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보면 읽히겠지> 나는 혼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문화, 예술 관련 공공 프로젝트나 사업 기획을 하기도 한다. 창작, 기획, 문화예술교육 등을 주제로 강의나 컨설팅을 하기도 하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사람과 마주 앉아 회의도 많이 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이나 강아지들과의 산책 길에 여러 생각을 한다. 그것은 구체적인 경험과 상상과 심정을 가로지른다. 나는 그 흐름을 글로 옮겨 여러 사람과 나누고 싶다. 문화예술 분야의 질문이 특정 사업이나 제도, 이슈에 대한 한정된 논의로만 머물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을 경험하는 개인의 삶은 여러 차원으로 연결, 교차되기 때문이다. 웹진이나 자료집 원고, 사업 보고서에는 담기 애매하지만 분명하게 떠오르는 현재의 질문을 계속 펼치고 싶다. |
쓰다 보면 읽히겠지 19.
"서울문화재단 웹진 <연극in> 잠정 휴간 결정에 대한 의견"

정확히 2년 전, 웹진 <연극in> 237호에 '저항의 각자'를 주제로 기획 원고를 요청받았다. 나는 문화예술계, 그 배경이 되는 ‘사회’라는 거대한 세계에 대해 희망과 분노를 언급하며 비효율적이고 모호한 저항에 대해 글을 썼다. 그리고 얼마 전, 웹진 <연극in> 관련 잠정 휴간 소식을 접했다.
서울문화재단은 예산 축소 및 삭감을 이유로 기존 발간 매체들을 재점검하였고 웹진 <연극in> 잠정 휴간과 함께 연극을 포함한 다양한 예술작품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포털 사이트를 개설할 예정임을 웹진 <연극in> 사이트 팝업창을 통해 안내했다. 예산이 얼마나 줄어들었고 시민들이 예술작품 정보를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등은 살펴봐야겠지만 안내문에서는 기존 웹진의 (형식 유지 이전에) 역할과 의미를 공감 및 고민하는 재단의 구체적 협의 과정은 확인하기 어려웠다. 특히 새롭게 만들 정보 중심 포털 사이트는 웹진과는 완전히 다른 목적과 방향성을 가지고 있어, 재단이 누구와 어떤 논의 과정으로 이러한 결정을 내렸는지 의아함이 컸다.
<연극in>은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예술인들이 직접 편집, 기획, 기사 제작 등에 참여하기 때문에 사실상 재단과 예술인의 협업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관여된 사람들의 구체적 논의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재단의 잠정 휴간 안내가 일방적이며 사실상 폐간으로 해석된다며 그동안 <연극in>을 함께 만들어온 주체들까지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을 보면 당연히 진행되었어야 할 절차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2025년 6월 29일 기준 '웹진 연극in 폐간 대책위원회가 집계한 "서울문화재단 웹진 <연극in> 폐간에 반대한다" 공개질의서에 총 2,136명이 연대 서명했으며 6월 30일에는 관련 내용으로 [제11차 대학로X포럼] "현장과 공공이 만든 예술자산, 누구도 파괴할 수 없다! - 웹진 <연극in> 잠정휴간사태가 의미하는 것 "이 열린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웹진 <연극in>의 참여 경험을 바탕으로 웹진의 기능과 역할을 언급하고자 한다. 나는 연극 분야를 중심으로 활동하지는 않지만 <연극in>에 좌담, 기획 기사 등에 참여했다. 여기에서 내가 연극인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나는 장애인의 예술활동, 저항을 표현하거나 의미화하는 맥락에 대해 <연극in>에서 나의 당시 생각을 나눴다. 이러한 내용은 특정 장르의 예술인들만이 고민하는 것이 아니기에 시의적 맥락에서 나와 같은 발화자가 필요했다. 나에게도 장르 구분 없이 동시대의 질문을 나누는 기회가 의미 있었다. 즉, <연극in>은 연극 관련 내용만 다루는 것을 넘어 다양한 관점, 영역, 방식, 질문, 가치를 교차시켜 더욱 연극의 '다음' 방향과 시선을 모색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 과정에는 구체적인 논의 참여자와 언어가 등장하고 축적되어 '다음'의 '다른' 무언가에 영향을 미친다. 이를 테면 좌담회에서 만난 사람들이 유사하거나 다른 서로의 관점을 확인하며 개별적 활동을 확장, 연결하기도 하고 한 편의 기사가 여러 사람의 공감대를 일으켜 보이지 않는 활동을 촉발시키기도 한다. 