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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글] 사람을 만나면 바뀌게 되는, 예술

by 문화예술기획 최선영 2023. 12. 21.

 
 
완주문화재단 장애예술교육 매개자과정 사업 안내

⌜장애예술교육 매개자 과정⌟ 모집공고

[완주문화재단 공고 제2023-73호] 다름을 이해하는 ⌜장애예술교육 매개자 과정⌟ 모집공고 완주문화재단은 음악, 미술, 무용 등 기존의 예술 장르 개념에서 벗어나, 예술을 매개로 개인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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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만나면 바뀌게 되는, 예술

 
 
최선영 / 문화예술기획자
 
도화지에서 시작하는 미술은 얼핏 다수에게 익숙해 보인다. 노래로 시작하는 음악, 글쓰기로 시작하는 문학, 대본으로 시작하는 연극처럼. 하지만 나에게 익숙한 것도 해체하고 질문하는 것이 예술일 수 있다. 그리고 예술 영역에서만 미련한 질문하기를 공식적으로 지속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술가는 예술교육 활동 안에서 자신이 공부하거나 반복하고 있는 방법론을 버려야 하는 경우도 많다. 왜냐하면 특히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만나기 때문이다. 자신은 드로잉북에 스케치를 하는 것으로부터 ‘미술’이라는 것을 배웠지만 드로잉북의 펄럭거림에 더 관심이 있는 사람, 드로잉북을 찢는 행위에 더 흥미를 갖는 사람, 드로잉북을 스스로 넘기기 어려운 사람, 드로잉이든 스케치든 그것의 개념을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 등이 ‘미술’이라는 이름의 예술교육 현장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가의 의도나 계획대로 예술교육 현장이 흘러가지 않는다. 각자의 욕구, 관심사, 조건, 경험 등이 매우 다른 사람들이 예술가가 제시하는 작은 요소들을 만난다. 그리고 각자의 입장에서 반응을 한다. 이것은 재미가 없다, 이것은 다르게 표현해 보고 싶다, 이것은 안 하고 평소에 하던 것을 하고 싶다, 그리고 이것은 모르겠다 등의 자기표현이 현장에 등장한다. 그래서 하나의 방법론, 계획, 이야기, 의도 등이 참여자의 개별성과 만나 엇나가며 끊임없이 질문을 남긴다. 그렇다면 무엇을 제안 해볼까. 어떤 방식이나 언어로 제안을 해야 할까. 제안이 아니라 다른 것을 해야 할까. 다른 사람들은 다 참여하는데 왜 저 사람은 안 할까. 재미를 제공해야 하는 것일까. 재미가 없는 것도 해보는 기회가 필요하지 않을까. 예술은 매번 재미있고 밝고 쉽지만은 않으니까.

장애인 예술교육이 누군가에게는 어려운 ‘분야’로 인식되는 이유는 종종 위와 같은 끊임없는 질문의 필요 때문이다. 예술가에게 익숙했던 것을 버리거나 바꿔야 하는 범위가 매우 넓기 때문이다. 비장애인 중심의 미학 언어로 구축된 예술을 학습해 온 예술가에게 드로잉북을 스케치의 도구가 아닌 하나의 사물로 재탐색하는 과정, 음악을 미세한 진동으로부터 시작하는 실험, 대본을 읽을 수 없는 사람과 연극을 하는 과정 등은 낯선 경험이 된다. 혹은 미술, 음악, 연극 같은 장르도 다 버리고 예술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은 사실 가장 예술적인 순간을 만들지 않는가. 자신에게도 예측이 되는 무언가를 반복하며 누군가에게도 제공, 전달하는 것은 예술적인 과정을 충분히 포함하지 못한다. 그저 두루뭉술하게 구획된 ‘예술’이라는 과목을 참여자에게 교육하는 의도가 더 커질 뿐이다. 참여자를 대하는 방식, 참여자와 만나는 이유, 참여자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태도 등이 기존의 ‘교육적’ 의도와 유사한데 그 안에 장르 중심의 예술을 내용으로만 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지점에서 예술과 교육이 만나는 예술교육이라는 영역은 참으로 애매하고 오묘하다. 하지만 불명확할 수 있는 영역에서 예술은 가장 자신의 다양한 모습을 뽐낼 수 있다. 정해진 모습을 조각처럼 맞춰 보여준 후 그것의 다양성만을 예술의 특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예 없던 조각도 제시하는 것, 조각이 아니라 다른 성질의 무엇이 필요한 게 아니냐고 질문하는 움직임 그 자체가 예술을 더 오롯이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 측면에서 장애인 예술교육은 그동안 익숙했던 예술과 예술교육에 대해 예술가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할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은 예술가에게 매우 감사한 경험이다. 참여자와의 만남도 흥미롭고 다채로운 협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장애인을 대상으로 어떤 교육을 어떻게 실행할지에 대한 질문보다 더욱 본질적인 질문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번 완주문화재단에서의 매개자 과정은 그러한 질문하기의 과정을 충분히 담아내었는지 살펴보게 된다. 필자를 포함한 3명의 예술가/예술교육가가 매개자 과정의 참여자들과 소규모로 1-2회 만나며 대화를 하고 이후 참여자들이 실습 활동을 1회 진행하였다. 그렇기에 참여자들이 새로운 질문을 단시간에 꺼내고 부수고 다시 꺼내는 과정이 충분히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한정된 예산과 상황 안에서 재단이 현재 해볼 수 있는 시도를 한 측면이 있었고 지역에서 예술교육을 다시 생각해 보고자 하는 사람들의 현재 관점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 정도였다.

그렇기에 개별 참여자들의 실습 내용을 사업의 결과로 전제하고 언급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큰 질문은 던져볼 수 있다. 자신에게 익숙한 예술로부터 얼마나 멀어지려고 했는가.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면 내가 주로 해왔던 예술의 다른 모습을 더욱 적극적으로 상상해야 한다. 교육이 주로 철저한 계획 안에서 안정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강사 역량’을 요구하더라도 예술가라면 자신의 질문과 시도를 교육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 그렇기에 필자는 더욱 참여자들의 개별 실습 현장에서 덜 미술 같은 것, 덜 음악 같은 것, 덜 연극 같은 것 등을 보고 싶었다. 가장 예술 같다고 여겨지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것이 적극적으로 고려되기를 바랐다. 하나의 장르 중심으로 활동해온 예술가나 예술교육가가 이번 매개자 과정에 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완주문화재단의 앞으로의 매개자 과정도 이와 같이 교육 프로그램의 운영보다 예술 자체의 특성을 고려하며 현장 중심으로 설계되기를 기대한다. 매개자 과정의 참여자들이 더 많은 내용과 방법론을 배워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낯선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 학습한 개념과 방식을 깨는 경험을 조금이라도 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은 어렵고 어렵다. 어려운 것을 해본 후 홀가분해지는 대신 계속 어려워지는 선택을 또 하는 것이 예술 영역에서 우리가 가져볼 수 있는 매개자의 태도이다. 우리는 계속 새로운 사람을 만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장애인이 장애유형으로만 분류 가능한 특별한 사람으로 전제될 필요는 없다. 만나면서 스스로 바꿔보자. 장애에 대한 생각도 예술에 대한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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