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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글] 협력의 시작, 평평한 시간 위에서 하나 둘 모이자(지역 문화예술계에서의 협력체계에 대해)

by 문화예술기획 최선영 2025. 11. 16.

평택시문화재단
평택 생활문화 아카이브 매거진 [평·생 레시피] 3호
칼럼
 



*지역 문화예술계에서의 협력체계 관련

협력의 시작, 평평한 시간 위에서 하나 둘 모이자

 
 

최선영/ 문화예술기획자

 
 
 
“땅 파다가 만났어요”
홍성읍내로 이사 온 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무렵, 당시 초등생이었던 아들이 새로 사귄 친구를 데리고 집에 왔다. 학원도 교회도 안 가는 아들이 말이 잘 통하는 친구를 어떻게 금방 만났을까 궁금했는데 학교 운동장 구석에서 심심한 시간을 보내던 두 녀석이 땅을 파다가 그렇게 만났다고 했다. 그네를 타다가, 준비물을 사다가, 운동을 하다가도 아니고 땅을 파다가라니. 목표나 의도 대신 심심할 수 있는 시간이 분명히 있는 두 인간은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적당히 가깝게 지낸다. 평평한 땅에서 평범하게 만나며.
 
“자연스럽게 네트워킹 하세요”
문화, 예술 분야의 크고 작은 행사나 모임 자리에 가면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언뜻 들으면 땅을 파다가 만나는 것과 뭐가 다를까 싶지만 그런 자리에서는 결코 땅도 파게 만드는 심심한 에너지가 생기지 않는다. 그 자리를 개최한 기관이나 단체의 최근 사업, 앞으로의 활동 방향, 리더의 취향과 욕망 등이 지배적으로 감지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협력은 여러 정책과 자리에서 강조되지만 그것을 어떤 상황과 환경 안에서 시작할 수 있을지 관계자들의 고민도 커진다. 그러다 보면 협력의 물꼬를 트는 방식을 아이디어적으로 기획하게 된다. 주로 그런 아이디어 회의에 불려 가는 나는, 다양한 사람이 땅도 파고 싶게 되는 상황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한다. 문화, 예술 분야의 여러 정책에서 자연스러운 만남은 미션도 되고 목적도 되지만 결국 숙제로 남게 된다는 것을 재차 확인하며. 그럼에도 그 만남의 지속 자체가 문화이자 예술이지 않을까 또 너무 큰 생각을 제일 많이 하면서 말이다.
 
“OO 관련 프로그램을 3차시로 진행해 주실 수 있나요?”
공공기관의 사업에 결합해서 활동하는 나에게는 종종 이러한 문의가 온다. 함께 무엇을 어떻게 해볼지 대화하는 대신 정해진 일을 정해진 방식으로 할 수 있을지 확인하는 경우다. 프로그램을 떠올린 배경을 두루두루 듣고 나누는 시간은 생략되고 이미 구획된 칸의 일부를 채워줄 수 있냐는 질문을 받는 것이다. 그러면 일단 만나서 차도 한잔 하며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 묻고 싶은 마음도 잘 생기지 않는다. 마주 앉아도 아마 서류를 보며 1차시부터 3차시까지 무엇이 적절할지 선택의 시간에 집중할 것만 같다.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에겐 어떤 시간이 필요할까’와 같은 질문부터 나눠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모두가 우다다다 달리는 운동장에서 우리는 두런두런 땅이나 파듯이 일단 만나 보자고, 그것이 회의라는 형식으로 시작되더라도 각자의 관심사를 꺼내는 느린 시간도 필요하지 않냐고 물어야 할 것 같다. 할 일이 아니라 목적과 질문을 공유하는 자리가 있어야 진짜 할 일도 떠오를 테니까. 이유 없이 땅을 파는 시간 위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 네가 좋아하는 것을 나누다가 같이 하면 좋을 것도 문득 발견하듯이.
 
“이건 사실 욕망의 사업이에요”
만남의 과정과 경험이 더욱 솔직해지고 그럴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되면 누군가 이렇게 말하는 경우도 있다. 공공기관의 개별 사업에 대해 깊게 논의할 수 있게 되면, 그 깊어짐까지 같이 가게 된 사람들의 관계 안에서 정책의 ‘숨은 의도’를 조금씩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사업이 숨은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확인하게 된다. 그 의도를 채워줘야 한다는 미션을 전달받는 것이 아니라, 그 의도에 서로 공감할 수 있는지 논의가 이루어지면 흥미진진한 협력도 이루어진다. 한쪽이 한쪽을 대접하듯 식사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작전 수행을 위해 에너지를 충전하듯 밥을 나눠 먹는다. 맛있는 메뉴를 고르고 반찬을 서로의 앞으로 밀어주며 이번 사업을 같이 좀 재미있게 해 보자고 의기투합한다. 솔직함은 땅을 파며 일상을 나누는 순간에도, 정책의 방향성에 대해 질문하는 순간에도 큰 힘을 발휘한다. 그럴 수 있는 자리는 그러고자 하는 누군가의 의지로 조금씩 생겨난다.
 