그렇기에 웹진은 특정 장르의 현장 정보를 취합, 보급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한다. 이때 웹진의 생산자나 독자는 일반 시민이라는 모호한 집단이 아니라 연극을 통해서'도' 사회와 예술을 살피려는 예술인, 예술 관계자들이다. 이들에게는 모여서 작업을 하는 것 이외에 대화, 글 등을 통해 확장된 시선을 나누는 경험이 중요하다. 이들은 시민을 위해 공연을 생산, 발표, 보급하는 역할만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연극in>은 현재의 세계를 연극 등으로 읽고 나누려는 '사람들의 논의의 장'으로 볼 필요가 있고 그렇기에 관련된 사람들(소수더라도)과의 협의를 통해 <연극in>의 변화 방향과 형식을 결정해야 한다. 단지 <연극in>을 특정 장르의 내용이 담긴 웹사이트로 해석한다면 예산 대비 효과, 성과를 측정하기 매우 어렵다. 그러나 <연극in>의 성과 측정 관련 어려움을 충분히 마주하고 공감하는 시간 없이 다른 형식과 방향을 선택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특히 기존 웹진과 새롭게 시도될 웹사이트의 목적 자체가 확연히 다르다면 그중 하나에만 예산을 투입하는 결정이 재단의 어떤 관점과 태도를 보여주는지도 되짚어봐야 한다.
물론 나는 웹진 <연극in>의 지속만이 답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어떤 답을 모색하든 그 과정에서 어떤 대화와 절차가 시도되었는지 궁금하다. 웹진이라는 형식이 아니더라도 예술인들의 논의의 장이 얼마나 상상, 시도되었는지도 궁금하다. 재단은 예술인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시민을 위해 공연 및 전시 정보를 알기 쉽게 정리 및 공유하는 것의 당위성을 강조할 것이다. 하지만 그 공연과 전시 등을 고민하며 더 넓은 질문을 이어가려는 주체들의 일상적 움직임도 공공 단위에서 더욱 지지받아야 한다. 재단도 그 움직임을 그동안 함께 만들어왔다면 스스로의 성과와 역할을 인정하는 차원에서라도 더욱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필요가 있다.
나는 두 개의 공공기관과 웹진 기획 및 편집 활동을 한 경험이 있다. 한 웹진에서는 편집장을 2년 했고 다른 웹진에서는 기획위원을 3년 했다. 그래서 더욱 웹진이 갖는 역할과 더불어 성과 가시화의 어려움을 알고 있다. 솔직히 아무리 열심히 해도 웹진은 폭발적인 독자의 반응을 얻기 어렵다. 이것을 더욱 현실적으로 표현하자면 '핫한 조회수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그래서 이런 내용 논의와 질문 생산을 왜 '계속' 해야 하는지 내부적, 외부적 질문을 받곤 하는데 웹진의 내용이 인터넷상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누군가의 가장 최근 활동이나 고민의 언어를 확인하고자 할 때 웹진은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논문이나 책자, 뉴스 기사 등으로 접할 수 없는 현장의 활동과 언어가 웹진에 계속 담긴다. 어떤 연구자분은 나에게 최근 동향을 바탕으로 연구보고서를 쓸 때 기본 리서치를 웹진에서 한다고 했다. 나 역시 기획자나 예술인, 기관 실무자 등이 현장 내용을 고민할 때 정리된 관점을 공유하는 목적으로 몇 년 전 웹진 기사를 전달한다. 그렇기에 그것마저 없다면 마치 현장의 목소리가 전혀 없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사실상 웹상에서 검색되지 않는 이야기나 사람은 지금 사회에서 존재를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년 전 '저항의 각자'를 주제로 내가 쓴 글을 다시 보다가 지금의 상황도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
"변화에 집중하던 나에게 누구도 ‘안 될 수도 있다’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 대부분의 활동이자 노력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는데도 말이다. 그 순간 나의 순진함을 반성하며 더욱 치열하게 현실의 사안들을 공부했어야 했을까."
현실의 사안을 어디까지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위 글에서 '최소한 비키진 않을 테니까'라며 글을 마무리지었듯 여기 내 홈페이지에 새로운 '저항의 각자' 글을 이렇게 싣는다. 축적된 언어들이 뭉쳐지고 확장될 수 있는 기회를 잃고 결국 흩어져 개인 홈페이지나 SNS 중심으로만 남게 될지 모를 이런 상황도 마주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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