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쓰다 보면 읽히겠지> 나는 혼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문화, 예술 관련 공공 프로젝트나 사업 기획을 하기도 한다. 창작, 기획, 문화예술교육 등을 주제로 강의나 컨설팅을 하기도 하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사람과 마주 앉아 회의도 많이 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이나 강아지들과의 산책 길에 여러 생각을 한다. 그것은 구체적인 경험과 상상과 심정을 가로지른다. 나는 그 흐름을 글로 옮겨 여러 사람과 나누고 싶다. 문화예술 분야의 질문이 특정 사업이나 제도, 이슈에 대한 한정된 논의로만 머물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을 경험하는 개인의 삶은 여러 차원으로 연결, 교차되기 때문이다. 웹진이나 자료집 원고, 사업 보고서에는 담기 애매하지만 분명하게 떠오르는 현재의 질문을 계속 펼치고 싶다. |
쓰다 보면 읽히겠지 29.
“말 속에 갇히는데, 말로 시작해야 할 때”
예술계 안에서 활동하는 것과는 별개로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일반성의 범주 안에 들어갈 수 없는, 혹은 들어가지 않으려는 사람마다의 표현 행위나 생각이 더 궁금해졌다. 저 부모님, 저 학생, 저 사장님, 저 선생님, 저 친구의 흔들리는 눈빛은 자신에게 자연스러운 표현의 자리를 찾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을 궁금해하는 말보다는 분명한 지침이 삶 곳곳에서 그 사람에게 제안되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다시 문화, 예술 분야로 시야를 돌려보면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 중심에는 너무 분명한 ‘말’들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말하고 쓰는 것이 어렵다고 모두 공감하면서 왜 그 방법을 만남과 표현의 시작으로 주로 사용하는지 의아하기도 했다. 심지어 압축된 형태로. 예를 들면 ‘떠오르는 키워드를 1분 안에 말해보세요’ 이런 식으로.
그런데 분명한 표현, 참여, 발표의 방식이 예술에서마저 일반적 기준으로 전제되면 사람마다 헤매는 상황이 더욱 커진다. 그래서 이것을 흔드는 장소가 필요한데 나는 예술이 다른 자리까지도 넓혀서 그 장소 역할을 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작은 시도를 해보고 있다. 이를테면 문화예술교육에 있어서 ‘주제’가 있더라도 그것을 하나의 단어나 개념으로 참여자들에게 공지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각자의 집을 만들어보는 활동을 실제로 염두에 두더라도 “집을 만들자”라고 하지 않는다. 그 순간 대부분의 참여자들이 사각형 건물 위에 삼각형 지붕을 얹어 관념화된 집을 그리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고나 표현은 생각보다 언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사람’을 그려보자고 하면 졸라맨을 그리고 ‘자동차’를 그리자고 하면 각이 진 몸체에 바퀴가 2개 달린 측면에서 바라본 바로 그 승용차를 그린다. 그래서 나는 단어가 아니라, 그 단어가 가지고 있는 속성이나 요소들을 풀어서 이야기하는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몇 가지 예시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 ‘집’을 풀어서 말하기
“내가 살고 있는 공간”
“나에게 익숙한 물건이나 사람이 있는 곳”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가득 채우고 싶은 공간”
“내가 쉬는 곳”
“내가 가끔 숨을 수 있는 곳”
· ‘사람’을 풀어서 말하기
“나와 닮았지만 모두 다른 생명체”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사랑도 하고 질투도 하는 생명체”
“겉과 속이 다른 생명체”
“각기 다른 얼굴과 몸통과 팔과 다리가 달린 것”
“다른 행성에서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지 모를 존재”
· ‘자동차’를 풀어서 말하기
“우리가 주로 타고 다니는 것”
“바퀴와 엔진과 몸체를 가지고 있는 것”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도 태울 수 있는 것”
“갑자기 사라지면 생활 속도를 느리게 만들 수도 있는 것”
“물건을 멀리까지 운반할 때 쓰는 운송수단”
이러한 표현방식은 하나의 개념을 떠오르게 하기보다 다른 개념까지도 상상하게 만든다. 문화예술교육이 하나의 개념을 찾아내고 표현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참여자가 반드시 집, 사람, 자동차를 표현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것과 비슷한 속성을 떠올리며 다양하고 엉뚱한 것을 상상하여 자신의 삶과 연결된 어떤 지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러한 말하기 방식은 더더욱 무궁무진하게 이어져 문학적인 표현으로도 연결될 것이다. 그렇다면 위의 예시 중에, “다른 행성에서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지 모를 존재”에 대해 그림을 그린다면 어떤 결과물들이 나올까. 그것이 얼마나 예술적 일지 아닐지 따져보기 전에, 그것이 ‘사람’이라는 단어를 듣고 표현한 것과 어떤 차이를 만들어낼지 생각해 볼 수 있다.