“그래도 사람은 많이 와야 해요”
또 다른 솔직함도 등장한다. 사회적 의미나 가치를 강조하던 어떤 사업에서 그것을 성과화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면, 관계된 사람 중 누군가는 관객 수나 참여자 수가 성과의 전부인 사업의 구조를 강조한다. 잠시 잊고 있던 정량적 성과를 다시 논의의 중심으로 가져와 촘촘했던 시도와 과정 대신 사실 이게 가장 강력한 기준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동안 함께 읽어낸 맥락도 유지하기 위한 방안을 생각해 보자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자자, 잊지 마세요. 사람이 많이 와야 해요”라고 하나의 기준을 못 박듯이 공표하는 경우도 있다. 큭큭 거리며 땅을 파던 사람들 사이에 누군가 나타나 굵은 깃발을 땅에 꽂는 것처럼. "누가 이 깃발만큼 높이 흙을 쌓을지 내기를 시작하겠다"는 메시지가 현장을 지배한다. 사람들은 땅을 파다 자연스럽게 나온 흙은 애써 모으기 시작하고 높이를 재기 시작한다. 점점 땅을 파는 재미보다 흙을 잘 쌓는 방법에 집중한다. 가끔 그런 상황도 협력이라는 이름 안에서 벌어진다. 같이 여러 성과의 단면을 질문할 줄 알았는데 확고한 성과를 만들어줘야 하는 역할로 내가 함께 하고 있었던 거구나 뒤늦게 깨닫는다.
 
“안 되는 것도 있잖아요”
그래서 한계나 어려움을 적극 공유하고 공감하는 협력이 좋다. 문화, 예술 분야의 많은 정책들은 짧은 시간에 다양하고 새로운 성과를 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그중 안 되는 것도 있다는 것을 냉정하게 인정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적은 예산으로 몇 개월 만에 지역 주체도 발굴하고 지역성도 만들고 콘텐츠도 생산하고 참여자의 자발성도 끌어내고 심지어 지역문화 활성화까지 이루어내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하지만 많은 사업계획서의 기대효과에는 이 모든 게 담겨있다. 그런 마법 같은 일을 현실 속에서 기대하다 보면 결국 문화나 예술에 대한 막연한 관점만 커진다. 예술의 힘으로 지역에서, 일상에서, 삶에서 신비로운 일이 벌어질 것처럼. 대략 12월이 되기 전에.
 
“그럼에도 무엇을 해볼 수 있을까요?”
안 되는 것들을 분류하다 보면 한편으로 거의 다 안 될 일이라는 회의감도 밀려온다. 그게 가장 무섭다. 여러 지역을 오가며 예술가의 불안정한 삶, 급변하는 사회, 문화나 예술에 대한 인식 부족, 정치적 변화에 휘청이는 문화예술계 등에 대해 세세하게 들을수록 더 이상 무엇을 해볼 수 있을지 나조차도 힘이 빠진다. 어느새 실천보다는 분석과 비판에 익숙해진 스스로를 발견하고 섬뜩함도 느낀다. 하지만 늦은 저녁 ‘그래도 무언가를 다르게 해보고 싶어서 메일을 보낸다’는 사람도 만나고 ‘이번 사업은 작은 거라도 시도해 보려고 하는데 같이 머리를 맞대보자’는 사람도 만나고 ‘사업 이외의 방식으로 재미있는 것을 상상해 보자’는 사람도 만나고 ‘요즘은 어떤 딴짓을 하냐’고 물어봐주는 사람도 만난다. 그 안에는 예술가, 기획자, 활동가, 연구자, 행정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땅에 푹푹 한숨을 뱉으며 나뭇가지를 찔러대던 내 주변으로 나는 이런 나뭇가지도 있다고, 나는 두 손이 튼튼하다고, 나는 큰 삽을 구했다고, 나는 일단 와봤다고 말하며 모여드는 사람들이 있다. 같이 땅을 파는 내내 그 깊이와 모양 대신 하나둘씩 모이는 시간 자체에 집중한다. 그 재미에 낄낄거리며 기이한 기운도 만들어낸다. 그건 협력일까. 꼭 협력을 하려고 모인 건 아닌데 그 어느 때보다 같이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을 모았어요“
한 지원사업 현장에서 유난히 자연스럽게 협력이 이루어지는 팀이 있어 그중 한 명에게 노하우를 물었더니 너무 바쁜 사람은 애써 섭외하지 않았다고 했다. 각자의 활동을 하다가도 평평한 시간 주변으로 모여 앉을 수 있는 사람들. 계획 대신 여유로운 시간 위에서 만나니 서로를 마주할 여유도 동력도 생기는 것 같았다. 생각과 생활에 공백도 있어야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만남의 내용뿐만 아니라 방식과 속도도 중요하다. 나 역시 20년 가까이 이 분야에서 활동하다 보니 2시간짜리 종이접기 프로그램을 기획해도 매우 문화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반대로 AI와 기후위기를 논해도 매우 일방적 추진이 이루어질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만나고 협력하는 방식에 대한 질문이 남는다. 힙하고 다정하고 세련된 사업 제목과 컨셉 뒤로 누가 어떻게 어떤 속도로 만남을 이어가고 있을지. 땅 파다가 만난 사이가 조별 과제 하다 만난 사이보다 오래오래 편안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시간을 낼 수 있는 사람과 솔직하고 느리게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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