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쓰다 보면 읽히겠지> 나는 혼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문화, 예술 관련 공공 프로젝트나 사업 기획을 하기도 한다. 창작, 기획, 문화예술교육 등을 주제로 강의나 컨설팅을 하기도 하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사람과 마주 앉아 회의도 많이 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이나 강아지들과의 산책 길에 여러 생각을 한다. 그것은 구체적인 경험과 상상과 심정을 가로지른다. 나는 그 흐름을 글로 옮겨 여러 사람과 나누고 싶다. 문화예술 분야의 질문이 특정 사업이나 제도, 이슈에 대한 한정된 논의로만 머물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을 경험하는 개인의 삶은 여러 차원으로 연결, 교차되기 때문이다. 웹진이나 자료집 원고, 사업 보고서에는 담기 애매하지만 분명하게 떠오르는 현재의 질문을 계속 펼치고 싶다. |
쓰다 보면 읽히겠지 32.
"예술강사 간의 관계성이 만들어내는 문화적 가치"

나는 2021-2022년에 <발달장애인 특성화 문화예술교육 기존 프로그램 연구개발 : 좁은 지대에서 넓게 펼치는 질문>에 책임연구원으로 참여한 경험이 있다. 이때 연구의 전체 흐름에서는 맥락상 담지 못했으나 별도로 논의할 필요가 있는 내용을 연구보고서 중 '7장. 깊게, 남겨진 질문'에 독립된 글로 담았다. 최근 여러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마주하며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예술강사/예술교육가 간 관계성이 만들어내는 활동의 역동성, 혹은 경직성을 확인하게 되어, 예전 연구보고서의 일부 글을 공유하고자 한다.
*연구보고서 다운로드
읽기 : 연구보고서 | 알림마당 |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대표 사이트 입니다, 이음, 장문원
kdac.or.kr
예술강사 간의 관계성이 만들어내는 문화적 가치
본 연구를 위해 연구진이 여러 현장을 직접 가보면서 운영 구조, 활동 내용, 참여자의 표현 행위 등과는 별개로 다른 중요한 요소를 발견하였다. 그것은 예술강사 간의 관계성이다. 이것은 주강사나 보조강사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기획자에게 어떤 태도나 역량이 필요한지 등에 대한 내용과는 다른 차원의 논의 지점이다. 더욱 직접적으로 표현하자면 예술강사 간에 얼마나 친한지, 평소에 얼마나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소통을 했는지에 따라 문화예술교육 현장이 매우 다른 양상으로 뻗어 나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최근에 문화예술교육에 참여하는 주체들이 일이나 사업 차원으로 협력하는 상황도 많아서 일상적인 관계가 토대가 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예를 들면 기획자나 주강사를 중심으로 협력할 다른 사람을 매번 새롭게 섭외하거나 단지 프로그램 운영을 위해서 일시적으로 만나 역할을 분담하기도 한다. 문화예술교육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개개인들이 필요한 기회에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이 일반화되면 문화예술교육을 고민하거나 시도하는 사람 간의 문화적 경험과 관계가 부재한 채로 문화나 예술을 단지 소재로 선택한 활동만 이어질 수 있다. 문화예술교육은 문화적 경험, 예술적 순간을 적극적으로 포함하는 것으로서 의미와 가치를 지닐 수 있기 때문에 어떤 내용으로 진행되는가 이전에 근본적으로 중요한 전제 조건이 고려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참여자의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문화예술교육 관련 현장을 다시 살펴보면 예술강사 간에 어떤 관계성이 필요한지, 그것이 참여자나 활동의 흐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민할 수 있다. 이번 연구에서 현장 모니터링과 인터뷰를 진행했던 포항의 예술단체 ‘아라동화창작’ 사례가 이러한 의미를 잘 보여준다. 처음에 ‘아라동화창작’의 교육 현장을 찾아갔을 때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지원사업에 선정된 단체의 현장을 내용과 운영 방식 중심으로 살펴보기 위한 목적이 컸다. 그런데 연구진이 한 특수학교에서 짚풀 공예 관련 프로그램을 하는 현장을 관찰해보니 무엇보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강사, 보조자, 사진작가 간의 관계성이 보였다. 이들은 서로의 역할을 정확하게 나눠 필요한 순간에 기능하고 있다기보다는 현장에 놀러 온 서로 친한 예술가들처럼 보였다. 그 이유를 추후 인터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들은 포항 지역에서 오랜 기간 만나오며 친분을 쌓아왔고 그 관계 안에서 문화예술교육 활동도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현장이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하고 있는지 질문이 생긴다. 주강사는 능숙하게 활동의 내용을 설명하거나 참여자들을 리드하고 보조강사는 주강사와 사전에 협의한 역할에 충실하고 사진작가는 묵묵히 촬영에 집중하는 현장이 더욱 일반적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예술강사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정체성인 ‘예술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예술가는 물론 공식적인 활동 안에서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하지만 그것에만 집중할 경우 단지 그 순간 필요한 기능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예술가가 일상적이고 익숙한 순간에도 조금 다른 표현, 관점, 시도, 실천을 모색하는 한 사람으로 존재하고 있어야 문화예술교육 현장도 더욱 문화적, 예술적 가치를 확장해나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술가이자 