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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보면 읽히겠지

[쓰다 보면 읽히겠지] 10. 카페가 대안공간보다 재미있을 때

by 문화예술기획 최선영 2025. 3. 6.
<쓰다 보면 읽히겠지> 
 
나는 혼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문화, 예술 관련 공공 프로젝트나 사업 기획을 하기도 한다. 창작, 기획, 문화예술교육 등을 주제로 강의나 컨설팅을 하기도 하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사람과 마주 앉아 회의도 많이 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이나 강아지들과의 산책 길에 여러 생각을 한다. 그것은 구체적인 경험과 상상과 심정을 가로지른다. 나는 그 흐름을 글로 옮겨 여러 사람과 나누고 싶다. 문화예술 분야의 질문이 특정 사업이나 제도, 이슈에 대한 한정된 논의로만 머물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을 경험하는 개인의 삶은 여러 차원으로 연결, 교차되기 때문이다. 웹진이나 자료집 원고, 사업 보고서에는 담기 애매하지만 분명하게 떠오르는 현재의 질문을 계속 펼치고 싶다.

 
 
 
 

쓰다 보면 읽히겠지 10.

"카페가 대안공간보다 재미있을 때"

 
 
1.  
그럴 때가 있다. 독특한 감각이 돋보이는 카페나 식당, 가게 등에서 예술적인 순간을 발견할 때. 전시장이나 공연장의 예술이 더 고루하거나 올드하게 느껴질 때. 그 경험이 생각보다 많아지면 더 자주 '조금 다른' 상업 공간을 찾게 된다. 솔직히 나는 요즘 그러하다. 카페가 전문 문화공간 혹은 대안공간보다 재미있을 때. 그럴 때가 많다.  
 
2. 
몇 년 전부터 색다르거나 편안한 모임 공간이 도시 곳곳에 생겼다. 사람들을 그곳을 대관해서 파티를 하기도 하고 소모임을 열기도 하고 영상 촬영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그곳을 회의나 워크숍 장소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얼마나 개성적이고 쾌적한 공간을 섭외할지가 중요해지기도 했다. 나도 종종 잡히는 회의나 워크숍 공간이 '이번에는 어떤 곳일까' 궁금해진다. 서울역, 시청, 인사동 부근에 새로 생긴 모임 공간을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도 있다. 큰 행사 장소도 다양해지고 있는데 도심을 벗어난 곳에 마련된 컨퍼런스 홀이나 숙박시설에 대한 정보도 관계자들이 빠르게 조사해 섭외하곤 한다.
 
3. 
공간은 어떤 행위를 위해 잠시 빌리는 물리적 장소로만 기능하지 않는다. 공간이 가진 스토리, 분위기, 역사, 지역성 등이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나 활동에 분명 영향을 미친다. 그런 생각은 멀끔한 회의실을 대관했을 때보다 친구의 월세 작업실에 놀러갔을 때 더 자주 한다. 친구의 미완성 작업이 너저분하게 쌓인 테이블, 자잘한 화분 사이를 무심하게 지나가는 고양이, 좁은 싱크대 구석에서 친구가 내려주는 커피 한 잔, 친구랑 비슷한 느낌의 음악과 조명... 주로 그런 곳에서 다음 작업, 다음 프로젝트, 혹은 앞으로의 걱정을 나누었는데 요새는 그런 경험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다수가 좋아할 만한, 회의하기에 효율적인 공간에서 무언가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정해진 시스템에 따라 공간 예약을 하고 주소를 단톡방에 올리고 와이파이 비번도 공유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람에 대해, 삶과 연결된 예술에 대해, 지역 활동에 있어서의 공간의 역할에 대해 주제토론 같은 대화를 나눈다. 친구 작업실과 달리 냉난방비 걱정 없이.
 
4. 
공간에 대한 이슈는 무엇보다 유지비, 임대료와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래서 멋진 모임 공간에서 회의를 할 때면 속으로 '여긴 월세를 얼마나 낼까?', '건물주가 공간 대표일까?' 그런 생각을 한다. 누군가의 작업실이나 예술단체의 공간에 갔을 때에도 가장 먼저 궁금한 것은 운영 비용이다. 작은 공간을 누군가에게 빌려 너무 많이 바꾸지 않으며 자신의 색깔을 담아내려면, 그러면서 몇년 동안 유지하려면 어떤 선택 혹은 노력이 필요할까. 공간 유지에 어려움을 겪는 누군가를 만나며, 동시에 문화적 요소를 추가한 공간 대관 사업을 자주 접하며 우리는 어떤 공간 안에서 무엇을 상상하고 이야기하고 있는지 생각한다. 더 많아진 모임 공간들은 주로 어떤 문화나 예술을 떠올리게 만드는지에 대해서도. 누군가의 스토리가 축적되어 있다는 공간적 '의미'를 뒤로 하고 더 쾌적하고 편리한 공간의 '효율성'을 기준으로 다음 만남의 장소를 예약하며. 
 
5. 
그럼에도, 카페가 대안공간이나 누군가의 활동 공간보다 나이스하고도 세련되어 '좋다'고 느끼곤 한다. 의미 중심으로 어떤 공간을 더 추구하다가도, 넓은 창과 깔끔한 테이블이 놓인 카페에도 요즘의 미적 요소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공간의 의미를 잠시 내려두고 그것을 그저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그 정도 공간을 운영할 수 있는 현실적 조건이 점점 높아질 때, 누군가의 활동 공간은 더욱 좁은 곳으로, 변두리로 밀려날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상황에서 문화예술 지원제도는 어떻게 변해야 할지 역시 넓은 카페나 시간당 몇만 원짜리 회의실에 앉아 회의를 하며.
 

가끔 찾아가는 넓은 카페



6. 
그래서 요즘은 무엇을 이야기할지보다 어디에서, 어떤 상황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를 생각한다. 의미 중심의 관점이 현실적 방안을 찾기 어렵다는 것을 재차 확인하면서 빠르게 변하는 사회 안에서 '지금'의 선택과 생각을 들여다본다. 좀 솔직히 요즘은 나도 뭐가 더 끌리는지 생각도 해본다. 공간에 대한 이슈는 그중 일부다. 내가 소화하지 못하는 속도로 주변이 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사이에서 오래전부터 지켜온 의미를 머릿속 어딘가에 고정해 두고 흔들리는 감각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요즘은 많은 것이 확실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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