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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보면 읽히겠지

[쓰다 보면 읽히겠지] 26. 창작자의 돈 얘기

by 문화예술기획 최선영 2026. 2. 8.
<쓰다 보면 읽히겠지> 
 
나는 혼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문화, 예술 관련 공공 프로젝트나 사업 기획을 하기도 한다. 창작, 기획, 문화예술교육 등을 주제로 강의나 컨설팅을 하기도 하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사람과 마주 앉아 회의도 많이 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이나 강아지들과의 산책 길에 여러 생각을 한다. 그것은 구체적인 경험과 상상과 심정을 가로지른다. 나는 그 흐름을 글로 옮겨 여러 사람과 나누고 싶다. 문화예술 분야의 질문이 특정 사업이나 제도, 이슈에 대한 한정된 논의로만 머물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을 경험하는 개인의 삶은 여러 차원으로 연결, 교차되기 때문이다. 웹진이나 자료집 원고, 사업 보고서에는 담기 애매하지만 분명하게 떠오르는 현재의 질문을 계속 펼치고 싶다.

 
 
 
 

쓰다 보면 읽히겠지 26.
“창작자의 돈 얘기"


창작 활동을 수익으로 연결하기, 작업하며 돈 걱정을 덜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예술가, 기획자의 관심이 적지 않다. 예술창업. 그런 표현도 등장한다. 문화와 예술의 의미, 가치에 대한 공식적 대화 뒤편에서 우리는 '근데 돈은 어떻게 벌지?'에 대해 서로 묻고 떠든다. 그때 돈은 뒤로 미룰 수 없는 삶의 이슈이자 창작 활동을 위해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거대한 어려움으로 존재한다.
나에게도 그러한데 더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돈은 가난에 대한 두려움으로 연결된다. 가난해도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난해지는 지름길 위에 창작 활동이 분명하게 놓여있다면 피하고 싶다. 이런 이야기, 돈 얘기를 아주 가까운 사람들과 자주 한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것인가에 대한 대화만 하는 것은 아니다. 창작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창작 주변에서 지속되는 삶의 '비용'에 대한 대화가 사실상 더 많다. 되돌아보니 그와 관련한 선택이 중요하고 분명했다.
 
 
1. 전시장 대관료
공공 지원금을 받든 사비를 쓰든 결국 건물주에게 어마어마한 대관료를 지불하는 선택은 하지 않았다. 내가 여러 사람과 작업할 수 있는 수백만 원의 돈을 1,2주 만에 임대사업자에게 주는 것은 동의하기 어려웠다. 공간의 분위기, 쾌적함, 입지, 인지도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것보다 작업의 맥락과 연결되는 대안적 공간을 찾는 과정에 의미를 두었다. 혹은 전시하기에 대해 질문하는 다른 방식을 찾거나.
 
2. 월세와 전세
삶을 지속하는 과정에서 가장 크게 발생하는 비용이 주거비다. 결혼 후 1.5룸에서 월세 30만원을 내며 1년 동안 살았는데 그것을 어떻게든 줄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신혼부부 전세임대 사업에 신청했는데 창작자인 남편과 함께 2인 가구 저소득 기준 안에 무리 없이 들었다. 그래서 복잡한 서류, 비협조적인 집주인 등의 장애물을 넘어 수도권에서 9년 동안 주공(LH)에 월 10만원 정도의 전세 이자를 내며 살았다. 그러다 2019년, 충남으로 이주했는데 집이 가장 큰 이유였다. 디딤돌 대출을 받아 집을 구했는데 수도권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래저래 이사를 하는 과정에서 주거 관련 지원제도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결혼하고 부양가족이 있는 경우 특히 지원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3. 전기세와 난방비 
새롭게 구한 집은 단독주택인데 도시가스가 불가능한 지역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기름보일러를 사용하는데 난방비가 특히 걱정이 되던 찰나, 태양광 발전을 알게 되어 창고 옥상에 패널을 설치했다. 이제 전기는 맑은 하늘과 뜨거운 햇살이 지속적으로 생산해 준다. 여름철에 에어컨을 하루 종일 켜두고, 겨울철에 온풍기를 방마다 쓰고 있지만 한 겨울만 빼면 사실상 기본료 정도만 지출한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생활에 드는 고정 지출은 줄어들었다. 갑자기 길에 내앉게 될까 봐 걱정하는 일도 사라졌다. 해가 쨍쨍한 날에는 골목을 걸으며 '오늘 전기 많이 생산되겠다' 생각도 한다. 

창고 옥상에 설치한 태양광 패널


 
4. 단체의 자립
예술단체의 구성원으로 지냈던 시절도 꽤 길었다. 경력이 쌓일수록 단체의 자립을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을 듣게 되었다. 그런데 자립은 아주 냉정하게 돈에 대한 문제였다. 어떤 아이템을 개발할까, 어떤 태도를 가질까 그런 고민도 있었지만 나는 더 시니컬하게 "지금 우리가 4명이면, 한 명 당 한 달에 120만원씩 월급을 받는다고 쳤을 때 매달 순수익이 총 480만원 나오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창작 활동을 바탕으로.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방법이 그려지지 않았다. 결국 더 거대한 '일'(작업이 아닌)을 '따내야' 했고 그것을 위해 누군가 영업을 해야 했다. 자영업의 시작이었다. 제조업도 좀 섞여있었던 것 같다. 자신에겐 그런 유전자가 없다고 손사래를 치는 사람들이 모여 자립을 꿈꾸고 있다는 것을 재차 확인하게 되면서 다른 선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5. N잡러
여러 경험 속에서 나는 사무실과 일반적 운영 체계를 갖춘 기업체를 유지하는 것에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그러한 활동 방식에 관심이 덜 하다는 것도. 그래서 나와 주변인들이 각자의 생활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이며 N잡러를 유지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많은 예술가와 기획자가 본인을 N잡러라고 소개하며 멋쩍게 웃곤 하는데 그것은 이래저래 스스로 선택한 생존 방식일 것이다.
그리고 N개의 작업이나 일 중에는 하고 싶지 않은 무언가도 많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나도 '돈 때문에' 그런 일들을 많이 했다. 지금도 그러하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한 선택이다. 먹고사는 데에 필요한 비용을 버는 행위는 귀하고 값지다. N잡러는 전방위적이고 다소 산만하기도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며 살아내는 선택이리라.
 
 

지역으로 이주할 때 함께 작업했던 예술가 친구들이 오래된 집을 같이 고쳐줬다

 
  
N잡러들이 친구가 되어 함께 작업을 하게 되면, 주거 비용에 덜 부담이 있는 사람이 공간을 잠시 공유하고, 난방비 지원금이 생긴 사람이 추운 날 온풍기를 2-3시간 더 틀면서, 그렇게 작업을 한다. 개별적으로 줄어든 비용과 늘어난 여유를 나누며.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20년 전쯤부터 지출하지 않았던 대관료, 월세 등이 모여 지금의 공유 자원이 생긴 것이라 생각한다. 지난 선택의 결과가 지금의 가능성 혹은 생존 방법을 만든 것인데 그런 측면에서 현재도 매일 할 수 있는 선택은 많다. 걱정하는 것보다. 
내일은 맑다고 한다. 하늘의 기운을 받아 온풍기를 켜고 컴퓨터를 켜고 돈 버는 일을 할 것이다. 돈이 될지 아직은 모르는 일도. 그것이 현재의 선택이다.

 

*2025-2026년에 쓴 글 중 일부와, 새롭게 쓴 글을 모아 책을 발간했다.
[책] 기획자의 노트 <쓰다 보면 읽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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