예술강사인 개개인이 교육 현장에서도 단지 어떤 역할이나 기능을 해내는 존재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으로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술강사 간에도 서로의 역할을 잘 해내는지에만 집중하고 체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개개인으로 존중하며 함께 무언가를 하는 것 자체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순간이 중요한 이유는 예술강사가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즐기며 함께 놀기까지 하면 참여자가 더욱 자연스럽게 참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주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예술강사가 즐겁고 재미있어야 참여자도 흥미를 가지고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발달장애인 문화예술교육에서도 이것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예술강사가 그 순간을 즐기면 더욱 참여자를 참여 대상으로만 보지 않게 되고 같이 놀고 싶은 동등한 존재로 인식하게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발달장애인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특히 비장애인 입장에서 학습하듯 태도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과정을 뛰어넘어 ‘우리 노는데 저 사람도 어떻게 같이 놀면 재미있을까’와 같은 접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예술강사는 자신이 그 프로그램 안에서 해야 하는 것으로 정해두었던 일정한 역할이나 촘촘한 계획을 스스로 벗어나는 자연스러운 선택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은 단계적이고 안정적인 흐름 대신 문화적인 경험으로 나아가게 된다. 위에서 언급한 ‘아라동화창작’의 현장에서도 한 예술강사가 짚풀 공예 활동을 어느 정도 마친 후 자연스럽게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후 확인해보니 그 예술강사는 보통은 짚풀 공예를 담당하는 것으로 공식적 역할을 하지만 평소에 기타 연주를 해오기도 하고 몇 번 참여자들을 만나보니 소리나 음악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어 기타 연주를 자주 한다고 하였다. 실제로 이 예술강사가 기타 연주를 시작하자 참여자 중 일부는 조금 전과 달리 자리에서 일어나 리듬을 타기도 하고 자신이 만든 공예 작품을 흔들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이때 예술강사는 참여자를 고려한 적절한 문화예술교육 방법을 마련하기 위해 평소에 연주하지 않던 기타를 가져와 갑자기 어떤 역할을 했던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바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며 반응하듯 참여자를 향해 음악을 연주한 것인데 그 순간은 매우 인간적이고 또한 문화적이었다. 이러한 해석은 한편으로는 연구진의 주관적 관점일 수 있으나 예술강사가 문화예술교육 안에서 어떻게 존재하는지가 현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그동안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했음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발달장애인 문화예술교육 관련 예술강사의 태도나 교육의 내용 외에도 예술강사의 존재하기, 그리고 서로 간 관계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예술강사가 보다 일상적으로 교류, 협업하는 관계가 활발해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면 문화예술교육 현장도 자연스럽게 각자의 동력과 흥으로 굴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동하는 현장은 문화적이고 예술적인 가치와 의미를 자연스럽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와 관련된 논의는 장기적으로 여러 현장에서 필요하다.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인해 문화예술교육 현장은 예술강사의 일자리 활동이자 교육 참여자의 문화적 수혜의 현장으로 기능하는 측면도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자리 활동이 얼마나 다채로운 내용을 전문적으로 다뤄야 하는지 등의 논의만 고도화하는 것은 문화예술교육의 의미와 가치를 확장하는 것과 거리가 있다. 예술강사가 긴장된 모습으로 자기 역할과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고 즐기며 그 현장에 다양한 사람을 참여자로도 초대할 수 있는 환경이 지속적으로 고민되어야 한다.
*2025-2026년에 쓴 글 중 일부와, 새롭게 쓴 글을 모아 책을 발간했다.
[책] 기획자의 노트 <쓰다 보면 읽히겠지>
https://uugoorichoi.tistory.com/158
[책] 기획자의 노트 <쓰다 보면 읽히겠지>
기획자의 노트쓰다 보면 읽히겠지 문화, 예술 분야에서 20년 가까이 활동하고 있는 기획자가 있다. 그는 삶과 충돌하는 예술을 자주 경험하며 할 말이 많아졌다. 그래서 긴 고백을 하기로 마음먹
uugoorichoi.tistory.com
'쓰다 보면 읽히겠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쓰다 보면 읽히겠지] 31. 사건이 등장할 수 있는 자리 (0) | 2026.04.10 |
|---|---|
| [쓰다 보면 읽히겠지] 30. 속도의 차이를 펼쳐서 (0) | 2026.03.19 |
| [쓰다 보면 읽히겠지] 29. 말 속에 갇히는데, 말로 시작해야 할 때 (0) | 2026.03.10 |
| [쓰다 보면 읽히겠지] 28. 속마음을 담은 '기획의도' 모음 (0) | 2026.02.27 |
| [쓰다 보면 읽히겠지] 27. 내 아들에게 저런 프로그램이 매칭된다면 (0) | 2026.02.1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