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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보면 읽히겠지

[쓰다 보면 읽히겠지] 12. 지원사업 안에서 지원사업 밖을 향하는 멘토링

by 문화예술기획 최선영 2025. 4. 2.
<쓰다 보면 읽히겠지> 
 
나는 혼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문화, 예술 관련 공공 프로젝트나 사업 기획을 하기도 한다. 창작, 기획, 문화예술교육 등을 주제로 강의나 컨설팅을 하기도 하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사람과 마주 앉아 회의도 많이 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이나 강아지들과의 산책 길에 여러 생각을 한다. 그것은 구체적인 경험과 상상과 심정을 가로지른다. 나는 그 흐름을 글로 옮겨 여러 사람과 나누고 싶다. 문화예술 분야의 질문이 특정 사업이나 제도, 이슈에 대한 한정된 논의로만 머물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을 경험하는 개인의 삶은 여러 차원으로 연결, 교차되기 때문이다. 웹진이나 자료집 원고, 사업 보고서에는 담기 애매하지만 분명하게 떠오르는 현재의 질문을 계속 펼치고 싶다.

 
 
 
 

쓰다 보면 읽히겠지 12.

"지원사업 안에서 지원사업 밖을 향하는 멘토링"

 
 
문화예술 공공기관의 지원사업 안에서 멘토 역할을 하게 된 건 대략 9-10년 전부터다. 나는 개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 외에 멘토링을 하며 여러 지역을 다니는 데에 1년 중 많은 시간을 보낸다. 멘토라는 위치나 역할이 어떤 현장에는 불필요하다, 예술 분야에서는 괜한 권위적 분위기만 조성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한 사업과 현장에 어떤 멘토가 존재하는지가 큰 상징적 역할을 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나 역시 멘토링을 받던 시기도 꽤 있었는데 그 덕분에 어떤 멘토링은 하지 말자, 어떤 멘토링은 해보자 하는 기준이 있다. 그것이 잘 지켜지지 못할 때가 많은데 그 이유는, 생각보다 지원사업의 목적이 너무 뚜렷한 반면 현장의 고민은 너무 방대하거나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결국 모든 사업에서 재차 확인되는데 그때 내가 하는 선택은 지원사업 밖을 향하는 멘토링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다. 요즘은 더욱 그렇게 하고 있다. 경력이 많은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에는 더욱 그렇다. 현장의 예술가나 기획자, 활동가 등은 단지 하나의 지원사업 성과를 내기 위해서만 활동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지원사업에서의 성과나 목표가 분명할 때, 지원사업 구조에서는 그 성과지표만을 기준으로 현장의 활동을 바라보게 된다. 애써 다른 요소나 가능성을 볼 필요가 제도적으로도 행정적으로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멘토라는 '인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원사업의 목적을 향하기 어렵거나 그럴 필요가 없거나 혹은 다른 목적을 더 넓게 그려내는 것이 중요한 현장을 발견하고 구체적으로 지지하기 위해서. 이것은 지원사업의 개별 목적과 성과가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단지 그 범위가 현장의 활동 목적과는 다른 차원의 레이어로 작동하고 있어 여러 관점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저런 주제로 여러 지원사업을 들여다보고 현장의 관계자, 공공기관의 실무자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나에게 매우 큰 공부의 기회다. 어떤 때에는 이런 학습과 성장의 기회를 소수의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들고 현재 멘토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활동 방식을 또 다른 역량 강화의 방식으로 참조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한다.
다시 돌아와서, 지원사업 밖을 향하는 멘토링을 한다는 것은 나에게도 선택이었고 실험이었다. 하지만 나름 분명한 근거를 가지고 한 선택이기도 하다. 매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지원사업의 주제와 형식 관련 질문만 하는 것은, 사실상 지원사업 없이도 고민하고 움직여야 하는 누군가에게 좁은 관점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매우 솔직하게 그 지원사업을 졸업하고 싶다, 건강하게 떠나고 싶다, 다른 활동의 방식도 시도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결국 다른 분야나 방식도 고려하며 삶의 차원에서 멘토링을 하게 된다. 한 개인이 살아가며 앞으로 해볼 수 있는 선택들과 관련해서. 
그러다 보면 매우 개인적인 이야기도 하게 되고 묻게 된다. 개인적인 시간을 얼마나 쓸 수 있는지, 동료나 활동 자원이 충분한지, 이동수단은 주로 무엇을 활용하는지, 요즘 마음 상태는 편안한지, 그와 관련된 삶의 조건들은 어떠한지 대화할 수밖에 없다. 근데 처음부터 멘토라는 사람이 그걸 하나하나 캐묻기 시작하면 정말 불편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일단 내가 사는 얘기를 많이 한다. 남편 얘기, 아이 얘기, 강아지 얘기, 집 얘기, 돈 얘기 그리고 감정에 대한 얘기 등. 내가 이렇게 답답할 때 이렇게도 해봤는데 역시 쉽지 않았다, 그래도 계속하게 되는 이유는 이런 거더라 뭐 그런 식의 멘토링. 처음 보는 사람에게  쓸데없을 정도로 개인사를 오픈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 솔직히 '오늘 좀 너무 사업 얘기를 안 했나' 돌아보기도 하지만 이럴 땐 이런 사례를 찾아보세요, 이럴 때 이런 아이디어를 참고하세요 같은 멘토링을 했을 때보다는 덜 후회한다.
올해도 여러 사업의 멘토로 참여할 예정이다. 나의 이런 멘토링 방식에 공감하는 기관과 주로 협업할 듯하다. 올해는 특이하게 미술대학 졸업 예정자를 대상으로 포트폴리오 제작 멘토링을 요청받았는데 기관과의 회의에서 멘토링 제목을 '어디로 갈지 모르는 포트폴리오'라고 해달라고 했다. 나 역시 미술대학을 졸업했고 열심히 포트폴리오를 정리했었지만 지금은 그때의 포트폴리오 대신 다른 것이 더 중요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삶이 스스로 더욱 자연스럽고도 예술적이라고 생각하기에. 기관 실무자는 웃으며 "알겠습니다!"라고 하셨다. 그러면 된 거다. 나는 즐겁게 멘토링을 시작할 것이고 사는 얘기를 슬슬 꺼내다가 상대방에서 자잘하고 일상적인 것들을 물어볼 것이다. 무엇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 사람의 눈빛이 반짝일지, 그 이야기가 포트폴리오 안에 담겨있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지 대화를 이어갈 것이다. 그런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여있기 때문에 나는 멘토링이 설레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다. 역시 많이 배우는 순간들이다.
어디로 갈지 모르는 대화들이 그렇게 올해의 계획을 채우고 있다. 코앞에 바짝 붙어선 지원사업을 마주하면서도 그 주변에서 바글바글거리는 각자의 삶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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