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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보면 읽히겠지

[쓰다 보면 읽히겠지] 31. 사건이 등장할 수 있는 자리

by 문화예술기획 최선영 2026. 4. 10.
<쓰다 보면 읽히겠지> 
 
나는 혼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문화, 예술 관련 공공 프로젝트나 사업 기획을 하기도 한다. 창작, 기획, 문화예술교육 등을 주제로 강의나 컨설팅을 하기도 하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사람과 마주 앉아 회의도 많이 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이나 강아지들과의 산책 길에 여러 생각을 한다. 그것은 구체적인 경험과 상상과 심정을 가로지른다. 나는 그 흐름을 글로 옮겨 여러 사람과 나누고 싶다. 문화예술 분야의 질문이 특정 사업이나 제도, 이슈에 대한 한정된 논의로만 머물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을 경험하는 개인의 삶은 여러 차원으로 연결, 교차되기 때문이다. 웹진이나 자료집 원고, 사업 보고서에는 담기 애매하지만 분명하게 떠오르는 현재의 질문을 계속 펼치고 싶다.

 
 
 
 

쓰다 보면 읽히겠지 31.
“사건이 등장할 수 있는 자리"


 
예측을 벗어난 누군가의 예술적 표현이나 참여는 많은 사람들에게 편안하게 인식되지 않는다. 나에게는 자유로운 행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 과하거나 기괴한 표현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또한 나에게는 매우 예술적인 표현이 누군가에게는 의미도 가치도 알 수 없는 행위로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긴 시간 동안 누군가가 예술적 표현을 할 때, 혹은 각자의 속도로 참여를 시도하고 있을 때 그것을 공식적이고 구체적인 말로 인정해 주는 존재가 필요하다. 전체 프로젝트나 활동을 이끌고 있는 사람이 명확한 권한과 권위를 바탕으로 그 역할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양한 사람들이 동시에 무언가를 하는 활동에서는 누가 무엇을 하는지보다 그것을 타인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공표하는 것이 더욱 강하게 상호 의미화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여러 활동이 벌어지는 현장에서 끊임없이 ‘말한다’.
 
“이렇게 하고 있군요”
“멀리서는 잘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 이런 것도 해봤던 거군요”
“우리가 해보지 않았던 방식으로 천천히 탐색하고 있군요”
“옆 사람과는 이런 점에 있어서 다른 표현이네요”
 
이러한 말들을 하며 사람마다의 표현 행위를 최대한 자세하게 언급하고 인정하고 그것이 벌어지고 있음을 공표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보고 있는 사람이 ‘여기 존재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하지만 과하게 칭찬하거나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그저 하고 있음, 진행되고 있음 자체에 집중한다. 나에게도 그것을 가치 중심으로 판단할 근거나 기준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하는 역할의 필요성에 대한 근거는 있다. 예술은 예측할 수 있는 것들의 총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낯선 반응이나 표현은 ‘사건성’으로서 예술적 의미를 획득하기도 한다. 나는 그 예측하기 어려웠던 사건의 상태나 흐름을 단지 그 현장에서 읽어내거나 언급할 뿐이다. 그 안에는 사람의 깊은 욕구, 예민한 감각, 정돈될 필요 없는 즉흥적 표현 자체가 있다. 나는 그것을 들여다보는 것이 즐겁고 볼수록 무언가가 더 넓게 발견되는 것이 흥미롭다. 그래서 꼭 타인을 위해서 애써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재미도 쫓으며 상황을 즐긴다. 그리고 그 상황의 범위를 넓히려고 애쓰는데 그것은 마냥 이타적인 선택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존중이라는 말과 덜 억지스럽게 연결된다.

그렇다면 예상외의 표현이 사건처럼 등장할 수 있는 환경이 누군가의 표현 활동, 예술 행위, 예술교육 현장에서 얼마나 마련되고 있을까. 그 환경은 무언가가 확정적으로 빽빽하게 짜여 있지 않은, 편안하게 비어 있는 시간이나 장소여야 하지 않을까. 나의 활동을 돌아보고 누군가의 활동도 지켜보니 언젠가는 ‘비워두며 사건 해석하기’에 대한 워크숍을 기획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 기획 과정에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음보다 더 어렵고 섬세한 나의 일상적 호흡, 그리고 표현 행위에 대한 편안함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지 않음’과 ‘비워둠’의 미묘한 차이를 타인과의 구체적 경험으로 연결하는 것이, 그야말로 욕심나는 다음 작업의 방향이다.
 
 
 
 

2025년 연구원으로 참여한 천안문화재단 장애 예술교육의 계획안.
4, 7, 10회차에는 세부 계획 대신 반응적 기획을 위한 빈칸을 마련해 두었다.

차시주요 활동
1⚫ 주변 탐색하며 공간에 익숙해지기
공간에 어떤 재료가 있는지, 각자 어디에서 작업을 하면 편안할지 탐색
2⚫ 놀이가 머무는 공간
각자에게 편안한 작업 공간/자리를 확보하고 흥미로운 재료를 선택하여 개별 표현 활동
자유로운 재료 탐색 및 선택을 위해 다양한 재료를 공간 가운데 또는 한쪽에 넓게 배치
참여자의 관심도에 따라 개별, 또는 공동의 표현 놀이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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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반응형 표현 활동 (1)
1~3차시 활동 안에서 관찰된 참여자의 특성을 바탕으로 강사가 반마다 필요한 활동을 시도
5⚫ 놀이와 표현의 확장
- 시각적 표현에 집중하는 참여자가 많을 경우 조형 활동 다양화
- 몸놀이를 선호하는 참여자가 많을 경우 공간 곳곳에 그림을 그리거나 움직임 자체를 다각화하는 동적인 활동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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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반응형 표현 활동 (2)
4~5차시 활동 안에서 관찰된 참여자의 특성을 바탕으로 강사가 반마다 필요한 활동을 시도
8⚫ 공간 내 놀이 경험의 축적
-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재료 중심으로 표현 활동을 다각화(참여자가 동시에 동일한 활동을 하지 않아도 됨)
표현 및 놀이 경험을 시각화할 수 있는 활동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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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반응형 표현 활동 (3)
1~9차시 활동 안에서 관찰된 참여자의 특성을 바탕으로 강사가 반마다 필요한 활동을 시도
결과물 제작 및 발표에만 머물지 않고 활동의 ‘경험’을 과정 중심으로 떠올릴 수 있는 활동 시도

 
 
 
관련 글 : [연구] 천안문화재단 장애 예술교육 프로그램 <미소 창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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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2026년에 쓴 글 중 일부와, 새롭게 쓴 글을 모아 책을 발간했다.
[책] 기획자의 노트 <쓰다 보면 읽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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