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은정 개인전
물렁한 포인트
전시 글


전시 소개
https://9usaram.tistory.com/m/55
(전시)아트스페이스103, <물렁한 포인트>
최근 들어 나에게 자꾸 떠오르는 이미지는 ‘몸’이다. 예전 같지 않은 몸, 매일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몸 아침에 발을 디딜 때의 무게, 예전과 달라진 걸음걸이, 손끝을 다친 누군가의 예민해진
9usaram.tistory.com
적응하는 시간마저 빚어내야 한다면
최선영 / 문화예술기획자
매끈하고도 촉촉한 뒤꿈치가 그리운 날. 매년 한 번씩 그런 날이 온다. 사계절과 함께 정신없이 살다 보면 시리고 서늘한 날에 뒤꿈치부터 꺼슬꺼슬해진다. 차를 마시다가 무심코 오른쪽 뒤꿈치를 왼쪽 발등에 비비는 순간, 천천히 늙어가는 몸의 일부가 한 꺼풀 벗겨져 바닥으로 흩어지는 느낌이 든다. 뜨거운 물에 발을, 그리고 몸을 담그고 이미 생명력을 다한 껍질들이 부풀어 올라 부드럽게 사라지도록 할까, 오늘 저녁엔 그 의식을 치를까. 그런 날도 있다.
그것은 몸을 관리하는 것과는 다르다. 굽어가는 등, 찌릿한 허리, 빨리 낫지 않는 상처, 욱신거리는 손가락, 듬성듬성 비어 가는 정수리를 위해 비타민도 먹고 운동도 하고 샴푸도 바꿔보는, 보통은 그런 관리를 하지만 종종 다른 마음도 품는다. 구은정 작가의 작업은 그런 마음의 실천처럼 보인다. 작가는 바스락거리는 몸의 파편을 그저 바라보며 사라지는 시간을 함께 하기도 하고 연약한 몸을 닮은 또 다른 연약함을 애써 만들기도 한다. 나아질거야, 나아져야 해, 그런 다짐과 희망 대신 다시 매끈해지기 힘든 현재의 몸뚱이, 그 상태에 집중한다. 건강하고 밝았던 과거로 돌아가는 것만이 답은 아닐 거라고, 사실 그러기는 힘들다고, 기운 넘치는 말과 값비싼 성분을 발라 ‘현실 관리’를 하는 대신. 지금 그런 모습이구나, 그 모습 내가 지켜봐 줄게, 그렇게 한 몸이 다른 몸 옆에서 그리고 자신의 몸을 향해서 살아간다. 능숙한 치료사의 손길처럼 야무지진 않지만 느리고 단단한 호흡으로.
그런 와중에 작가는 무언가를 빚는다. 하지만 무엇을 만들지 작정하고 결과물을 만들지는 않는다. 작가는 그런 치밀함만으로 작업을 하진 않는다. 그러기가 어렵다. 감각과 경험이 뒤섞인 삶의 덩어리가 이리저리 구르다 무언가를 자꾸 툭툭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그것은 역시나 작은 덩어리라서 어떤 형태를 갖게 된다. 혹은 그렇게라도 존재해야 해서 잠시 이름 없는 덩어리로 예술 세계에 등장한다. 작가의 세계에도. 예측하지 못했던 일들이 생기는 것처럼 자꾸만 낯선 덩어리가 바닥으로 사방으로 떨어져 나온다. 떼굴떼굴 구르기도 한다. 작가는 그것을 주워 담아 다시 뭉친다. 자신의 몸과 닮은 것 같기도 한 새로운 재료를 얇게, 길게, 무겁게 혹은 차갑게 빚는다. 작가의 능동적인 손놀림으로 그것이 만들어지는 것 같지만 작가의 삶이 작가를 빌어 파편을 만들 뿐이다. 작가는 그 흐름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래서 작품의 외형이나 제목에 정돈된 이야기나 날카로운 주장이 등장하지 않는다. 물렁한 상태만이 감지된다. 계속 변하고 흐르는 불안정한 덩어리에서 떨어져나온 것들이 만들어낸.
작가는 여전히 그 상태에 집중한다. 심지어 전시장에서도 하루하루 변하는 삶과 마음의 상태를 마주하고 오늘의 작업에 반영한다. 그것은 부지런히 전시를 관리하는 것과 다르다. 그저 지금 분명하게 존재하는 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들인다. 그러면 꺼슬꺼슬해진 뒤꿈치가 신경 쓰이는 대신 꺼슬꺼슬함 자체가 궁금해지는 것처럼 생각이 한쪽으로 너무 기울지 않는다. 점점 작아지는 몸, 점점 느려지는 몸, 점점 흔들리는 몸, 점점 차가워지는 몸에 감정을 싣는 대신 그렇게 존재함 자체를 보려고 한다. 어제와 다르게 오늘 ‘있는’ 무언가를 더 가까이에서 잘 볼 수 있도록 존재함의 근처를 맴돈다. 그 자리에서 생겨난 것들이 전시장을 채운다. 물렁하게 허옇게 푸석하게 기우뚱하게. 하지만 넘어지지 않을 정도의 균형과 시선을 잃지 않으며.
그것은 작가가 말하는 ‘적응’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혹은 적응하려고 하는 자신의 존재하기 그 자체일지도.
'2025'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글] 협력의 시작, 평평한 시간 위에서 하나 둘 모이자(지역 문화예술계에서의 협력체계에 대해) (0) | 2025.11.16 |
|---|---|
| [포럼 기획] 예술가에게 무엇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발제자료 공유) (0) | 2025.11.13 |
| [글] 사람을 관찰하다가 예술을 질문하다 (0) | 2025.10.15 |
| [기획] 경기문화예술교육 매개자 연수 [멈칫] <프로그램은 우다다다 달려가지만> (0) | 2025.09.18 |
| [기획] 이음:예술창작 아카데미 <같이 좀 헤매자> (0) | 2025.09.1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