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보면 읽히겠지> 나는 혼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문화, 예술 관련 공공 프로젝트나 사업 기획을 하기도 한다. 창작, 기획, 문화예술교육 등을 주제로 강의나 컨설팅을 하기도 하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사람과 마주 앉아 회의도 많이 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이나 강아지들과의 산책 길에 여러 생각을 한다. 그것은 구체적인 경험과 상상과 심정을 가로지른다. 나는 그 흐름을 글로 옮겨 여러 사람과 나누고 싶다. 문화예술 분야의 질문이 특정 사업이나 제도, 이슈에 대한 한정된 논의로만 머물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을 경험하는 개인의 삶은 여러 차원으로 연결, 교차되기 때문이다. 웹진이나 자료집 원고, 사업 보고서에는 담기 애매하지만 분명하게 떠오르는 현재의 질문을 계속 펼치고 싶다. |
쓰다 보면 읽히겠지 16.
"사례나 운영 모델 이외의 장면"
단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나면 그것은 일반적인 방식들 사이에서 낯선 방법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 혹은 그런 운영 모델로 해석되는 것 같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어떤 활동을 안정적으로 지속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결국 사례나 모델을 '제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여러 활동이 등장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문화예술기획자로 자립한 사례, 문화예술교육 단체의 안정적 운영 모델, 지역문화 커뮤니티의 지속 사례, 비영리단체나 협동조합 모델로서의 자생 방안 등이 주로 이야기된다. 그것은 관계된 사람들의 기대나 바람이 반영된 주제들이다. 그리고 현장은 각자 혹은 다수의 희망에 대한 실험들로 채워지기도 한다.
우리는 그 실험의 성공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더욱 성공을 활동의 주요 목적으로 전제하곤 한다. 그러다 보면 갑자기 질문이 좁아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런 활동을 협동조합 방식으로 유지할 수 있을까?', '이런 작업을 바탕으로 예술 창업을 하려면 어떤 브랜딩이 필요할까?', '이런 프로젝트는 지역문화 활성화 사업의 어떤 모델로 적절할까?' 같은. 관점에 따라 이러한 질문은 오히려 명확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너무 명확한 목적과 테두리가 전제된 상황에서 질문이 지속되면 더욱 활동의 확장성을 상상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건 개인적 견해이기도 한데, 그래서 누군가 사회적기업을 만들어봐라, 지금 사업으로 운영 모델을 설계해서 정리해 보자고 하면 갑자기 다른 상상을 하곤 한다. 그래서 점점 단체가 아닌 개인으로 활동을 하게 된 것이기도 하고 몇 년 동안 구축한 작업 방식을 벗어나려고 애쓰기도 했다. 오래전 작업의 내용이나 방식이 너무 대표적인 사례나 모델이 될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부분이 있다'라고 오히려 자세한 설명을 덧붙인다.
왜냐하면 불확정적인 삶 속에서 개개인의 활동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관계가 끈끈한 사람들이 오래된 믿음으로 무언가를 하면 그건 창작이든 창업이든 연대든 그 자체로 장기적 힘을 갖는다. 이때는 개별 사례나 운영 모델이 공동의 지침이나 방향성처럼 강조될 필요가 없기도 하다. 하지만 갑자기 그 관계가 깨지거나 그럴 수밖에 없는 각자의 삶의 변화가 생기면 상황은 달라진다. 한참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는 잘 마무리해야 하는 숙제가 되고 우수 사례로 평가받던 커뮤니티의 운영 모델은 깨트릴 수 없는 아깝고 거대한 틀이 된다. 나도 갑자기 육아에 전념해야 했을 때, 누군가와의 관계가 힘들어졌을 때 나의 삶을 꺼내어 말하는 것에 먼저 미안함, 미흡함부터 표현해야 했다.
그럼에도 사례나 모델을 만들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중요하고 영향력도 크다는 것을 안다. 그것을 더욱 체감하게 된 것은 분명한 것을 중심으로 소통이 이루어지는 정책 및 지원사업에 관여하게 되면서부터다. 공공 단위에서는 개인의 삶, 정서나 심정, 갑작스러운 관계 변화 등을 언급하며 그것과 연계된 무언가를 상상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정책 단위의 일들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1년 안에 이 사업, 3년 안에는 이렇게, 그리고 분기별로 무엇을! 이런 계획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떤 분야의 흐름을 이끌기도 하고 모호한 것들을 적당한 개념들로 정리해 주는 나름의 역할도 한다.
단지, 이러한 관점이 문화예술 현장에서도 지배적일 때 불쑥 딴짓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활동이 결국 조직화, 운영화 중심의 패러다임으로 흘러갈 때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를' 인간의 입장으로 나도 바라보고 타인도 생각해 본다. 한 단체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이전에 '저 사람 이거 계속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 '저 친구 갑자기 생계를 해결해야 해도 작업을 계속하려면 우리 관계가 어때야 할까?' 같은.
하나의 사례, 하나의 운영 모델 안에 관계된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의 매우 다른 삶의 조건과 흔들리는 일상도 보인다. 누군가는 돈 때문에, 누군가는 의미를 찾아, 누군가는 자아실현을 하려고, 누군가는 숨어보려고, 누군가는 신나서 등 각자의 이유와 방향을 안고 하나의 활동을 한다. 그것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동일한 사례나 모델을 구성하는 일부 요소로 읽히지만 결국 개개인의 동력이나 어려움이 다음 활동이자 사례, 운영 모델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개별 사례들은 단계적, 논리적 흐름만을 갖지 않는다. 사람마다의 상황과 입장에 따라 각자의 시도가 이리저리 튕겨 나가기도 하고 튀어 올라 낯선 장면을 만들기도 한다.
정책의 메세지가 현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국내 상황을 고려할 때, 나는 이러한 현장의 개별성이 더 사방으로 튀어 올라 퍼져나갔으면 좋겠다. 문득, 다양성이 중요한 영역에서마저 모두가 하나의 숙제를 풀고 있다고 느껴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아웃사이더 같은 존재가 더 많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야 하지 않을까. 일반적 관점을 벗어나는 가지들을 빠르게 정리하여 로드맵을 짜는 것 역시 현실 정책의 어쩔 수 없는 역할이기도 한데, 현장에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그 역할을 대신하거나 더 열심히 해내줄 존재가 아닐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튀어나가는 존재, 튀어 오르는 리듬에 규칙과 논리 대신 살아냄의 동력이 있는 존재, 보급형 매뉴얼 대신 개별형 질문을 만드는 존재. 그런 존재가 엄청나게 많아지면 그건 한 분야의 우수 사례가 아니가 다양성이라는 가치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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