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보면 읽히겠지> 나는 혼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문화, 예술 관련 공공 프로젝트나 사업 기획을 하기도 한다. 창작, 기획, 문화예술교육 등을 주제로 강의나 컨설팅을 하기도 하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사람과 마주 앉아 회의도 많이 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이나 강아지들과의 산책 길에 여러 생각을 한다. 그것은 구체적인 경험과 상상과 심정을 가로지른다. 나는 그 흐름을 글로 옮겨 여러 사람과 나누고 싶다. 문화예술 분야의 질문이 특정 사업이나 제도, 이슈에 대한 한정된 논의로만 머물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을 경험하는 개인의 삶은 여러 차원으로 연결, 교차되기 때문이다. 웹진이나 자료집 원고, 사업 보고서에는 담기 애매하지만 분명하게 떠오르는 현재의 질문을 계속 펼치고 싶다. |
쓰다 보면 읽히겠지 11.
"문화예술교육 같은 게 많아졌는데"
평생 일만 하셨던 아빠가 이제 동네에서 서예를 배워보시겠다고 한다. 아무래도 도시 중심의 이야기겠지만, 요즘은 누군가 그런 욕구가 있으면 집 근처에서 배움의 기회를 찾을 수 있다고 하신다. 공공지원을 받으면 거의 무료로 미뤄뒀던 취미활동 혹은 예술활동을 할 수 있다고. 그러고 보니 충남 소도시 우리 동네도 주변에 평생학습관, 커뮤니티센터, 행정복지센터, 전통문화센터 등 공공영역에서 새로 지은 공간에서 여러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취미로, 맛보기로, 체험 정도로라도 문화, 예술 관련 활동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더불어 작은 책방, 공방, 체험교실 등에서 문화, 예술 요소가 가미된 소소한 클래스나 행사나 열리고 있다. SNS와 당근 어플을 보면 소모임이나 공간 모임, 취미 모임 등의 방식으로도 이러한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나도 동네에서 그림 모임, 보드게임 모임 등에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예전과 같이 문화예술교육 관련 사업에 대한 회의를 하며 살고 있다. 자주 예술교육가들을 만나고 주로 지원사업에 대한 걱정과 질문을 접한다. 참여자 모집이 어렵다, 노쇼가 많다,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활동 모델을 찾고 싶다,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등의 의견을 20년 가까이 듣고 있다. 그런데 특히 최근 2-3년 사이, 문화예술교육 '분야'의 논의 주제가 오히려 좁은 범위에서 고도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5년. 사람들의 삶의 방식, 그것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나 환경, 매체, 사회적 가치 등이 너무도 많이 변했음에도. 문화예술교육지원법이 제정되던 2005년과는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음에도. 그런 변화 속에서 예술의 가치와 의미가 문화예술교육이든 무엇이든 그것을 통해 더욱 모색될 필요가 있다는 당위적 관점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 관점 안에 자리 잡은 예술의 개념이나 형태, 모습이 고정될 채로 당위성만 강조된다면 동의하기 어렵다. 예술의 테두리가 계속 흔들릴 수 있다는 전제가 적극적으로 존재할 때, 끝없이 흔들리는 사회와 예술의 어긋남, 그리고 관계를 지금의 언어로 해석하고 싶은 의지도 생기기 때문이다.
문화예술교육은 정책을 중심으로 시작된 개념이다. '국민 누구나' 문화예술을 향유, 교육받을 수 있다는 기본원칙이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잘 실현되어서인지 혹은 다른 사회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인지 '예전에 비해' 많은 사람들이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에 특별히 참여하지 않아도 문화적 결핍을 느끼지 않는다. 문화, 예술에 대한 사람들의 해석 범위도 넓어져서 독특한 문화공간에 놀러가거나 관광 프로그램을 경험하거나 감성 카페를 찾아다니는 것으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참여를 대체할 무언가를 발견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참여자 모집이 어려워진 측면이 있다.
물론 창작자, 기획자, 예술교육가인 입장에서 나 역시 "문화예술교육은 그래도 좀 다른 요소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나에게 중요한 어떤 요소나 가치가 누군가에게는 이제 특별하지 않은 현재 상황, 사회적 양상에 대해서는 우선적으로 더 깊게 살펴보고 싶다. 그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여기 '이 좋은' 문화예술교육에 무엇을 더 넣을지, 이 좋은 것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홍보할지, 이 좋은 것을 현재 모습 그대로 어떻게 많이 퍼트릴지만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주변의 상황에 대해 반응하며 질문의 방향을 고민하는 시간이 마련되어야 '이 좋은 것'도 정말 좋은 것이 될 수 있을 텐데. 혹은 '다른 좋은 것'이 등장할 필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그래야 할지도.
나 역시 결국 '문화예술교육'으로 불리는 일들을 많이 하고 있지만, 문화예술교육의 가치를 담아내는 다른 이름의 무언가로도 예술교육가들이 더욱 뻗어나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주제나 대상을 중심으로 예술교육 활동을 한다는 자기소개를 스스로 해체하고, 어떤 목적과 가치를 향해 문화예술교육 같기도 하지만 이름은 상관없은 여러 활동을 모색해야 할 수도. 각자가 해왔던 문화예술교육 안에서의 경험과 질문이 새로운 활동 안에서 어떻게 재위치 될지도 궁금해하며.
매우 구체적인 예시로 점프해서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나는 나중에 문화예술교육'도' 했던 경험을 일부 활용하며 덜 바쁜 분식집을 하고 싶기도 하다. 그것이 가능하다고도 생각하고 한편으로는 정말 필요하다고도 생각한다. 그것이 여러 공공기관의 지원사업 동향을 분석하고 문화예술교육의 최신 사례를 공부하며 앞날의 활동을 '결국' 걱정하는 것보다 생산적이지 않을까. 그리고 나에게 재미가 더 남기도 하고.
요즘 문화예술교육 같은 게 많아져서 걱정도 많아진 사람들을 자주 만나며 긴 고백을 이렇게 남겨본다. 내가 나중에 분식집을 하든 무엇을 하든 그것을 꿈꾸는 시간 동안 나의 걱정 혹은 불만은 조금이라도 줄어들 것이라는 것도 함께. 현실에 대한 대처도 더욱 낯설고 덜 뻔하게 해보고 싶으니까. 창의성, 창의성... 그렇게 강조하는 문화예술교육 속 의미를 실현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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