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보면 읽히겠지> 나는 혼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문화, 예술 관련 공공 프로젝트나 사업 기획을 하기도 한다. 창작, 기획, 문화예술교육 등을 주제로 강의나 컨설팅을 하기도 하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사람과 마주 앉아 회의도 많이 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이나 강아지들과의 산책 길에 여러 생각을 한다. 그것은 구체적인 경험과 상상과 심정을 가로지른다. 나는 그 흐름을 글로 옮겨 여러 사람과 나누고 싶다. 문화예술 분야의 질문이 특정 사업이나 제도, 이슈에 대한 한정된 논의로만 머물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을 경험하는 개인의 삶은 여러 차원으로 연결, 교차되기 때문이다. 웹진이나 자료집 원고, 사업 보고서에는 담기 애매하지만 분명하게 떠오르는 현재의 질문을 계속 펼치고 싶다. |
쓰다 보면 읽히겠지 08.
"유아 문화예술교육, 복잡해지는 이유는 뭘까"
작년 연말에 인천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유아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매개자 역량강화 워크숍'을 진행했다. 3시간 정도 진행된 워크숍의 제목은 "나는 어떻게 놀았더라?"였다. 유아와 문화예술교육으로 만나는 어른들이, 유아에게 필요하다고 정리된 활동, 그것의 학술적 근거를 학습하는 대신 자신이 어린 시절에 어떻게 놀았는지 떠올려보는 시간을 가졌다. 좁은 주차장에서 주변을 살피며 조심조심 놀던 사람, 드넓은 자연에서 온몸을 구르던 사람이 시도할 수 있는 문화예술교육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워크숍에서는 각자에게 자연스러운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누군가와 함께 해보는 문화예술교육을 상상해보고자 했다.
워크숍에는 20명 정도의 예술교육가가 참여했다. 나와 다른 예술가들이 만든 여러 놀잇감을 공간 곳곳에 배치해 두고 다음과 같이 워크숍을 안내했다.
오늘의 흐름
1. 한시간 정도 놀자. 놀이 방법은 마음대로!
2. 놀이 기반 문화예술교육을 염두에 두기보다 일단 놀자
3. 놀면서 다른 사람이 어떻게 노는지도 관찰해 보자
4. 배고프면 간식을 먹자
5. 누워도, 많이 쉬어도 괜찮다
6. 그 뒤에 모여서 짧은 강의를 듣고 이야기를 나눈다. 강의는 사실상 토크 같을 수 있다
여기에서 특히 3번과 5번이 중요하다. 모두가 당장 적극적으로 놀고 싶지는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특히 그러하다. 당장 공도 굴리고 떠들고 춤도 추며 심지어 옆사람과 친해지라고 하면 너무 부담스럽다. 어떤 경우에는 강압적인 느낌마저 든다. 난 일단 천장을 바라보며 여기 소리가 얼마나 울리는지, 내가 좀 익숙해질 만한 분위기인지, 쉬고 싶을 때 숨을 곳이 어디인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워크숍에 참여한 예술교육가들에게 천천히 누군가를 관찰하며 하고 싶은 만큼 놀아보자고, 혹은 참여해 보자고 했다. 워크숍의 보조강사였던 한 예술가는 공간 가운데 누워 있기도 했다. 5번을 공식적으로 실천하는 존재로서 그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누워있는 그 예술가 주변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눕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저만치 떨어져 앉아 그것을 관찰하기도 했다. 우린 그렇게 한 시간 반의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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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모여 앉았다. 각자가 한 행위나 놀았던 방식을 미세하게 쪼개어 생각해 보기로 했다. 예를 들어, ‘구슬놀이’ 같은 이름이 붙은 놀이를 떠올리지 말고 '구슬을 봤다, 색깔이 궁금했다, 투명한 구슬을 골랐다, 손가락으로 집었다, 생각보다 무거웠다, 바닥에 굴려봤다, 다시 집어서 나무 놀잇감 구멍에 넣었다, 구슬이 굴러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와 같이 자세하고 촘촘하게. 워크숍 장소가 고요해지도록 모두가 집중해서 각자의 행위를 떠올렸다. 그것을 하나씩 종이에 적어보기도 했다.
이런 행위들에는 복잡하거나 특별한 의미, 목적이 있었을까. 각자가 그것을 염두에 두거나 이해하거나 습득하며 그 행위를 했던 걸까. 혹은 그냥 구슬이 눈에 띄어서, 신기해서, 잘 굴러가서, 소리가 좋아서 이리저리 가지고 놀아본 걸까. 그렇다면 유아 입장에서는 어떨까. 누군가 어떤 행위를 하는 것에 있어서 많은 의미나 의도가 내포되어 있을까. 그래야 할까.
그리고 예술교육가들은 각자 한 시간 반의 시간을 어떤 속도와 방식으로 보냈을까. 누군가는 30분 이상 한 가지 놀잇감만 만지작거렸고 누군가는 몸을 들썩거리며 여러 놀이를 빠르게 체험했고 누군가는 다른 사람들의 놀이를 구경하며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누군가는 혼자서 천천히, 누군가는 동료와 짝을 지어 왁자지껄하게 놀았다. 다 다르게 놀았고 그것이 자연스러웠는데 중요한 것은 그 방식이 특별히 복잡하거나 다층적이진 않았다는 것이다. 어른도 하나의 재료나 놀이를 탐색하는데 긴 시간이 필요한데 유아라면 특별히 다를까. 일정한 시간 안에 많은 활동을 빽빽하고 다채롭게 배치하는 것이 문화예술교육 안에서 주로 시도되고 있는데 그것은 인간에게 필요하거나 자연스러운 일일까.
"나는 어떻게 놀았더라?"라는 워크숍 질문을 다시 떠올리며 예술교육가는 결국 자신과 주변의 노는 방식에 대해 궁금해하게 되었다. 그 질문과 답이 구체적인 말들로 포착된다면 그것이 각자가 할 수 있는 유아 문화예술교육의 기획(서) 언어가 되지 않을까. 창의력, 주체성, 오감체험, 협동심 같은 말들 대신 던진다, 굴린다, 흔든다, 튕긴다, 엮는다 같은 나와 누군가의 행위를 들여다보며. 우리가 하는 행위와 그것의 이유가 복잡한 것이 아닌데 왜 기획(서)에는 여러 의미가 함축된 단어들이 등장하는지 궁금해진다. 혹시 그 이유가 전문성을 보여주기 위함이라면 각자의 경험과 기억 안에서 포착되는 언어가 가장 전문적이지 않을까. 문화예술교육의 대상이 정책 안에서 세분화될수록 특별한 언어나 전문성이 필요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문화예술교육이 인간을 향하는 활동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우리의 질문은 우리가 보고 만지고 경험하고 느낀 것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 [워크숍] 유아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매개자 역량강화 워크숍 <나는 어떻게 놀았더라?> 세부 내용
[워크숍] 유아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매개자 역량강화 워크숍 <나는 어떻게 놀았더라?>
2024 유아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 매개자 역량강화 워크숍 놀이 감각을 잃어버린 예술교육가를 위한 워크숍입니다. 예술가가 만든 놀잇감으로 일단 놀아보고, 나는 어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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