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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글] 제도의 안정적 운영이 성과가 되도록

by 문화예술기획 최선영 2023. 12. 15.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예술인복지위원회 정책포럼
토론문




제도의 안정적 운영이 성과가 되도록


최선영 / 문화예술기획자


연말이 다가오면 여러 기관에서 제도 개선과 사업 보완을 위한 공론의 자리를 마련한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하 복지재단)의 이번 정책 포럼도 그러한 목적과 맥락으로 기획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자리는 주로 기관이 다루고 있는 제도적 범위나 사업의 ‘내용’ 중심으로 논의를 하게 된다. 예술(인) 지원, 문화예술교육, 지역문화, 시민문화, 그리고 예술인 복지 등 개별 기관에서 집중해야 하는 내용을 바탕으로 논의를 하게 되는데 최근 복지재단 포함 여러 기관의 논의 테이블에 참여하며 든 생각을 여기에 적고자 한다.

왜 이러한 논의 자리에서 각기 다른 주제와 내용을 고민하는데 나에겐 비슷한 질문이 남게 될까. 국내의 문화예술 관련 정책을 담아내는 그릇의 형태나 모양은 비슷하고 그것을 만들어내는 과정도 유사하다. 다음 그릇을 결정하거나 선택하는 시간의 양과 방식도 비슷하다. 그런데 논의 과정에서는 주로 그 그릇에 무엇을 얼마나 담을 것인지에 집중하게 된다. 당연한 논의의 과정이기도 하고 매우 중요한 절차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 단기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점, 그것을 공감하는 사회적 인식이 부족하다는 점, 급변하는 정치적 상황과 함께 정책도 방향 전환을 한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논의의 범위가 확장되거나 변할 필요성도 느낀다. 제도나 사업의 내용을 고도화하거나 세분화하는 것에 논의가 집중되면 그 내용이 일반적이든 획기적이든 그것을 담아내는 그릇, 즉 형식이나 구조가 안정화되어 있지 않을 때 주변 상황이나 여론에 따라 결국 다른 내용을 담아내야 한다는 비판 또는 공격을 받는다.

예를 들어 복지재단 사업 중 <예술로> 사업을 살펴보자면, 유사한 사업 구조 안에 기획 사업을 더 넣을지, 협업사업의 카테고리를 어떻게 세분화할지 등의 논의 이전에 다른 고민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고도화, 세분화, 구체화의 과정도 중요하지만 그것의 깊이를 고민하는 사람들의 노력과는 무관하게, 그 내용을 바꿀 필요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의 정책적 결정 권한이 더 큰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왜 바꿔야 하는지에 대한 현실적, 사회적, 철학적 근거가 충분한지보다 다른 것이 더 중요할 때도 있다. 정책은 가끔 이해할 수 없는 절차와 관계에 기대어 결정되고 현장에 통보되기도 한다. 그것이 심지어 ‘복지’에 대한 것이라도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고민이 커지는 상황에서 복지재단으로부터 이번 포럼에 토론자로 참여를 제안받았다. 내 역할은 예술인의 입장으로 현장의 의견을 반영하여 발언하는 것인데 이러한 경우에 내가 그동안 선택했던 것은 주로 내용에 먼저 집중하는 것이었다. 이런 내용도 담기면 좋겠다, 이런 내용은 지속적으로 사업 안에서 다루면 좋겠다 등. 그런데 그러한 의견이 얼마나 현실적 필요 안에 있는지가 제도 개선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경험했다. 무엇을 왜 말하는지가 정책 결정의 고려 요소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요건이 요구되기도 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무기력한 순간이 많았다. 그런데 정책에 대해 큰 단위로 논의하는 상황을 지켜보니 그 역시도 주로 사업의 내용에 집중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렇다면 내용이 담기는 형식에 대해 고민해 보면 어떨까. 혹은 내용에 집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도 하고 기관마다의 역할과 전문성을 보여주는 차원에서도 그것이 필요하니 ‘내용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 마련’을 제도의 구조 재설계로 모색해 보면 어떨까.

이쯤에서 개인적 의견을 꺼내놓자면, 나는 여러 사업들을 명확한 목적 중심으로 오히려 단순화하고 그 구조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보조장치나 환경 마련에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기를 제안하고 싶다. 왜냐하면 복지재단의 사업은 사업 자체의 차별성보다 예술인의 복지를 고려한 운영적 안정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제도의 안정적 운영 자체가 복지재단의 공식적 성과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현장에서도 개별 활동의 발판이자 토대로 복지재단의 사업을 인식, 활용할 수 있다. 매년 바뀌거나 사라질 위기에 놓이는 혜택, 기획, 사업(예술인자녀돌봄센터의 경우처럼)은 불안정한 예술인의 삶과 동행하기 어렵다.

다시 (내가 올해 멘토로 참여했던) <예술로> 사업을 예로 들자면, 그동안 적은 예산이 투입되었던 사업 관리나 현장 연구에 더 많은 관심을 쏟는 것이 필요하다. 단지 사업 추진의 원활함을 위해서 인력을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버리는 과정의 성과들을 기록, 관리하는 역할을 만들거나 개별 이슈에 따라 논의하는 테이블을 공식화하는 등의 변화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매년 새로운 이슈와 상황이 발생하고 예상치 못한 성과도 생기는데 그것을 안정적으로 들여다보거나 함께 고민할 주체와 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올해 멘토제를 운영하며 이러한 시도를 했으나 이것은 안정적 운영 구조가 목적이 아니었고 장기간 진행된 대규모 사업의 현장을 처음으로 검토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예술로>의 사업 규모는 어마어마하게 커서 복지재단 직원들이 운영 자체에만 집중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사업이 10년 동안 이어졌음에도 매번 비슷한 상황과 질문을 받고 있다. 그동안 사업의 규모만큼이나 다층적 성과화 작업도 확대되었다면 현재 현장이나 정책을 향해 복지재단이 주장할 내용도 더 풍부해지지 않았을까.

‘성과화 전략’은 기관마다의 역할과 권한, 그리고 관점을 지키기 위한 현실적 장치로 중요하다. 그럼에도 많은 기관들이 현실적 어려움으로 인해 사업의 추진 자체에만 몰입하게 된다. 복지재단 사업이 현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진 만큼 제도적 규모도 커졌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더욱 그 형태의 세밀화가 아니라 명확한 목적과 형식 자체를 지켜내는 주변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

그 맥락 안에 당연히 내용적 논의도 포함된다. 전문적인 내용으로 기존 제도를 지켜내야 한다면 개별 사업의 추진 실적을 정리한 연구가 아니라 변화되는 사회 안에서의 해당 사업의 가치와 의미를 읽어내는 연구가 시도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주변적 요소(라고 표현하지만 사실상 중심을 만드는)에 복지재단이 예산을 확대 배치하며 운영 환경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복지제도는 예술인에게 ‘기댈 곳’으로 의미가 있다. 그곳이 얼마나 새롭고 다채로운 모습일 수 있는지보다 얼마나 안정적일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예술인 개개인이 다른 기회, 혹은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언제나 한 자리에 있을 수 있는 ‘복지’의 영역이 필요하다. 그것의 역할이 개별 사업들의 개선을 넘어 제도 자체의 안정성 확보를 통해 실현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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