는 그 흐름을 글로 옮겨 여러 사람과 나누고 싶다. 문화예술 분야의 질문이 특정 사업이나 제도, 이슈에 대한 한정된 논의로만 머물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을 경험하는 개인의 삶은 여러 차원으로 연결, 교차되기 때문이다. 웹진이나 자료집 원고, 사업 보고서에는 담기 애매하지만 분명하게 떠오르는 현재의 질문을 계속 펼치고 싶다.

 
 
 
 
 

쓰다 보면 읽히겠지 07.

"문화기획자를 석달만에 양성할 순 없으니"

 
 

내가 공공기관의 문화기획자 양성과정에 강연자나 멘토로 참여하기 시작한 건 2018년부터다. 내 흐릿한 기억에 의하면 유독 그 시기에 문화기획자 양성과정이 여러 기관에서 운영되기 시작했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기획자라는 용어가 역할상 사용되곤 했지만 아예 '문화기획자'라는 확정적, 독립적 용어가 일반화되어 있지는 않았기에 왜 정책적으로 이러한 양성과정이 확대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몇몇 정책 자료를 찾아봤는데 청년이나 지역의 활동 주체를 발굴, 양성함으로써 다양한 지역에서 문화 인력이나 매개자를 늘리고 관련 활동 사례를 확대해나가려는 공통적인 목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기획자로 활동을 이어가던 시기에 이러한 양성과정이 확대되었기에 나는 반가운 마음이 컸다. 그래서 강의나 멘토링 관련 제안이 오면 거의 다 참여했다. 총괄 멘토(사실상 총괄 기획)를 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기대감을 가지고 참여했다. 그런데 최근까지 이러한 양성과정을 참여하며 느낀 것은 '양성된 상태'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나 역시 처음에 양성과정에 참여할 때 '짧은 기간이어도 여러 관점과 노하우를 공유하면 무언가 성과가 나올거야'라는 포부가 있었다. 그런데 한 두 해 양성과정을 실제 진행하면서 이러한 생각이 현실적인지 질문이 생겼다. 나 역시 아카데믹한 예술 교육을 대학에서 받은 후 10년 가까이 현장 활동을 한 후에 기획자의 역할이나 태도를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는데 보통 2-3개월 진행되는 양성과정에서 과연 어떤 목표 혹은 목적을 설정할 수 있을지 고민이 커졌다. 특히 문화기획자를 새로운 직업군으로 전제하는 사람들이 양성과정에 다수 참여하게 될 경우, 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다른 목적도 상상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의미는 있을지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양성과정을 주관하는 기관에서 참여자의 빠른 성장이나 변화, 프로젝트 실행 성과에만 집중할 경우 '기획 영역에 대한 넓은 질문이 먼저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여러 고민으로 인해 양성과정을 안 하는 것만이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기회든 예상할 수 없는 의미와 경험, 그리고 관계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도 기획 관련 강의나 멘토링 제안이 있을 때 감사한 마음으로 대부분 참여를 하고 있는데 일단 참여자들에게 '양성된 상태'에 대한 여러 해석에 대해 얼마나 생각을 해봤는지 물어본다. 이를테면 이렇게 질문한다. 
"당신은 문화기획자로 사실상 돈도 벌면서 살고자 하나요? 혹은 삶에서 문화적 기획을 하는 경험을 갖고자 하나요?"
나는 전자의 경우 추후 개인사업자를 낼 것인지, 단체나 기업을 운영할 것인지 등 현실적 차원의 이야기까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후자의 경우는 공식화된 사업이나 프로젝트를 하지 않아도 스스로 상관이 없는 삶의 지향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분법적으로 방향성을 정리하는 것은 어렵지만 두 가지 경우는 분명 다른 목적을 갖기 때문에 '기획'에 대한 구체적 고민을 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질문은 선행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것도 좋지만 사실 저런 것도 하고 싶은 나이브한 태도로 현재와 미래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히 '삶에서 문화적 기획을 하는 경험을 갖는 것'이 적극 고려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공공사업이라면 더욱. 왜냐하면 첫째, 문화기획자로 자립하거나 독립된 활동을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다수에게 가능하다고 보기 어렵고, 둘째, 정책 내에서 시민에게 문화적 기획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문화기획자라는 직업을 갖지 않더라도 일상 안에서 작거나 큰 일들을 문화적으로 상상하고 기획하는 경험은 오히려 가능하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문화기획자 '양성과정'은 다른 이름이 더 적절해 보인다. 문화(적)기획 실험과정, 실천과정, 혹은 실천모임이라고 한다면 조금 더 의미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단지 여러 정책 사업이 '양성'이라는 표현을 공통적, 일반적으로 선택하곤 하는데 그 방향성이나 상태에 대해서는 현실적 질문이 필요하다. 또한 석 달만에 기획자를 양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모두가 공감하는 사실이니까.



그리고 다양한 기획자의 활동 사례를 늘리는 것이 사회적으로도 제도적으로도 의미가 있다면 그것을 목적으로 둔 다른 '방식'의 시도도 필요하지 않을까. 꼭 10-20명의 참여자를 대상으로 10회차 내외 프로그램만이 필요한 것은 아닐테니까. 그 방식은 운영상의 적절성, 안정성을 중심에 둔 선택으로 보이는데 참여자들의 열린 시야를 마련하기 위해 다른 방식도 모색될 필요가 있다.
내가 기획에 대한 구체적 관심을 갖게 된 과정에는 누군가의 강의를 듣거나 기획서를 쓰거나 단기 프로젝트를 해보는 것 이외의 경험이 더욱 많았다. 궁금한 것 주변을 서성거리고 누군가를 찾아가고 현장을 보조하고 어떤 현상을 관찰하고 그러다 생각을 혼자 적기도 했다. 그건 기획서가 되기도 하고 다른 실천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기획자들의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면 그것을 활용해서 그야말로 문화적인 방식을 기획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사람을 만나고 같이 살아가는 게 사실상 문화적인 기획의 전부라고 생각하는데 그 방식이 조금 더 일상적이기도 하고 난해하기도 하고 정서적이기도 했으면 좋겠다. 누군가가 스스로 천천히 자신의 활동 방향을 선택할 수 있도록. 역시 좀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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