또한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주제는 기획서에 명시된 언어 그대로 참여자에게 전달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도 전반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혹시 내가 정해 놓은 주제를 강조하거나 활동을 효과적으로 이끌어나가기 위해서 선택한 개념 몇 가지가, 참여자의 다양한 접근을 가로막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왜냐하면 참여자의 표현 영역에서는 오히려 계획된 언어, 기획된 주제가 흩어지고 확장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참여자의 개별적 관심이 활동 주제와 조금이나마 만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특히 문화예술교육은 비언어적인 과정도 포함하기 때문에 우리가 언어의 밖으로 뛰쳐나가 해볼 수 있는 것들이 더욱 많다. 또한 언어에 능숙하지 않은 사람, 혹은 언어를 쓰지 못하거나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동등한 표현 기회가 주어지려면 기획서에 나열된 언어가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감각이나 경험으로부터 각자의 표현이 시작되어야 한다.
나는 그런 측면에서 나의 언어를 다른 표현이나 반응으로 튕겨내 버리는 사람들을 만날 때 당황하면서도 시원함을 느낀다. 예를 들어 내가 “이건 괴물이야?”라고 물으면 “그냥 그린 건데요”라는 답변을 들을 때가 그렇다. 나 역시 어떤 결과물을 보고 하나의 개념으로 판단하게 되는데 상대방은 그것이 무엇이 되는 것과 무관하게 ‘그저 그려본 것’으로 내버려 둔다. 뭐가 되지 않아도 상관없도록 이름도 의미도 부여하지 말고 그대로 두면 될 것을. 그저 그림 한 장이거나 어떤 순간의 흔적인데.
‘지역’을 ‘발견’하고 ‘도시’를 ‘해석’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등의 문화예술 ‘사업’ 내의 개념들은 절대 ‘그냥 해보는 것’의 힘을 이길 수 없지만 언제나 더 중요하게 다뤄진다. 이것은 참여자의 관심, 참여, 표현을 덜 살피게 만드는 함정이 되기도 한다. 그냥 해보는 것이 지역도 발견하고 도시도 해석하고 자아도 실현하다가 심지어 삶 속으로 예술을 침투시킬 수도 있다고 기대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언어가 애써 감싸 안지 않아도 되는 비언어적인 순간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심지어 그것이 의미 이전에 재미를 찾아서 이리저리 스스로 움직이고 있다면 그 원동력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명확한 개념들을 언급하지 않는 활동이 너무 산만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내가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순간들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될 때도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분명한 것은, 명확한 말들을 하지 않으면서 사실은 명확한 주제를 놓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섬세하고 예술적인 과정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더 어려운 방법이다. 그렇기에 몇 가지 개념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며 그것에 기대어 활동 전반을 끌어가는 방식은 사실은 참여자와의 소통에서 편리한 선택이기도 하다. 이것은 때론 불편하거나 모호하거나 어려운 소통의 여지를 덜 만들기 때문에 참여자에게 일반적인 기준의 제시 정도로만 비칠 수도 있다. 그리고 눈치가 빠른 참여자는 그동안 학습된 경험을 바탕으로 적절하게 참여를 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언어나 개념과 관련된 고민을 하게 된 배경을 언급하자면, 그것은 역시나 어떤 사람들과의 만남 때문이었다. 입으로 소리는 내지만 개념을 언어화해서 문장으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사람, 분명 어떤 단어나 문장을 말하고 있는데 그것의 의미는 모른 채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따라 하듯 말하는 사람, 말을 하고 싶지 않은 사람, 유창하게 하는 말속에 자신의 생각보다 타인의 생각이 더 강하게 들어있는 사람 등을 만나면서 왜 많은 활동이 언어에 기대어 이루어져야 할까 생각이 들었다. 예술은 그냥 해보는 것, 말없이 따라 해 보는 것, 느껴보는 것, 같이 있는 것, 혹은 안 해보는 것도 가능한 영역일 텐데 말이다. 교육 ‘사업’이나 ‘프로그램’ 기획서 작성을 위한 언어에 집중하게 되는 상황 안에서, 우리 스스로 그 언어를 빠져나오기 위한 실천들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누구와 무엇으로 어떻게 만날까” 이 질문만 되뇌게 되는데 이것은 누구와 어쩌다 만나게 될 때 그다음의 만남을 어떻게 이어갈지 상상하며 내뱉어보는 혼잣말일지 모른다.
*이 글은 2019년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의 문화예술교육 비평웹진 <지지봄봄> 26호에 게재한 글 "누구와 무엇으로 어떻게 만날까"를 수정, 보완해 작성하였다.
*2025-2026년에 쓴 글 중 일부와, 새롭게 쓴 글을 모아 책을 발간했다.
[책] 기획자의 노트 <쓰다 보면 읽히겠지>
https://uugoorichoi.tistory.com/158
[책] 기획자의 노트 <쓰다 보면 읽히겠지>
기획자의 노트쓰다 보면 읽히겠지 문화, 예술 분야에서 20년 가까이 활동하고 있는 기획자가 있다. 그는 삶과 충돌하는 예술을 자주 경험하며 할 말이 많아졌다. 그래서 긴 고백을 하기로 마음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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