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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보면 읽히겠지

[쓰다 보면 읽히겠지] 17. 제목을 짓는 일

by 문화예술기획 최선영 2025. 5. 26.
<쓰다 보면 읽히겠지> 
 
나는 혼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문화, 예술 관련 공공 프로젝트나 사업 기획을 하기도 한다. 창작, 기획, 문화예술교육 등을 주제로 강의나 컨설팅을 하기도 하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사람과 마주 앉아 회의도 많이 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이나 강아지들과의 산책 길에 여러 생각을 한다. 그것은 구체적인 경험과 상상과 심정을 가로지른다. 나는 그 흐름을 글로 옮겨 여러 사람과 나누고 싶다. 문화예술 분야의 질문이 특정 사업이나 제도, 이슈에 대한 한정된 논의로만 머물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을 경험하는 개인의 삶은 여러 차원으로 연결, 교차되기 때문이다. 웹진이나 자료집 원고, 사업 보고서에는 담기 애매하지만 분명하게 떠오르는 현재의 질문을 계속 펼치고 싶다.

 
 
 
 

쓰다 보면 읽히겠지 17.

"제목을 짓는 일"

 
 
프로젝트나 책의 제목을 짓는다는 건, 누군가 그것을 소리내어 부르게 한다는 의미다. 내가 하고 싶은 의미를 제목에 담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는 여러 의미를 담아내는 압축적 단어나 상징적 표현 외에, 그 제목을 읽거나 말할 누군가의 모습을 더 자주 떠올린다. 어려운 단어나 시의적 표현을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이 주로 참여하게 될 프로젝트에서는 오히려 의미 없는 소리들을 엮어 제목을 만들기도 한다. 결국 '사람'이 그 제목을 보거나 듣거나 말하며 문화적, 예술적 표현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젝트의 의도를 바탕으로 제목을 새롭게 뽑아내는 경우는 나에게 드물다. 오히려 평소에 여러 '사람'들의 말을 듣다가 다수의 공감을 살 것 같은 표현이나 솔직한 말들을 메모해둔다. 그래서 내 휴대폰 메모장에는 '제목' 폴더가 따로 있는데 현재 40개 정도의 후보 제목들이 담겨있다. 그건 주로 대화 속 표현에서 가져온 것들이라서 혼잣말 같거나 푸념 같거나 끄덕임 같은 뉘앙스를 띈다. 신기하게도 일상 속 대화에서 발견한 그 표현들이 문화예술 프로젝트의 중요한 제목으로 딱 맞아 떨어지곤 한다. 
그렇게 선택된 제목들은 너무 어렵지 않은 말걸기 장치가 되어 홍보물에, 강의자료에, 워크숍 소개글에 등장한다. 어느 날 그 제목들을 모아 봤더니 마음이 듬성듬성 떠다니는 시처럼 보였다.
 
 
(최근 5년 동안 지은 프로젝트의 제목들)
포르르와르르사르르
그린다그린다그린다그린다그린다
오늘의 둘레
여기 꿍꿍이가 있다
많많놀이터
이야기를 모으는 시간
사건이 필요해
만날 사람은 만난다
그치, 모르는 게 재밌으니까
질문조립방
네모 밖이 궁금해
그리장 비추장 만들장
빈칸투어
누구를 만날지 모르니까
같이 좀 모르자
사회가 불평등하다는데 예술이 뭘 할 수(나) 있나
무리무리 아무리
프로그램을 이겨라
그림맞짱
우리도 해보고 있다
우연히, 작게, 문득, 계속
 
 
누군가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 이를테면 "<다양성 워크숍> 가자"란 말 대신 "포르르와르르사르르 가자"고 하기를 바란다. 그 제목을 말할 때 입 끝에서 낯선 표현을 사르르 뱉어내기를.
그래서 제목을 짓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어떤 경우에는 오로지 제목 때문에 참여자가 많이 오기도 한다.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아서 오게 되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 그렇기도 하다. SNS로 툭툭 지나가는 포스터 사이에서 제목은 '사람'에게 잠시라도 말을 걸기 때문이다. 그럴 수 있는 표현들이 중요하다. 누군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기를 바랐던 사람에게는 더욱 익숙하면서도 찐한 말걸기가 필요하다. 
올해 프로젝트가 조금씩 시작되고 있다. 나는 다시 휴대폰 메모함을 열어 제목들을 훑어본다. 사실 오래전부터 아껴둔 제목이 하나 있는데 언젠가는 꼭 써보고 싶다. 
 
제목 : "담당자가 싫어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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