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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보면 읽히겠지

[쓰다 보면 읽히겠지] 21. 타인의 접근성을 생각하다가

by 문화예술기획 최선영 2025. 9. 1.
<쓰다 보면 읽히겠지> 
 
나는 혼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문화, 예술 관련 공공 프로젝트나 사업 기획을 하기도 한다. 창작, 기획, 문화예술교육 등을 주제로 강의나 컨설팅을 하기도 하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사람과 마주 앉아 회의도 많이 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이나 강아지들과의 산책 길에 여러 생각을 한다. 그것은 구체적인 경험과 상상과 심정을 가로지른다. 나는 그 흐름을 글로 옮겨 여러 사람과 나누고 싶다. 문화예술 분야의 질문이 특정 사업이나 제도, 이슈에 대한 한정된 논의로만 머물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을 경험하는 개인의 삶은 여러 차원으로 연결, 교차되기 때문이다. 웹진이나 자료집 원고, 사업 보고서에는 담기 애매하지만 분명하게 떠오르는 현재의 질문을 계속 펼치고 싶다.

 
 
 
 

쓰다 보면 읽히겠지 21.

"타인의 접근성을 생각하다가"

 
 

최근 몇 년 사이 장애인의 문화·예술 활동 접근성 관련 연구나 논의에 조금씩 참여하고 있다. 많은 연구가 그러하듯 결국 접근성은 무엇인가, 그 개념이 재정의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이 커진다. 장애 당사자의 일상이나 개별적 삶의 조건과 연결해서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매뉴얼로 정리될 수 없는 세세한 영역이 있고 장치나 시스템 마련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태도나 관점이 함께 모색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논의에 참여할 때 나는 주로 타인의 입장을 바탕으로 어떤 상황을 상상해서 관점을 정리하곤 했다. 그러한 접근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한 사람으로서  문화·예술 활동에 접근했던, 그럴 수 있었던  경험을 되짚어보는 것도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릴 적 그림 그리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할 때 그것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동네 작은 미술학원이나 화실을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가 없어도, 바닥에 모여 앉아 그림을 그리는 공간에 가더라도 나는 자연스럽게 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다. 시설적 장애물이 없었던 것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나의 참여를 거절하는 사람이 그곳에 없었다. 입장과 참여에 있어서 거절당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 작은 사회를 만들며 미술 활동을 했던 것인데 나는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리고 만들기를 하고 예술을 접했다. 하지만 접근성 관련 연구, 장애인의 예술활동 관련 대화 모임 등에서 장애인이나 매개자를 만나면 '받아주는 미술학원이 없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누군가 장애인의 창작 공간을 운영하기 위해 상가 건물 임대를 알아봤는데 건물주가 반대해서 계약을 하기 어려웠다는 사례도 있었다. 
이럴 때면 누구나 공간에 입장할 수 있는 시설, 그리고 사회적 인식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다다른다. 그런데 이것은 참 당연한 이야기다. 그래서 논의는 당위성, 보편적 권리의 강조, 그것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일반적 상황을 비판하며 마무리되곤 한다. 
이때 답답한 마음을 한편에 두고 다시 나의 경험으로 돌아와 본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의 2층 화실에 다녔던 중학교 시절을 떠올려본다. 누가 왜 그곳에 올 수 없는지를 분석, 비판하는 것을 잠시 멈추고 내가 그곳을 2-3년 오갔던 경험에 집중해 본다. 무엇이 부족한가 이전에 일단 무엇이 존재했는지, 가능했는지 들여다본다. 
화실 입구 문을 열면 유화 물감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삐그덕 거리는 문을 지나자마자 공간 가득 화실 선생님의 회화 작품이 보였다. 선생님은 그야말로 ‘화가’처럼 보였다. 주로 차분하고 따뜻한 색으로 캔버스를 채웠던 선생님은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오늘은 무엇을 할지' 이야기 해주셨다. 그리고 벽에 걸린 작품에 대해, 화면 구성이나 공간감 표현에 대해, 가끔은 미술잡지나 화집 속 여러 작품의 의미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난로 위에 놓인 주전자에서 뜨거운 물을 컵에 따라 드시며 천천히 이젤 앞으로 이동하셨는데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예술가의 모습'을 익숙하게 상상하곤 했다. 어떤 날은 사과를 그리고 어떤 날은 피카소의 그림을 따라 그리며 면과 색에 대해 배웠고 선생님의 그림을 한참 보면서 내 그림과 무엇이 다를까 생각도 했다. 화실의 상황 전체를 그렇게 느끼는 것이 미술관에서 작품을 하나하나 관람하는 것보다 더 일상적인 예술 경험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씩 예술 활동, 예술가의 일상, 혹은 예술 자체에 접근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어떤 문화시설, 예술 콘텐츠에 접근하는 것보다, 더욱 일상적으로 문화·예술 요소를 경험할 수 있었다. 한 사람이 문화·예술 활동에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는 상태는, 여러 기관이 정보 및 시설 접근성을 마련하고 관련 사업을 진행하는 것보다 훨씬 넓은 범위에서 논의되어야 하는 것이다. 현재는 문화·예술 활동이라는 이벤트에 누군가가 무리 없이 접근하기 위한 방안을 공식적으로 만들어보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누군가에게 문화·예술 활동이 특별한 이벤트가 되지 않도록 하는 일상적 상황 마련이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장치가 아니라 상황을 만드는 것으로서 접근성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가 잘 만들어서 제공하는 완성형 콘텐츠가 아니라 현재와 다음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사람을 향하는 질문이 필요하다. 이벤트의 완성도를 높이는 방법 대신 일상성의 의미를 회복하는 움직임에 대한. 7월부터 참여하고 있는 접근성 관련 연구에서 타인이 아닌 나의 일상적 경험을 떠올리며 질문을 하나씩 생각해보고 있다.  



*2025-2026년에 쓴 글 중 일부와, 새롭게 쓴 글을 모아 책을 발간했다.
[책] 기획자의 노트 <쓰다 보면 읽히겠지>
https://uugoorichoi.tistory.com/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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